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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사설/칼럼
2025.06.0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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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바르게 살면, 세상도 바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시대다”

작년 12월 이후 우리 사회는 매우 추한 사실 하나를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설마 이 정도까지 상식이 무너진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만큼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지난 반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벌어졌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현실에서 겪으며, 우리 사회는 정의와 진리가 이익의 추구 속에서 얼마나 희석되고 상대화되고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고대 철학자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는 "정의란 곧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이 말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와 진리를 외치고, 그 개인들이 다수를 이루게 될 때, 정의는 결국 강자의 이익으로서 구현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진리에 기반하지 않은 정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 안에서 진영을 나누고, 대립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봅니다. 어쩌면, 진리 자체가 상대적인 관점에서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진리와 정의의 방향이 다수의 힘, 즉 누가 강자의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쉽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집단 지성은 올바른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을 파악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경제적인 측면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통 방식과 진리, 정의에 대한 이해입니다.


최근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치 바벨탑과 같은 혼란스러운 언어 구조 속에 빠져 있음을 지적합니다. 즉, 이념적이고 편향되며 사랑이 결여된 언어 속에서 우리가 소통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소통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형성"합니다.(언론인들과의 만남, 2025년 5월 12일) 이는 우리 사회의 언론들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어떤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이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소통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교황은 또한 가정의 중요성과 함께, 태어나지 않은 생명(배아와 태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병자, 실업자, 시민, 장애인 등 우리 사회에서 연약하고 취약한 이들의 존엄을 보장하는 노력에서 누구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외교사절단과의 만남, 2025년 5월 16일)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점점 약자와 취약한 이들을 이념적이고 편향된 언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다수가 될 때, 사회는 결국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만 인권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제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조차 점점 더 상대화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또한,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진리 없이는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없으며, 특히 말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이중적으로 사용되어 현실을 왜곡할 때, 참된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진리가 사랑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교황이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설교」 80, 8)을 인용했듯, 나부터 가장 연약한 존재인 배아에서 모든 인간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