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간의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와 같이 선거는 종종 지도자를 선택하는 결과에 대해 강하게 이분법적 심리학을 촉진한다. 언론인들과 지지자들은 한쪽에는 구속과 구원, 미덕이 있고, 다른 쪽에는 파멸, 지옥, 악이 도사린다고 말한다.
가톨릭신자들 역시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질 때가 있다. 사실 어느 지도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오는 결과들이 있지만, 때로는 그 선택이 바로 그 순간의 지도자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오히려 제도적 책무라는 범위 안에 속하는 것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이 점을 상기시켜 주는 좋은 사례가 최근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와 일치하지 않는 동방 아시리아교회의 총대주교를 교황청에 초대했다. 이란과 시리아, 터키, 이라크에 흩어져 있는 동방 아시리아교회는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한 이들로, 2000년 동안 고난과 박해, 강제 이주를 당하면서도 그 신앙을 지켜왔다. 오늘날 아시리아교회의 신자 수는 약 40만 명이다. 이라크의 에르빌 인근 앙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리아교회는 현대 교회일치 운동에 오래전부터 참여했고, 가톨릭교회와는 40여 년 동안 대화를 이어왔다.
1994년에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는데, 당시 딘카 4세 총대주교는 로마를 방문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만났다. 두 교회의 수장은 5세기 이후 이어졌던 그리스도론을 둘러싼 언어적 차이를 넘어서 공통의 그리스도론 선언을 체결했고, 이를 통해 서로의 신앙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 선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잠시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최초의 분열은 431년, 에페소공의회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를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부를 것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됐다. 1994년의 공동 선언은 사실상 1500년 전에 일어난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분열을 해결한 셈이다.
7년 후 교황청은 「칼데아교회와 동방 아시리아교회 성체성사 참여에 대한 지침」이라는 문헌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당시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에서 발표했지만,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동의를 얻었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승인했다. 이 지침은 아시리아교회 신자들이 자신의 전통에 따른 미사에 참례할 수 없을 때, 칼데아교회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받을 수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시리아교회의 전례문에는 이것은 내 몸이다와 이것은 내 피다라는 구절이 포함돼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시리아교회 미사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상당히 놀라운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가톨릭교회의 신학에서 성체성사의 유효성을 위해서는 규정된 전례문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방 전례에 관한 가톨릭교회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던 예수회의 고(故) 로버트 태프트 신부는 이 2001년 지침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가톨릭 교리 문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온전한 전례 기도로 성체의 축성이 이뤄진다고 봤던 태프트 신부는 교황청이 성체의 축성에 대한 기계적인 이해를 거부했다고 생각했다. 성체성사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변화는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미래의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명확한 승인을 받은 결과였다.
프란치스코 교황 아래에서도 화해를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2017년에는 성사 생활에 관해 공동 선언을 했고, 2022년에는 두 교회의 이미지에 대한 문헌를 발표했다. 이번 마르 아와 3세 총대주교의 방문 중에는 교황이 시리아의 성 이사악이라고 알려진 니네베의 성 이사악을 「로마 순교록」에 추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니네베의 성 이사악은 7세기 동방교회의 주교로, 영적인 저술로 잘 알려져 있다. 아시리아교회에서는 이미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으며, 이제 가톨릭교회에서도 그를 성인으로 인정하게 됐다.
이 모든 일이 의미하는 바는, 가톨릭교회에서 세 차례의 교황 선출(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을 거쳤고, 아시리아교회 총대주교도 같은 수의 교체가 있었지만, 두 교회 사이의 화해를 위한 노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다. 이는 단지 현재 드러나 있는 예시일 뿐, 다른 여러 가지가 제도적인 연속성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분명, 가톨릭교회나 세속 정치에서 누가 권력을 잡느냐는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선거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절망하거나 흥분하지 말자. 선거 결과는 그 순간에 너무 영광스럽거나 끔찍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실 그리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인물은 변할 수 있지만, 제도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