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기리는 날이다. 스스로를 낮추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높이는 기쁘고도 흥분된 주일이 아닐 수 없다. 선지자가 걸어간 길을 후대가 바라보면 쉽고 당연해 보이지만,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을 통해 얻어졌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절대자가 스스로를 희생해 죄를 대신한다는 교리는 전례가 없었다. 현대에 와서도 인류에게 가장 숭고한 가치인 ‘희생’이라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 이전에는 전무했던 개념이고, 그 희생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군림하실 수 있었다.
음악 역사에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가지는 위치는 이전의 음악에서 전승한 중요한 가치를 희생함으로써 확립되었다. 바흐 이전의 음악은 우리가 다장조·바단조라고 부르는 조성의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피타고라스부터 확립된 순정률이라는 자연 배음에서 파생된 음계를 사용했기 때문에 조성을 바꾸면 필연적으로 미분음(음과 음 사이의 음높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흐는 한 옥타브 안에서 12음을 균등하게 인위적으로 쪼개는 평균율을 사용해 이를 해결했다. 자연스럽게 운영되던 음의 질서를 작위적으로 정리했지만 이를 통해 광범위한 자유로움을 얻게 된 것은 놀라운 결과다. 바흐만큼 음악에 크게 이바지하고 영향을 끼친 작곡가는 전무하나, 오히려 그 위대함 때문에 과소평가 되곤 한다. 사람의 아들로서 시련을 피하고 싶은 본능을 이겨낸 예수님의 ‘희생정신’이 이어져 음악사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바흐 평균율 곡집 1권 1번 //youtu.be/gVah1cr3pU0?si=QBX4Yi7yY4ts8jWY
바흐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칸타타 ‘그의 나라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라’를 들어보자.(Bach J.S. Cantata BWV 11 ‘Lobet Gott in seinen Reichen’) 처음 도입부부터 3개의 트럼펫이 강렬하고 황홀하게 주님 승천의 기쁨을 노래한다. 현대적인 감성으로 들어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음악이 놀랍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우리는 2000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제례를 반복하며 이를 기념하고 있다. 바흐는 이 기적의 제례에 자신의 신앙을 녹여 음악으로 형상화했고, 현대의 우리는 과거인의 신앙고백을 듣는다. 장대한 시간 안에 녹아든 ‘우리의 왕을 위한 찬미’를 꺼내볼 수 있는 것은 현대인의 특권이다.
//youtu.be/-2bZ5w-lzqM?si=P1rucyRKySsF_NWC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