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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광야의 불 뱀과 느후스탄

865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9-17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광야의 불 뱀과 느후스탄

 

 

이스라엘 영토의 절반은 광야입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과 비교되어 이스라엘의 척박함을 더욱 실감하게 해주는 현장입니다. 이곳에서는 오늘 1독서의 주제인 ‘불 뱀’ 사건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민수 21,4-9에 따르면, 백성은 40년의 광야 방랑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에도 먹을 것이 없다며 불평불만을 쏟아내는데, 그런 백성을 주님께서 불 뱀으로 치시지만 이내 그들을 용서하시고 낫게 해 주십니다. 불 뱀은 히브리어로 [나하쉬 사랍]입니다. [사랍]은 ‘불타다’라는 뜻으로, 이 뱀에게 물리면 불이 나는 듯 아파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이 일은 이후, 광야에서 기둥 위로 들어 올려진 불 뱀의 구리 형상을 보고 백성이 치유되었듯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현양되시어 온 세상을 낫게 하신다는 요한 복음서에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광야에서 치유력을 발휘했던 구리 불 뱀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만나와 아론의 지팡이처럼(탈출 16,33; 민수 17,25) 광야 방랑의 기념물로서 오랫동안 보관된 듯합니다. 그 행방을 암시해주는 내용이 2열왕 18장 서두에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구리 불 뱀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습니다. 2열왕 18,4의 “느후스탄”이 바로 그걸로 추정됩니다. 느후스탄은 ‘뱀’을 뜻하는 [나하쉬]와 ‘구리’를 의미하는 [느호솃]의 합성어입니다.

 

사실 열왕기는 느후스탄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지만, 성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함께 언급되는 “아세라 목상”이 성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2열왕 21,3.7 참조). 만나와 아론의 지팡이가 성전에 보관되었듯이, 광야에서 백성을 구한 구리 뱀도 그렇게 보존되었을 것입니다. 열왕기에 따르면, 당시 백성이 느후스탄 앞에서 향을 피웠다고 하니 구체적으로는 성전 마당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주님의 집 안으로는 백성이 들어갈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

 

만나와 아론의 지팡이는 지성소에 보관되어 백성에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구리 뱀은 모두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구리 뱀이 광야 시절 발휘했다는 치유의 기적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나기를 기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점점 하느님이 아니라 구리 뱀 자체를 섬기게 된 듯합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미처 몰아내지 못한 기존 토착민들이 뱀을 생명과 풍요의 상징으로 숭상하였기에, 거기서 받은 영향도 느후스탄 숭배를 부추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치유력을 발휘하던 구리 뱀이 우상숭배의 근원이 되자, 유다 임금 히즈키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성전에 있던 느후스탄을 ‘아세라 목상’과 함께 없애 버리기에 이른 것입니다(2열왕 18,4).

 

이렇게 구리 뱀은 결국 죄의 원천으로 전락해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것이 보여주었던 치유의 기적은 예수님에게 이어져 주님 구원 사업의 표상으로 승화되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9월 14일(다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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