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진 재료로 만든 윤슬가야금을 연주하는 박경소씨.
설치미술가 남편 양쿠라 작가와
환경예술단체 ‘윤슬바다학교’ 설립
환경·예술 접목한 창작 워크숍 운영
참여자들과 업사이클 악기 제작·연주
기후위기 심각성·실천 방안 함께 고민
국악기로 연주된 가톨릭 성가 ‘가야금의 찬미’(바오로딸)를 기억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 음악을 넘나드는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엘리사벳)씨가 오랜만에 음반을 발표했다. 음반에는 경소씨가 직접 작곡한 주제곡 ‘윤슬바다학교’와 이 곡의 가야금 솔로 버전, 그리고 업사이클 악기로 연주한 ‘Trash Hunters’가 수록되어 있다. 딱 봐도 여느 연주곡 앨범과는 결이 다르다.
일단 ‘윤슬바다학교’는 경소씨와 남편 양준성(베드로, 활동명 양쿠라) 작가가 운영하는 환경예술단체다. 기후위기와 해양오염 문제를 예술을 통해 공감하고 대응하고자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2022년 대부도에 설립했다. 환경과 예술을 접목한 다채로운 창작 레지던시·워크숍·교육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고, 참여자들과 버려진 재료로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실천 방안을 고민한다. 그 철학이 담긴 곡이 윤슬가야금(업사이클 가야금)과 페트병 셰이커로 연주한 ‘Trash Hunters’다.
“공연이나 전시를 할 때 나무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거든요. 모두 폐기하는데, 그 폐목재를 사용한 거예요. 초반에는 유목을 건져서 사용했는데, 유목은 튼튼해서 가구에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가야금처럼 나무판 위에 쓰지 않는 낚싯줄을 얹고, 국악기에서는 안족이라고 하는데, 버려진 캔이나 페트병을 브리지로 삼는 거예요.”
5일 환경의 날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만난 경소씨에게 악기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버려진 재료로 단순한 타악기도 아니고, 음계를 지닌 악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레미파솔라시도’ 소리가 났다. 그녀는 ‘아기상어’부터 ‘가야금산조’까지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이 브리지가 어떤 소재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져요. 나무판의 길이가 짧으면 더 높은 음이 나고, 길면 더 낮은 음이 나고요. 윤슬바다학교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나무를 고르고 장식을 하면 음계를 표시한 뒤 연주법을 알려줘요. 미술팀과 음악팀이 모두 투입되는 거죠.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만든 뒤에는 버리고 가잖아요. 윤슬가야금은 다 가져가세요.(웃음)”
스튜디오에는 12줄의 전통 가야금부터 24줄의 개량 가야금까지 경소씨가 평소 연주하는 가야금도 자리하고 있다. 외적인 모습만큼이나 기존 가야금과 윤슬가야금의 소리는 확연히 다르다. 전문 연주자라면 누구보다 악기와 음색에 대한 민감도가 높을 텐데 타협이 되는지 궁금했다.
“음색도 다르고 구현할 수 있는 영역도 차이가 크죠. 가야금은 명주실을 사용해 또렷한 소리가 나지만, 윤슬가야금은 마찰음이 더 심하고요. 그런데 기존 악기는 기본적인 틀이 있으니까 연주법이 정해져 있고 관련 규칙도 많잖아요. 윤슬가야금은 완벽한 악기가 아니라서 어떻게 연주해도 상관없어요. 보통 외줄로 만들지만, 제가 음반에서 연주한 건 두 줄짜리였어요. 제주도에서 진행한 워크숍에서는 긴 나무에 세 명이 앉아서 연주한 적도 있고요. 오랫동안 가야금을 했지만, 전통 음악뿐만 아니라 해외활동을 통해 재즈·현대음악·전자음악도 많이 해서 오히려 음악적으로 확장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일찌감치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문제를 다뤄왔다. 활용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분야에서 실천적으로 접근한 건 드문 일이다.
“저도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껏 음악만 했고, 특히 전통 음악을 했으니까 선생님들의 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는 게 먼저였거든요. 남편을 알게 되면서 저도 틀을 벗게 된 거죠. 양쿠라 작가는 설치미술을 하니까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작하는 데 익숙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지금껏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바다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그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음이 뻥 뚫리는 상쾌함을 느꼈다면 어느덧 침식과 미세 플라스틱으로 아파하는 바다가 보인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도, 버려서 떠밀려온 것도 매우 많다.

윤슬바다학교 음반 커버. 출처=윤슬바다학교

해양쓰레기로 만든 윤슬가야금. 출처=윤슬바다학교
“양쿠라 작가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오랫동안 작업해왔고 다채로운 분야와 협업해 왔어요. 저도 참여해 보니,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저희가 레지던시(일정 기간 창작 공간과 활동 지원)를 공모하면 100여 명이 지원해요. 온라인으로도 생태와 예술·재난 관련 활동가들의 강의를 무료로 진행하는데, 정말 많은 분이 보세요. 이제 국악계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여러 분야의 인식과 실천이 중요한 거죠.”
두 사람은 이른바 ‘코로나 커플’이다. 2020년 경기창작센터에서 동료 작가로 만났다. 미술과 음악이라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이들이 팬데믹으로 한정된 공간에 머물며 서로의 작업과 내면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22년 결혼과 함께 윤슬바다학교를 열었다. 특히 양가 모두 가톨릭 집안이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결합됐다.
“다들 하느님 뜻이라고 생각해요. 집안에 신부님·수녀님도 계시고, 서로 종교가 같으니까 가족 공동체가 더 끈끈하고, 위로와 힘이 필요할 때 회복 방식도 같고요. 신앙은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데, 이런저런 활동이 많다 보니까 미사에 꼬박꼬박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재밌는 건 해외 일정 때는 택시 타고서라도 꼭 현지 성당에 가서 티를 내더라고요.(웃음) 지구 반대편에서도 ‘집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고해성사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고, 그런 작업은 예술가로서도 참 감사한 경험이에요.”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로 예술활동은 물론이고 지구 공동의 집을 지키는 데 발 벗고 나선 이들은 7월 서울남산국악당 ‘우리가족 국악캠프’에서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해양쓰레기로 악기와 탈을 만들고 연주와 춤을 배우는 시간이다. 이렇게 대부도뿐만 아니라 찾아가는 학교, 팝업 워크숍 등도 계획하고 있다.
“서양악기와 달리 국악기는 습도나 온도에 대항할 수 있는 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내구성이 떨어져요. 그래서 동남아 국가에서는 연주하기 힘들어요. 결국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국악기는 살아남기 힘들 거예요. 저와 친구들은 지금껏 굉장히 많은 품을 들이고 온 가족의 지원을 받으면서 음악을 해왔어요. 그런데 그 이면과 저변에는 더 큰 개념의 음악이 있잖아요. ‘윤슬’이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거든요. 저는 가야금 연주자니까 음악활동을 통해 세상에 작은 변화의 물결을 퍼뜨려 나가고자 합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