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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복음생각/생활
2026.05.1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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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주님 승천 대축일 마태 28,16-20
피에트로 페루지노 작 ‘그리스도의 승천’


‘하늘’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는 천문학의 탐구 대상인 ‘천체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종교에서 거론되는 상징 언어인 ‘천상 낙원’이다. 자연 현상에 일방적으로 종속됐던 인류는 생존의 필수 요소인 빛과 비를 제공하는 태양과 구름이 있는 하늘을 숭배하였다. 호의를 베푸시는 하느님과 풍요와 안정의 토대를 마련해 주는 하늘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타 종교와 대조되는 그리스도교의 특징은 하늘에 대한 양면적 접근이다. 한편으로, “하늘”(창세 1,8)과 하늘에 펼쳐진 “빛물체들”(창세 1,14: 해·달·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고대 종교의 하늘에 대한 신성화를 부정하려는 방편으로 하늘이 상대화되었다.(1열왕 8,27; 시편 148,1-3 참조) “천지의 창조주”(사도 신경) 고백을 통해 만물을 존재케 하는 바탕인 하늘조차도 하느님의 작품으로 간주한다. 다른 한편으로, 주님의 기도 첫 문구 “하늘에 계신”이 의도하는 바와 같이, 하늘은 ‘하느님의 거처’(신명 26,15 참조)다. 구약 성경은 ‘죽음을 겪지 않은’ 이의 하늘을 향한 공중 부양을 보도한다.(에녹: 창세 5,24 / 엘리야: 2열왕 2,11) 이 하늘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룬 지복직관에 도달한 이가 진입하는 ‘특정 공간’(천국)으로 이미지화되었다.(2코린 5,1 참조)

상하 개념과 연계하여 반대말로 추정되는 하늘과 땅은 ‘땅 위 하늘’과 ‘하늘 아래 땅’ 차원에서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 관계 언어다. 만물을 포괄하는 개념인 ‘천지’는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에페 1,23)의 ‘새로운 피조물’(새 하늘과 새 땅: 묵시 21,1)이다. 성경은 하늘과 땅 사이의 하강과 상승 구도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전개한다. ‘첫 번째 오심’(성탄)은 태초부터 아버지와 함께 있던 아들의 인류를 위한 ‘하늘에서 내려오심’(강생)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하늘로 올라가심’(승천)은 ‘두 번째 오심’(재림)의 시작이다.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죽음을 겪은’ 그리스도의 승천은 ‘하늘과 땅’(성과 속)의 분리를 전제로 땅에서 탈출하는 공중 부양이 아니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는 약속을 구현하는 ‘새로운 현존’에 대한 공지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라는 빈 무덤에 등장한 눈부시게 차려입은 두 남자의 물음처럼, 승천을 시각화한 사도행전은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을 통해 묻는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1,11) 그리스도가 승천한 하늘은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올라가신’ 하늘은 미지의 특정 구역이 아니라 하늘과 맞닿은 ‘내려오신’ 땅을 암시한다. 부활은 ‘언제나’(죽음 후에도), 승천은 ‘어디나’(하늘 아래에도) 현존하고 활동하는 하느님을 입증한다. 둘째, ‘올라가신’ 하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내려오신’ 땅에 대한 구체적 집중으로 교정된다. 하느님의 거처는 땅 위의 ‘저 하늘’이 아니라 하늘 아래의 ‘이 하늘’(땅)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1요한 4,12 참조)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묵시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