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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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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긋하려다가 빵끗
[월간꿈CUM] 삶의 한 가운데에서


“빵끗.”
사전을 보면, 입을 예쁘게 약간 벌리며 소리 없이 가볍게 한 번 웃는 모양이라고 나온다. ‘방긋’보다 아주 센 느낌을 주는 말이다.
가족여행을 출발하는 날 새벽, 여행 전 책을 읽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다. “지금 웃어라!” 미국에는 “힘든 시기를 다 보내고 나면 훗날 과거의 힘든 시기를 떠올리며 웃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왜 과거의 힘든 시기를 떠올리며 훗날 웃기만을 기다리느냐고, 지금 당장 웃으라고 이야기한다. 어두웠던 이른 새벽을 지나 주변이 점차 밝아져 온다. 책을 덮고 창문 밖으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와 마주한다. 순간 아침 해가 나에게 방긋하고 인사를 건네 온다. 환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와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지금 이렇게 웃으면 되는 거구나, 방긋”이라고 말하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여행을 출발하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아침에 읽었던 책 내용과 아침 해와의 인사를 신나게 이야기하며 이번 가족여행의 컨셉은 ‘방긋’이라고 이야기했다. 운전하며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나에게 “‘방긋’보다는 ‘빵끗’이 더 좋은 것 같은데! 빵끗 어때?”라며 웃어 보인다. 빵끗? 그래서 이번 가족여행 컨셉은 빵끗이 됐다. 방긋하려다가 아내 덕분에 훨씬 느낌이 좋은 빵끗으로 이번 가족 여행의 컨셉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가족여행을 시작하면서 나는 빵끗이 되었다.

80대이신 양가 부모님과 함께 총 10명의 가족이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하는 동안 동서남북 어디서나 보인다는 한라산 백록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정말 끝내주는 날씨가 여행 내내 함께했다.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날, 흐린 날씨에 비가 조금씩 뿌리더니 이내 우산이 뒤집혀질 정도의 비바람이 몰아친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기막히게 좋은 날씨와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가족여행 출발 전 내가 방긋하려다 빵끗할 수 있도록 더 좋은 느낌을 준 내 아내에게 엄지척 한다.
이번 가족여행을 마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빵끗하며 빵끗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내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예쁘게 약간 벌리고 웃으며 소리 내어 인사한다. 오늘도 많이 웃는 하루 보내세요, 빵~끗.   


글 _ 이재훈 (마태오,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사무국장)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신앙 안에서 흥겨운 삶을 살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가톨릭 사회복지 활동에 투신해 오고 있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하루 매순간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