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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 사회사목
2025.1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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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으로 시작하는 행복한 ‘루틴’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1) 루틴에 대하여
서효인 시인 가족.


다운증후군을 지닌 첫째는 부지런하다. 우리 가족 중 가장 먼저 일어나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 고독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상대적 게으름쟁이인 다른 가족이 하나씩 기상하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고 아직 잠이 덜 깨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는 엄마·아빠·동생을 순서대로 안아준다. 소파도 아닌 바닥에 앉아 있다가 사람이 방에서 나오면 영차 일어나 꼭 안고서 다시 앉는다. 몇 년째 이어지는 이 반복은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모두 아침마다 첫째 앞으로 가 양팔을 벌리는 것이다. 녀석이 우리를 안아주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포옹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습관이라고도 하고 버릇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요즘은 ‘루틴’이라는 말도 친숙하다. 야구 같은 스포츠에서 곧잘 쓰였는데 요새는 좀더 너르게 활용하는 듯하다. 예컨대 어느 야구선수는 오전 11시에 출근해 먼저 러닝을 하고, 어깨 보강 운동 후 캐치볼과 스윙 연습까지 마친 후 경기에 들어서길 반복한다. 다른 선수는 죄다 건너뛰고 수비 연습에 매진하기도 한다. 프로선수쯤 되었으니 어떤 반복, 그러니까 루틴이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지 경험으로 알았을 것이다.

일반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몇 시에 일어나야 회사에 지각하지 않고, 전철과 버스는 어떻게 갈아타야 가장 빠르게 출근하는지 경험으로 안다. 그는 커피부터 마시고 메일 확인 후 하루 계획을 노트에 적기도 할 것이다. 옆 부서 김 대리는 죄다 건너뛰고 책상에 앉자마자 주식 차트부터 들여다볼 수도 있다. 모두 적당한 반복이다. 삶의 루틴이다.

과도한 루틴은 강박감이 되기도 한다. 다시 야구선수의 예로 돌아가 보자. 한 번 경기에 이기면 패배할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는 투수, 경기력이 좋았던 날 입었던 속옷 색깔을 기억해 고집하는 타자?. 이건 루틴이라기보다 징크스에 가깝다. 강박이라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다.

우리 아이에게도 징크스와 강박 사이의 무언가가 있다. 집의 모든 방문은 닫혀 있어야 하고, 대낮에도 거실 조명은 켜야만 하는 것이다. 녀석은 야구선수처럼 작은 우연에 좋은 기억이 있는 걸까? 그래서 사소한 습관을 반복하는 걸까? 알 수 없어서 우리는 그걸 강박이라 부르기로 했다. 첫째 고집도 만만치 않아서, 강박적인 행동을 교정하려 들 때면 아침 포옹의 단란함과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곤 했다.

첫째는 오늘 아침도 거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거실 조명을 켜고, 온 방의 문을 닫은 채. 나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아이 앞에 서서 양팔을 벌렸다.(아이 덕에 생긴 나의 아침 루틴이다) 녀석은 영차 일어나 나를 안은 채 고개를 들어 방긋 웃는다. 오, 다시 보니 웃어주는 것도 루틴이었구나. 아침에 웃을 수 있다니 좋은 반복이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루틴이다.

아이는 가족을 사랑하니 아침마다 모두 일어나길 기다려 차례차례 안아주고 웃어주는 거겠지. 불을 켜고 문을 닫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곰곰 생각하는데 아이가 저벅저벅 걸어가 내가 열어놓고 온 화장실 문을 꾹 닫는다. 그래, 너에게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한 번 더 안아달라는 의미로 아이에게 슬며시 다가가 다시 양팔을 벌렸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좋을 반복을 위해서.

서효인(요한 세례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