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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생활/문화/ > 문화
2025.12.2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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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대성당 오르가니스트 채훈병 씨 “연주는 기도…신자들 마음 모아 하느님께 바쳐요”

독일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쾰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인 쾰른대성당. 유서 깊은 성당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오르간 연주는 성당을 찾은 이들을 영적인 세계로 이끈다. 이 오르간을 연주하는 이는 채훈병(티모테오) 씨다. 2025년 7월 한국인 최초로 쾰른대성당의 공식 보조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된 채 씨의 음악과 신앙 이야기를 들어봤다.


"쾰른대성당에서 처음 연주를 한 때는 2022년 어느 정오 기도회였어요. 거대한 오르간 앞에 앉아 덜덜 떨었던 날이 아직 생생해요. 그렇게 대타 연주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정식 직책을 받게 됐죠. 그때도, 지금도 설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어요."


쾰른대성당은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일주일에 40대 이상의 미사와 전례가 봉헌되며, 수많은 교구 행사와 투어 프로그램까지 이뤄져 채 씨를 포함한 세 명의 오르가니스트가 연주를 분담하고 있다.


이처럼 연주자로서의 바쁜 일상은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2012년 새내기 신학생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어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더 이상 성소의 길을 갈 수는 없었어요. 그때 개인 피정을 위해 찾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수사님들의 기도와 오르간 연주 소리에 매료됐어요. 어려서 피아노를 배운 데다, 신학교 전례음악부에서 활동하며 음악을 통한 봉사의 기쁨을 느꼈기에 교회음악을 공부해 보기로 했죠."


채 씨는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에서 오르간을 공부하던 중 독일 쾰른 유학길에 올랐다. 쾰른에서 가톨릭 교회음악전공 학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석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오르간은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일한 전례 악기다. 아름다운 소리로 전례의 신비와 의미가 더해지도록 한다. 그렇기에 채 씨는 오르간을 연주할수록 신앙과 깊이 연결된다고 고백한다.


"성당에서 연주하는 오르간은 제게 하나의 기도와 같아요. 스스로를 위해 바치기도 하지만 전례 직무자로서의 기도이기도 해요. 사제가 신자들의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올리듯, 음악으로 마음들을 하나로 모으는 거죠. 그래서 제 연주가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연주 전에는 항상 성호를 긋고 기도해요. 찬송 소리가 저의 반주를 뚫고 힘차게 나올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교회음악가로서의 삶이 언제나 은혜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연주와 연습을 제외한 시간에는 처리해야 할 수많은 행정 업무와 단원 교육 등이 남아 있다. 독일에서 교회음악가는 준공무원에 속하기 때문. 특히 그는 현재 쾰른 성브루노성당의 칸토르(음악감독)와 청주교구 성음악 자문위원 등으로도 일하고 있다.


"교회음악가라는 직책이 하나의 직업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어요. 그래서 쉬는 날이면 다른 미사에 자주 참례하려 해요. 그저 한 명의 신자로서 영성체를 하고 기도하는 것이 저를 신앙인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힘이에요."


그는 신학생 시절 만난 한 신부의 신부로 살다가, 신부로 가는 것이 소원이라던 말을 깊이 새기고 있다.


"저 역시 지상의 교회음악가로 살다가 천상 여정을 떠나고 싶어요. 그동안 이곳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회음악 발전을 위해 힘쓰고 싶고요. 오르간은 아주 크고 거친 소리부터 약하고 여린 소리까지 낼 수 있는 다양한 음색을 지닌 악기예요. 성당에 앉아 오르간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오르간만의 매력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