- [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산헤립의 침공과 예루살렘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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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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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산헤립의 침공과 예루살렘의 구원
오늘 제1독서에는 주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사실 예루살렘에서 시온산을 직접 보면, 특별히 거룩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다인과 아랍 무슬림들 사이의 짙은 갈등만 보게 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이 지금껏 “거룩한 산”으로 일컬어지는 건 주님께서 드러내신 구원 역사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구약 시대 일어난 한 사건이 주요 고비였는데요, 바로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의 산헤립 임금이 유다 왕국을 침공한 일입니다.
이는 가히 ‘유다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에서 사라졌을 법한 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2열왕 18-19장과 이사 36-37장에서 알려줍니다. 다만 성경은 이를 천사 개입 사화로 전하며(2열왕 19,35-37 등) 이스라엘 측의 승리처럼 묘사하지만, 산헤립의 침공은 아시리아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산헤립의 연대기(아시리아 문헌)는 히즈키야 임금이 항복하고 조공하였음을 부각하며 끝맺고, 열왕기 하권에도 거의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18,14-16). 만약 산헤립이 패해서 돌아갔다면, 이후에도 유다 왕국이 계속 아시리아에 복속되었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 이를 이스라엘의 승리처럼 서술한 건 유다 백성이 그 결과를 기적처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시리아의 공격을 같이 받은 페니키아와 필리스티아는 수도가 함락되고 임금이 폐위되지만, 유다 임금 히즈키야는 건재했고 예루살렘도 함락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아시리아는 정복민 유배 정책을 자주 펼쳤는데,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망한 북왕국이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도 이 유배 정책에 있습니다. 아시리아인들은 정복민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황폐한 땅을 개간하게 하는 등 경제적 효과를 노렸고, 고향과 연을 끊게 만들어 자국에 잘 동화되도록 하였습니다.
아시리아가 예루살렘을 봉쇄했을 때도 그들은 주민들의 항복을 유도하며 유배를 예고하였습니다(2열왕 18,32). 그런데 예루살렘은 극적으로 구원받은 건, 어떤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아시리아가 갑자기 철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 후반에는 오히려 유다 백성이 아시리아의 멸망을 보게 되므로, 이 역시 승리처럼 여겼을 법합니다. 아시리아는 바빌론과 메디아의 연합군에 패해 멸망합니다. 이런 반전은 하느님만 하실 수 있다고 생각되어 천사 개입 사화가 쓰였고, 이런 구원을 드높이려 홍해의 기적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해 주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인들을 보게 되었다”(탈출 14,30).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주검뿐이었다”(2열왕 19,35).
바로 이런 구원이 있었기에 성경의 역사는 계속될 수 있었고, 오늘 제1독서의 말씀처럼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와 순례하며, 그곳이 자기네 성지임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8월 24일(다해) 연중 제21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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