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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사설/칼럼
2025.1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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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북한 매체 개방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 매체 개방 문제를 언급, “북한 노동신문을 못 보게 막는 이유는 국민이 선전에 넘어가서 빨갱이가 될까 봐 그러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일반 국민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를 보는 데 제한이 따른다. 이 대통령은 “그냥 열어 놓으면 된다”며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믿고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분단 이후 수십 년간 북한 관련 자료와 정보 접근은 ‘이적 표현물’이라는 이름 아래 철저히 금기시됐다. 반공(反共)이 국시(國是)였던 1970~1980년대 남북은 체제 경쟁의 하나로 삐라(전단)를 주고받으며 체제 선전에 열을 올렸다. 당시 등산로와 유원지·학교 등에는 ‘삐라 수거함’이 비치됐고 신고하면 학용품과 현금 포상금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대북 전단은 남북관계의 변화와 시대적 흐름에 따라 2000년대 초부터 공식 중단됐다.

북한에 대한 정보 개방은 김대중 정부가 햇볕 정책의 실천 과제로 추진한 ‘남북 3통(三通) 정책’으로 본격화됐다. 통신을 통해 연락 체계를 구축하고 통행으로 금지된 선을 넘어 오가며 통상으로 물자 교류와 경제 협력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3통 정책은 체제 위협에 대한 북한의 공포와 북핵 문제, 남남갈등 등으로 실패했다. 북한이 교류보다는 생존을 원했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 개방 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시작됐다. 2023년 초 노동신문 열람 확대와 북한 조선중앙TV 시청 등 선제적 개방을 공언했다. 종북 반국가세력의 북한 정보 왜곡과 조작을 막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우월성을 통한 심리적 승리가 명분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하자 오히려 북한 정보 규제를 강화하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이재명 정부가 북한 매체 개방을 다시 추진하는 이유는 북한 매체를 날 것 그대로 접해 그들의 모순을 스스로 깨닫는 우리 국민의 민주적 면역력을 믿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남북 간 신뢰가 싹트고 평화 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체제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안보의 후퇴가 아니며 정보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란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북한 매체에 대한 접근 제한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위험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매체 개방을 추진했던 윤석열 정부 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 매체 개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보 불안’과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대북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매체 개방이 ‘수동적 방어’에서 ‘능동적 대응’으로 전환돼 오히려 뚫리지 않는 ‘안보의 방패’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북한의 실상을 알려 가짜뉴스를 막는 것이 최고의 반공 교육으로 막연한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민주적 면역력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튼튼한 안보가 구축되고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진정성이 확보된다. 젊은 세대는 북한을 잘 알지 못한다. 막아두면 오히려 북한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북한의 현실과 억지스러운 주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평화의 파수꾼’이 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7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을 김대중 정부 때의 ‘정보는 국력이다’로 다시 바꿨다. 국민주권 정부 시대를 맞아 ‘국민의 국정원’으로 발전해 나가자는 의지를 반영했다.

북한 매체 개방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알 권리’라는 기본권과 ‘국가 안보’라는 공익 사이에서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국가보안법 등 법과 제도적 정비를 통한 단계적 개방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