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다시 만난 신약 성경: 섬기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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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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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신약 성경] 섬기러 왔다
꽤 오래된 일이라 그냥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큰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당에 신부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축하 화분도 왔습니다. 리본이 붙어 있었습니다. “축 영전”이라고요. 너무 낯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런 화분을 보낸 사람은 뭔가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화분을 리본도 떼지 않고 제단에 놓은 사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본당 신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시며, 이어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예고를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고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가르침이 뒤따릅니다.
9장에서도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하고,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라고 가르치십니다.
10장에서 세 번째로 당신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옆자리에 앉게 해 주시기를 청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4)라고 말씀하십니다.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실 때 제자들의 행동을 보면,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서도 그분이 어떤 그리스도이신지 알지 못했음이 드러납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제자의 삶에 대한 가르침들이 매번 수난과 부활의 예고 다음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냥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분이시니 제자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자에게서는 그가 누구의 제자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그가 어떤 그리스도를 믿는지가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그리스도이신지 알지 못하면서 당신에 대해 말하고 다니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에 대한 소문이 계속 퍼지기는 했습니다. 세 번에 걸친 예고에도 제자들은 아직도 그분의 수난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부활에 대한 말씀은 아예 귀에 들어오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부활 예고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도 나타나지 않으니까요.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에서는, 우리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의 제자임이 드러납니까? 수난하시는 그리스도, 그러나 수난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죽음을 통해서 부활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임이 드러납니까? 우리는 부활을 믿고 죽을 수 있습니까?
*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저서 「이사야서」 「이사야서 쉽게 읽기」 「예레미야서 쉽게 읽기」 「구약의 역사설화」 등.
[2026년 3월 29일(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의정부주보 2면,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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