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고마운 앤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과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서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1880~1968)의 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의 일부다. 그는 삼중의 장애를 훌륭히 극복한 현대의 위인이다. 19개월 때 심각한 병으로 위와 뇌에 심한 출혈이 생겼고 결국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헬렌은 일곱 살 때 한 시각 장애인 학원을 찾았다가 평생의 교사가 될 앤 설리번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당시 앤 설리번은 스물한 살이었다. 설리번도 다섯 살 때 눈병으로 시력을 잃을 뻔한 체험이 있었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이 어떻게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앤 설리번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다. 설리번은 강의실에서 헬렌 곁을 지키며 교수의 말을 손가락 언어로 전해주었고, 그 내용을 다시 점자로 옮겨 헬렌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앤 설리번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헬렌 켈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서의 끝에는 사도 바오로가 도움을 준 이들을 언급하는데 영화의 엔딩 크레딧같다. 사도 바오로의 엄청난 업적에 많은 협조자가 있었던 것이다.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고치셨다. 예수님의 행적이 퍼졌고 예수님 일행이 묵고 있는 집 주변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사람들이 문 앞까지 빈틈없이 들어섰다.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픈 몸을 치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중풍으로 누워있던 사람을 친구 네 명이 데려와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인파로 접근이 어려웠다.
친구들은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를 침상에 매달아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냈다. 당시 가옥의 구조는 지붕이 대부분 나뭇가지 등으로 덮어있어서 뜯어낼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에 탄복하여 중풍 병자를 일으켜 세우셨다. 중풍에 걸리면 다른 이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거동할 수 없다. 중풍 병자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치유되어 일어날 수 있었다. 중풍 병자는 예수님의 치유가 이루어지는 순간 몸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회복되었고, 마음도 새로워졌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도 혼자서는 잘할 수 없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격언처럼 쉬운 일이라도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훨씬 쉽고 좋은 결과를 얻는다. 인생에서 다른 이와 함께하고 서로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