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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 인물 이야기: 바르티매오

933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3-03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바르티매오 (1)

 

 

지금부터 우리가 만나 볼 인물은 바르티매오입니다. 이 이름은 마르코 복음서에만 나오지만, 병행구는 마태오 복음서(20,29-34)와 루카 복음서(18,35-43)에도 들어있습니다.

 

기원후 30년의 파스카가 머지않은 어느 봄날,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 사명을 완성하시기 위해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고 계십니다. 이 마지막 여정 중에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하룻낮 거리에 있는 도시 예리코에 이르셨을 때, 예수님은 한 눈먼 거지를 만나시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마르코 복음서(10,51)의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은 소경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보지 못한 것보다 멀쩡하던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고통은 더 컸을 것입니다.

 

이 가련한 사람의 이름은 바르티매오입니다. 하지만 바르는 아들이라는 뜻이니, 이것은 사실 이름이라기보다는 그가 티매오라는 사람의 아들임을 알려줄 뿐입니다. 우리는 그의 진짜 이름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름에도 바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의 경우는 다릅니다. 시몬 바르요나는 그가 요나라는 사람의 아들임을 가리킴과 동시에 그의 이름이 시몬임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네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러 소경과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치유한 많은 이들 가운데 이 사람만이 호칭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바르티매오가 매우 중요한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과 바르티매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예리코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예리코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진입할 때 첫 번째로 정복한 성입니다.

 

그런데 이 성은 놀랍게도 군사들의 칼과 활이 아니라 사제들의 뿔 나팔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으로 정복되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소경 바르티매오 또한 큰 소리로 외칩니다. 사람들이 그를 말리려 해 보지만, 그의 열정적인 외침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리코 성벽이 무너질 때까지 뿔 나팔과 함성을 질러댔듯이 바르티매오도 예수님을 둘러싼 인(人)의 장벽이 무너지고 주님께서 그를 보아주실 때까지 고함을 질러댑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 [2026년 3월 1일(가해) 사순 제2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바르티매오 (2)

 

 

그동안 바르티매오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구걸을 위해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라고 수없이 간절하게 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 외침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위 문장의 단어 나열 순서를 보면 ‘다윗의 자손’이 가장 강조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나자렛 출신의 예수라 하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바르티매오는 다윗의 자손이라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예수께 관하여 들은 말씀만으로 그분의 정체를 알아차립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는 로마서의 말씀(로마 10,17)은 참말입니다. 예수님을 뵙지 않았지만 믿고 있는 우리 모두 또한 그 증인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여기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의 고귀한 혈통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기 위해 이 호칭으로 부른 것이 아닐 것입니다. 혹은 유다 전승에 의하면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에 구마 능력과 더불어 치유의 능력도 포함되었다고 하는데, 그 능력이 후손들에게도 유전되었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불렀을 리도 없을 것입니다. 이 표현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나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바르티매오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그분께로 갔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에 기초하여 바르티매오의 행위가 죄를 벗어버림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 ‘겉옷을 치워버리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바르티매오는 그의 앞에 깔려 구걸통의 역할을 했던 옷을 걷어차 버리고 예수께 다가갔다는 말입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구걸통을 버린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아포발로는 신약성경에서 딱 한 번 더 사용되는데, 히브 10,35에서 이 단어는 완전한 포기를 의미합니다.

 

전적인 투신을 위한 완전한 포기는 부르심 받은 제자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그물을 버렸고, 야고보와 요한은 배를 버렸습니다. 이처럼 재산을 포기하는 대신 예수님의 제자됨을 포기하고 슬퍼하며 떠난 젊은 부자 청년과 달리 바르티매오 또한 전 재산을 포기하고 예수께로 나아간 것입니다. [2026년 4월 5일(가해) 주님 부활 대축일 가톨릭안동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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