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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구요비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오늘 예수님께서 만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불충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은유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호세아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契約)을 신랑과 신부 사이의 혼인 계약으로 묘사합니다. 이에 따라,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사랑을 멀리하여 계약에 불충실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신랑이신 주 하느님께 불충실한 간음으로 규정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 즉 계속 집을 나가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달래고 집으로 데려오는 삶을 돌이켜보다가, 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그러하다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16.21-22)
“하느님의 사랑은 분명히 에로스라 할 수 있지만, 또한 전적으로 아가페이기도 합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9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냉혹한 재판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신랑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묵시 19,7-9 참조)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러 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이 무한한 사랑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응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한 4,20)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가 응답하는 길은, 우리가 관계 맺고 사는 이웃에게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치 기준의 중심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머니 복중에 있는 태아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라는 무한한 존엄성이 무시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속한다는 가치관이 팽배합니다. 이런 시대의 사조는 남녀 간 상호 존중과 인격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야 할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에 다툼과 이혼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응답하는 길은 인간 삶의 중심을 인격적인 존중과 사랑에 두고 이 사랑의 원리를 살아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즉, 그 어떠한 극한적인 실존 상황 안에서도 사랑을 최고의 가치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구요비 욥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