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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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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내 곁의 사람들과 좋은 노년을 꿈꾸며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2026년이 되었다. 나는 이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말할 때 “올해 1월에 돌아가셨어요”가 아니라 “작년 1월에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세월이 가고 어머니를 잊어가는 것이 슬프고 미안하다. 애도가 끝나지를 않는다.

나의 첫 책 「연애(緣愛) : 아흔 살 내 늙은 어머니 이야기」는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돌보는 사이였다. 늙은 어머니는 손주 같은 며느리의 마음을, 젊고 어린 며느리는 나이 많은 어머니의 몸을. 우리는 돌봄을 주고받았다.

서른 살에 결혼했을 때 시어머니의 나이는 75세였다. 나는 젊은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신체적인 늙음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로서의 노년도 모두 생경했다. 내 엄마와 아빠는 이제 막 노년기에 들어서는 중이어서 어머니를 대할 때 참고할 만한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우는 나는 그래서 노년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아니라 내 옆의 노인을 알고 싶은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이었다.

그때부터 노년을 키워드로 하는 모든 책을 찾아봤다. 그림책·소설·에세이·시·인문서·만화. 모든 책 속에 노년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년이 되고 그러므로 내 옆의 누군가는 항상 노인이다. 노년은 뚝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찾아서 읽다 보니 생각보다 노년은 다채로웠다. ‘나이 들었으니까, 이제 곧 끝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 말들로 결론짓기에 노년은 무척 다채로웠다. 노년이 오면 슬픔과 두려움·아픔·회한 그런 감정들이 급속도로 더해진다. 하지만 기쁨·설렘·편안함·행복·안정감 이런 감정들 또한 노년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진다. 노년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가올 내 노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내 곁의 노년들을 긍정할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속에 하나의 노년이 있었고 자연스레 내 곁의 노인이 떠올랐다. 한 권의 책과 하나의 이야기. 한 편의 독서 에세이와 하나의 노년 에세이. 그렇게 서른여섯 편의 이야기를 묶어 두 번째 책 「노년을 읽습니다」를 완성했다. 특별하지 않고 내 주변에 흔한 노년이지만, 책으로 읽는 노년은 관찰하는 마음이 되어서인지 특별해진다. 노년을 새롭게 보고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책이 나온 후 나는 요즘 독자들과 우리의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미 지나간 내 부모의 노년, 지금 노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본인의 노년, 또는 다가올 우리 모두의 노년에 대해. 신앙에서도 노출의 역할이 확실히 있듯이 노년도 노출이다. 많이 접하고 많이 이야기할수록 이해는 깊어지고 불안은 적어진다. 너도 나도 모두 맞이하는 노년이라면 나도 잘 늙을 수 있지 않을까.

연대에 관해 생각한다. 적극적 목적을 가진 어떤 행동으로서의 연대가 아니라 늙는 마음, 늙을 마음의 연대. 내 곁의 사람들과 나의 노년, 너의 노년, 우리의 노년을 책과 함께 이야기하며, 좋은 노년을 꿈꾸어 보는 새해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