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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

898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12-09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 1장.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

 

 

환대란,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환대는 주인이 손님이나 방문자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쁘게 해주는 손님 접대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환대를 의미하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환대는 현대 히브리어로 ‘하크나사트 오르힘’이라고 하지만, 이와 같은 표현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구약성경이 환대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환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삶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며, 매우 중요한 사회적 관습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은 환대의 본질과 실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절이나 입맞춤으로 인사하기(창세 18,2; 19,1); 손님을 안으로 맞아들임(창세 24,31); 휴식을 권함(창세 18,4; 판관 4,19); 씻을 기회 제공(창세 18,4; 19,2; 24,32); 음식과 음료의 제공(판관 4,19; 19,5); 안전 보장(창세 19,8); 숙소 제공(창세 19,2; 24,23; 판관 19,4-15); 손님의 여정을 위한 준비(창세 42,25; 44,1).

 

여기서 나타나는 환대와 관련된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제공’과 ‘보호’이며, 따라서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는, 손님이 마주한 수많은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주인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손님을 위해 환대를 실천하는 가운데, 낯선 이는 손님이 되고, 그는 다시 친구로 변화됩니다.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의 모습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의 참된 주인이라는 신앙의 눈으로 구약성경의 본문을 살펴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갔던 나그네의 여정 속에서 하느님께서 물과 양식,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신 환대의 모습을 지나칠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환대를 베풀어 주셨고, 그 모습을 닮아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환대를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환대와 관련하여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 개념과 현대 문화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는 환대의 개념은 부분적으로만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환대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친구나 친척 간에 교제하는 행위 속에서 숙소나 음식을 공유하는 여가 시간의 활용으로 이해합니다. 반면에, 고대 근동(古代近東, Ancient Near East)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구약성경에서 환대는 단순히 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넘어, 낯선 이들 특히 나그네를 손님으로 삼거나 친구처럼 대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것은 고대 근동에서는 숙박 시설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리와 기후 조건으로 나그네들은 현지 주민들의 보호와 함께 최소한의 물과 음식, 쉴 수 있는 공간의 제공이 없이는 일정 기간 생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관점에서 환대는 친교의 의미를 강조한다면, 고대 근동의 문화 속 환대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면서 ‘환대하는 공동체의 해’를 보내며, 환대의 개념을 친교의 장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낯선 이의 이웃이 되겠다는 결심을 세워 보는 것은 어떨까요? [2025년 12월 7일(가해)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인천주보 2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 2장.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환대

 

 

하느님이 주시는 구원의 드라마를 전해주는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환대를 하느님의 활동 안에서 풀어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모든 활동을 우리는 하느님의 환대라는 주제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담고 있는 하느님의 환대에서 드러난 특징과 그분의 환대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

 

성경의 가장 첫 번째 장은 하느님의 창조 활동을 전해줍니다(창세 1,1-2,3 참조). 하느님의 창조 활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여기의 신학적 의도는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온 세상의 참된 주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지상 여정 속의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인간은, 주인과 나그네 /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그네인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양식과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 살아가는 공간, 그 모든 것은 참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환대의 선물입니다.

 

2. 인간 생존을 위해 보호하시는 하느님

 

우리는 탈출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겪었던 고난과, 특히 이집트를 벗어나 광야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40년의 광야 여정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배고픔과 목마름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마실 물을 마련하시고(탈출 15,22-27; 17,1-7 참조), 굶주림을 채워줄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주십니다(탈출 16,1-36 참조). 인간의 능력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광야에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수천 년 전 광야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보살핌과 그 활동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내 돈으로 내가 샀다’라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삶이 가능하도록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환대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3.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환대와 인간이 보여주는 환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에서 드러납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인간의 죄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인간의 악행에도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품어주는 하느님의 마음, 곧 하느님의 자비가 담긴 이야기도 전해줍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단지 죄의 용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마치 어머니가 태아를 품고 있는 것처럼, 인간을 품어주시는 하느님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마음 덕분에, 우리는 인간이 베풀 수 있는 환대와 비교할 수 없는 하느님 환대의 절정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환대는 단순히 손님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면서 접대하는 것과 구별되는 행위입니다. 환대라는 주제로 한 해를 보내는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인간을 품어주시는 하느님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하느님 환대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어, 하느님을 닮은 모습(창세 1,27 참조)으로 그분께서 보여주신 참된 환대를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25년 12월 14일(가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인천주보 2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 3장. 환대의 모범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환대와 함께, 인간이 베푼 환대의 모범적이면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중에 가장 모범적이고 ‘구약성경의 환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세 명의 나그네에게 극진한 환대를 베푼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창세 18,1-8 참조). 성경 본문이 전해주는 아브라함의 환대하는 모습을 살펴봅니다.

