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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사설/칼럼
2024.07.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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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폐허 위의 등대, 성 요셉 성당(송영은 가타리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선임연구원)

코로나 백신이 등장하고 공항 문이 다시 열리던 2021년 허리쯤, 나는 남편의 주재원 발령을 핑계 삼아 한가로운 전업주부의 삶을 그리며 프랑스의 항구도시 르아브르(Le Havre)로 떠났다. 삶의 여유가 무료함과 게으름으로 탈바꿈할 즈음, 르아브르의 세계문화유산을 한국어로 해설할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공립고등학교 아랍어 교사이자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불 공식 통역가로도 활동하는 선생님에게서 르아브르의 근대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면서, 나는 프랑스의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왜 유독 이 도시에 네모 반듯한 아파트가 즐비한지를 알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말미였던 1944년 9월, 독일군이 이미 철수한 이곳에 연합군이 잘못된 정보로 폭탄을 퍼부은 탓에 16만 거주민 가운데 5000여 명이 사망하고 8만여 이재민이 발생했다. 전후 르아브르 재건을 총괄했던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는 ‘콘크리트의 시인’이란 별명답게 콘크리트 모듈 방식으로 재빨리 근대적인 주거지를 만들어냈다. 그의 건축물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107m 높이를 자랑하는 성 요셉 성당이다. 겉보기에는 종교 건축물 같지 않은 이 성당은 그 길고 거대한 몸집 덕분에 해안가에서 60㎞ 떨어진 바다에서 보이는 것이 마치 등대를 닮았다. 이유도 알 수 없는 폭격으로 목숨과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5만 톤의 콘크리트와 700톤의 쇳물로 만들어진 이 육중한 건축물이 희망을 잃지 말라는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본래 성 요셉 성당은 이 옛 항구도시에서 배를 만들고 수리하던 노동자들, 즉 목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어졌던 성당이다. 세상의 온갖 진귀하고 사치스러운 것들을 항구로 들여와 센강을 따라 파리로 옮기는 동안, 목수들은 거친 바다로 나가는 이들의 안녕을 위하여 배를 짓고 수리했을 것이다. 그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던 요셉 성인이 이제는 전쟁의 부조리와 잔혹함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안아주는 아버지가 되신 것이다. 무신론자였던 오귀스트 페레도 이 성당의 건축을 시작한 후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유명 건축가로서 남부러울 것 없던 페레도 전쟁의 참혹함에는 너무나 큰 무력감을 느꼈던 것일까. 그 역시 성당을 재건하며 등대처럼 묵묵히 세상을 비추는 성인의 자애를 갈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이주민 자녀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고등학교 제자들을 데리고 성 요셉 성당에 간다고 했다. 무슬림 자녀가 대부분인 그 아이들에게도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이 교회의 높은 탑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끈질기게 일상을 살아낸 사람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등대가 비출 것을 믿고 큰 바다로 나아가는 배들처럼 용감하게 미래로 나아가라고 말한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온갖 시끄러운 일들을 뒤로 한 채 더 멀리 도망만 치려다 망망대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에게도 성 요셉 성당은 똑같은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만 같았다. 절대로 절망 속에 표류하지 말라고, 여기 등대가 있으니 한눈팔지 말고 나를 바라보며 용기 내 어서 오라고 말이다.


송영은 가타리나(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