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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에게 자신의 용돈을 나눠주는 선함
[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11) 가난한 이들의 이웃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특별한 계획이나 의미 있는 행사 때만이 아니고, 가능한 한 매일 작고 소박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했습니다.
왕따 친구와 어울리고 도시락 나눠먹고
따돌림을 당하던 반 친구와 쉬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점심 도시락을 싸올 여유가 없는 친구에게 자기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가 친구들에게 건네는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는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을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습니다. 누구든 카를로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밀라노의 한 슈퍼마켓에서 카를로는 가난한 집시 자매를 보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려던 물건을 포기하고 그 돈을 자매에게 주어도 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아시시에서는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 가난한 이들을 마주치자 서둘러 달려가 용돈을 나누었습니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카를로에게 애덕은 충분히 준비된 시간과 돈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온전히 함께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성인들의 모범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의 말씀을 공책에 또박또박 적어두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난한 이들에 대해 말하지만, 가난한 이들과 말하는 이들은 매우 적습니다.” “먼 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그분께서는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당신들 가까이에,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밀라노 중심가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카를로는 유행이나 명품 브랜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검소하며 절제된 삶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카를로는 말하곤 했습니다. “돈이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영혼의 고귀함, 곧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이죠.”
영적인 가난
어머니가 신발 두 켤레를 한 번에 사주려 하자, 한 켤레면 충분하다며 남은 돈으로 먹을 것조차 없는 사람들을 돕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옷차림도 늘 검소했습니다. 후드티에 청바지면 충분하다고 여겼고 불필요한 것을 사는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예쁜 자전거를 도난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카를로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머니가 같은 자전거를 다시 사주려고 하자 말리며, 차고에 있던 낡은 자전거를 수리해 타고 다녔습니다.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타면서도 그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카를로가 선택한 가난은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확고한 신념으로 그는 영적인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의 참행복(5,3-10 참조)에 대해 묵상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여덟 가지 가르침은 모두 ‘행복하여라, ○○하는 사람들!’로 시작돼요. 그 안에 부자·유명인·학자·정치인·기업가 등은 없지요. 그 여덟 행복에는 가난·고통·온유·의로움·자비·깨끗함·평화·박해만 있어요.”
소유보다는 나눔을 선택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가난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가난한 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세속에서 멀어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사물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위에서 그들을 다스릴 줄 알며 그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그들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삶의 소박함을 택하고 소유보다 나눔을 택한 카를로. 그의 선한 영향력에 힘입어 오늘도 지구촌 어딘가의 거리에서 자신의 삐걱대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달려가는 또 다른 카를로들이 존재하리라 믿습니다.

유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