 

우선, 만남의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 앞에 나타난 “세 사람”을 보자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며 땅에 엎드립니다(창세 18,2 참조). 아브라함은 자신 앞에 나타난 이들과는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들을 극진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나그네가 신적 존재임을 알아보아서가 아닙니다. 그는 접대 이후에 사라에 관한 물음이 시작될 때가 되어서야,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창세 18,9 이후). 그런데도 그는 마치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낯선 그들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이 만남을 초대로 전환합니다. 그는 “부디”라는 간곡한 표현으로 그들을 초대합니다. 이것은 형식이나 의무를 넘어서 배려하는 그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배려하는 마음은 나그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여정으로 피곤한 발을 씻고, 주린 배를 채우며 원기를 회복하는 것-을 제공하겠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18,4-5 참조).

 

“그렇게 해 주십시오”(18,5)라는 응답으로 아브라함의 진심 어린 초대가 승낙되자, 아브라함은 분주하게 손님 대접을 시작합니다. 그의 분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는 모습, “빨리” 빵을 구우라는 명령, 소 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송아지 한 마리를 “서둘러” 잡아서 요리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18,6-7 참조). 그는 손님 접대에 망설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머릿속에 다음 행동이 준비된 것처럼, 빠르고 신속하며 망설임 없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아브라함의 환대가 유독 이 장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행해온 익숙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는 귀하고 좋은 음식-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을 가지고 직접 나그네들을 대접합니다(18,8 참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하인에게 시켜도 충분한 접대가 되는데도, 아브라함이 손수 음식을 나르고, 그들이 먹는 동안 그들을 시중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위선이나 사회적 명령과 관습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으로, 아브라함의 환대가 얼마나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환대는 우리에게 모범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단편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환대를 모범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가 귀하고 좋은 음식을 제공해서가 아닙니다. 만남에서 시작하여 초대와 접대로 이어지는 그의 환대는, 낯선 이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낯선 누군가를 향해 환대를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낯선 이에게 제공받는 환대도 불편하게 여겨지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라는 경계는, 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점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립과 분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이 보여준 환대의 모범은, 낯섦의 벽을 허물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일깨우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이제 우리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2025년 12월 21일(가해) 대림 제4주일 인천주보 2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 4장. 환대의 실천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환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환대를 베푸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합니다. 이것은 높은 이상적 가치를 바탕으로 전수되는 추상적 가르침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환대를 실천하라는 공동체를 향한 명령이었습니다. 그 명령은 오경의 법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 구절을 살펴보면서 환대의 실천을 향한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23)

 

이스라엘 백성의 신원은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그들의 관계는 주인과 이방인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주인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환대를 베푸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환대로 생존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지상 여정 안에서 ‘이방인’이라는 신원 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이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환대의 수용을 넘어 환대를 실천하는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탈출 22,21-22)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 23,9)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자기 인식은 이제 이방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갖도록 초대합니다. 주목할 것은 이방인을 향한 환대를 실천하라는 명령에 함께 등장하는 대상인데, 그들은 과부와 고아입니다. 구약성경의 법전은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과 함께, 사회·경제적으로 무력한 과부와 고아를 향한 환대를 강조합니다. 이방인, 과부, 고아는 당시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약한 이들로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이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길을 걷는 나그네의 생존을 위해 환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면(창세 18장 참조), 구약의 법전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약자를 시야에서 잃지 않고, 그들의 생존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환대의 실천과 관련된 구약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첫째, 약자를 향한 향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신명 10,18)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시편 146,9 참조). 하느님에게서 받은 환대를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길은,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돌보는 이들을 향한 환대를 통해 완성됩니다.

 

둘째, 기억을 통한 공감의 마음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자신들이 이방인이었음을 기억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기억은 과거 사건의 회상에서 멈추지 않고 공감의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방인, 과부, 고아로 지칭되는 약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높은 벽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헤아리는 태도, 곧 열린 마음은 환대 실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려줍니다.

 

구약성경이 전해주는 환대의 실천적 요구에서 그 출발점은 하느님의 환대입니다. 우리가 환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받은 환대를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대는 어떤 이벤트 안에서 벌어지는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여정 안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시간적, 공간적으로 열려 있는 삶의 태도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025년 12월 28일(가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인천주보 2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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