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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0 등록
늙음과 죽음 앞에서 한 가족의 결말이 결정된다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24. 아니·클로드 보듀셀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
사람은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변한다
나는 그것에서
어떤 희망을 본다
아니 보듀셀·클로드 보듀셀은 프랑스인 부부 작가다. 부부는 죽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을 돕는 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책으로 썼다. 책은 코헬렛 12장으로 시작한다.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코헬 12,1) 코헬렛 12장 제목은 ‘늙음과 죽음’이다.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하는 그 유명한 성경 구절이 바로 이 장에 들어있다. 불행의 날들이란 바로 노년이라는 사실을 서글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보듀셀 부부는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는 것을 인식하면 “부모님과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부모님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고. 즉 부모 돌봄의 시기가 왔음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에서 정반대의 맥락을 읽었다. 노년을 맞은 당사자 역시 자식과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비단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하고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노년기 부모와 장년기 자식의 결말에 관한 이야기.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아기 때 관계가 좋았던 가족이 청년기 때도 좋고, 청년기 때 좋았던 가족이 장년기 때도 좋다. 희망적이기도 절망적이기도 한 진리다. 책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 작가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예전의 부모님과 맺었던 관계에 따라 나이 든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껏 맺어온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거라고. 혹시 부모가 노년이 되었을 때 관계가 삐걱거리는 중이더라도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테니 잘 한번 해보자는 의미이리라.
부모님께서 나이 들어 가시면서 나는 종종 삶의 새로운 국면들을 만난다. 판단력·기억력·순발력·문제해결 능력·체력. 그분들의 모든 능력이 점점 쇠함을 서로가 느낀다. 그리고 쇠하는 것들은 본래의 성정이 바뀌도록 조금씩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안 변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변한다. 나는 그것에서 어떤 희망을 본다. 나와 부모 간에 풀리지 않던 어떤 것이 어느 날 ‘탁’ 풀려버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나는 일흔다섯의 시어머니를 만나 그분의 나이 아흔셋까지 함께했다. 너무나도 나이 차이가 많던 고부 사이는 세월이 가며 점차 달라졌다. 나를 그저 어린 손주 보듯 하던 어머니는 차츰 어른을 대하는 눈이 되더니 마지막에는 기대고 의지하는 눈이 되었다. 나도 그랬다. 시골에 계신 내 할머니를 상대하듯 그저 예쁨 받으려고 했던 나는, 그분의 병원 동행자가 되고 마지막에는 보호자가 되었다.
어느 여름날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다. 간다고 연락드리면 새벽부터 아니 그 전날부터 기다리며 고속도로 운전을 걱정할 것을 뻔히 알기에, 그날은 연락없이 간 참이었다. 어머니 얼굴에는 반가움의 희색이 아니라 놀라움의 사색이 먼저 번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나)한테 무슨 일이 있어? 왜 이렇게 연락도 없이 왔어.”
나는 그때 어머니의 늙음을 보았다. 본인의 안위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지는 시기가 왔구나. 어머니께서 전적으로 우리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립심이 강한 어머니께 상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본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내가 해. 그냥 둬”를 하루에 백 번씩 반복하시던 어머니가 “엄마는 이제 못 해. 해주고 가”를 반복하는 어머니로 바뀌었다. 새로운 국면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차츰 서서히 진행된다.
책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에는 한편 이런 이야기들도 나온다. 노쇠한 부모님을 연민하고 아이를 돌보듯 돌봐야 하지만, 여전히 부모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즉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노년을 지켜드리되, 부모님께 받은 모든 것을 받은 만큼 되돌려 드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서로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식으로서의 나, 형제·자매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지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앙과 숙고다. 지침은 성경에서 얻을 수 있고 용기는 기도에서 얻을 수 있다.
크게 갈등하는 가족들의 서사에 꼭 등장하는 강렬한 문구들이 있다. “나 죽어도 오지 말아라”, “장례식 때나 만나자” 등.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죽음은 가족 서사의 핵심이다. 구성원의 죽음으로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때로 완결된다. 여느 희극처럼 가족도 서사를 전개하는 때가 있고 마무리하는 때가 있다. 그러니 죽음은 여러모로 무겁다. 어두워서가 아니라 중해서 무겁다. 가족의 결말은 구성원 모두의 결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늙음과 죽음 앞에서 구성원 모두가 그것을 소중하고 무겁게 다룰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