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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다시 만난 신약 성경: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933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3-03

[다시 만난 신약 성경]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오랜만입니다. 마태오 복음 마지막을 건너뛰기는 했지만, 새 달을 맞이해서 마르코 복음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실 그 ‘건너뛴’ 부분이 문제가 되기는 합니다. 흔히 마태오 복음의 특징으로 다섯 개의 긴 설교를 말하고 우리도 그 설교들을 중심으로 마태오 복음을 읽었는데, 그러다 보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부분을 건너뛰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건너뛰게 되는 것이지요. 그 부분은 마르코 복음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1)라는 구절로 시작했고, 예수님이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메시아이심을 선포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동방 박사들과 첫 제자들은 받아들였고 헤로데와 바리사이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 파견하시면서 끝났습니다. 이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전파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지요.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이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각 복음서의 첫 구절에서, 그 복음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약을 다시 읽으면서 늘 생각해야 할 질문이 있지요. 이 책을 왜 썼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르코 복음에서도, 복음서를 쓴 목적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증언하려는 것입니다. 강조점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요. 마르코 복음을 쓴 저자가 무엇보다 강조하려 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론의 역사에서는 예수님의 인성이 문제가 되는 시기가 있고 신성이 더 문제가 되는 시기가 있지요. ‘정말 사람이셨는가? 겉모양으로만 사람으로 나타나신 것 아닌가?’

 

예수님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 예를 들면 열두 제자 같은 이들에게 예수님이 사람이시라는 것은 별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함께 걸어 다니고 함께 먹고 고생도 함께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왜 예수님을 사형에 처했습니까? 자기들이 눈 앞에 보고 있는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주장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그들의 믿음은 이분이 하느님이심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쓴 사람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시라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은 복음서이지요. 핵심을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이 복음서에서 주로 보려고 합니다.) 전체 16장인 이 복음서의 한가운데에서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9)라고 고백할 것이고, 나중에는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15,39)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서를 쓴 사람이 바랐던 목표는 아마도, 이 복음을 읽는 우리가 ‘아, 이분은 정말 하느님의 아드님이셨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뒤집어서 질문을 해 보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할 수 있을까요? 복음을 읽으면서 찾아 봅시다.

 

*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저서 「이사야서」 「이사야서 쉽게 읽기」 「예레미야서 쉽게 읽기」 「구약의 역사설화」 등.

 

[2026년 3월 1일(가해) 사순 제2주일 의정부주보 2면,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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