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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는 ‘이웃살이’
이주민과 20년 동반한 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 이웃살이’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6-37)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다. 이 말씀을 20년간 실천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이주민을 이웃으로 여기는 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이웃살이’다. 4월 13일이면 설립 20주년을 맞는 이웃살이를 찾았다.

베이스캠프
“모텔 비싸요. 도움 많이 받고 있어요. 여기 너무 좋아요.”
식품공장에 취업할 예정인 인도에서 온 산립씨는 서툰 한국말로 ‘이웃살이’ 식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복도에선 취업에 성공해 떠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센터장 안정호 신부와 작별 인사를 한다. “토마토 농장 가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프면 안 돼요. 건강해야 해요. 힘들면 또 와요.”
동시에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입소했고, 1층에선 태국 이주노동자들이 입소 전 상담 중이다. 이웃살이에는 이처럼 취업 전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2004년 시행된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제조업과 3D 업종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총 4년 10개월의 체류기간 중 사업장 변경제한은 3회이며, 3개월 안에 취업하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가 된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를 유치했지만, 취업 전 거처는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웃살이 쉼터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제조업 공장이 많은 인근 김포에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찾고 있다.
의료·복지 담당 오현철 신부는 “쉼터에 처음 온 이들에게 이곳을 ‘베이스 캠프’라고 소개한다”고 했다. “일터 변경 전 다시 온 이들을 보면 살이 쪽 빠져있어요. 참 힘든 일을 합니다. 혹독한 곳이라도 베이스 캠프가 있으면 올라갈 수 있잖아요. 이곳은 딱 그런 곳입니다.”
두 번째 머물고 있는 캄보디아 출신 뚜이씨는 “주·야간으로 일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여기서 충전한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집과 같은 이곳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다 보니
이웃살이를 설립한 안정호 신부는 “양성기 때 노동상담을 한 경험이 있어 이주노동자는 많지만, 상담소가 없었던 김포 지역에서 시작해보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마땅한 사무실을 구하기 어려워 동떨어진 곳에 2층 단독 주택을 전세로 얻었다. 그렇게 2005년 4월 13일 ‘이주노동자의 집 이웃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어느새 상담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하고 음식을 해먹는 등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러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남는 방에 머물게 했다. 많을 때는 30명 이상 함께 지냈다. 주말에는 실무자 1명과 자원봉사자 1명으로 한국어 수업도 열었다.
그렇게 규모가 커지고 역할이 다양해지면서 여러 곳을 옮기다 2016년 김포 통진읍 소재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 이웃살이’를 마련해 현재까지 꾸려오고 있다. 때론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곳곳에서 주요한 몫을 담당하기도 한다. 교회는 이런 일들을 성령의 이끄심이라 한다. “하다 보니 이렇게 흘러왔네요.”'

‘쉼터’ ‘꿈터’ ‘레인보우’
현재 쉼터는 2개소에서 50명을 받고 있다. 구직 중인 이주노동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숙소다. 인원이 초과되면 임시방편으로 강당에 매트리스를 깔고 머물게 한다. 그마저도 부족해 대기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업무도 초기에는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을 주로 했지만, 현재는 이주민 정착을 위한 활동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이 늘어남에 따라 자녀 문제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웃살이는 ‘꿈터’라는 이름으로 매주 토요일 이주배경아동들의 인성 및 진로를 위한 활동을 진행한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관계 안에서 겪는 어려움을 미술치료로 돕고 있다. 지하 창고에는 방음벽을 설치해 밴드 연습실도 만들었다. 이곳에서 연습한 학생들은 연말 한국어 발표회 때 작은 콘서트를 연다. 지역 네트워크와 연대해 멘토링 활동도 하고 있다. 1년에 두 번은 문화체험도 하고 여름캠프도 간다. 무엇보다 언제든 방문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둬 마당에선 축구를 하거나, 저녁에 출출해지면 부엌에서 라면도 자유롭게 끓여 먹고 간다. 아이들의 더없는 놀이터이자 힐링 장소다.
설립 초기 시작했던 한국어 수업은 서강대 어학원 교사들이 마련한 한국어 프로그램으로 전문성을 갖춘 후 2015년 한국어 교실로 문을 열었다.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 한국어교사 자격증이 있다. 주일이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주민 150명으로 센터가 꽉 찬다. 교실 부족으로 인근 인천교구 통진본당·도서관과도 연계하고 있다. 생존을 돕고자 시작했던 초기 한국어 수업은 한국어 교실로 성장해 이주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찾을 수 있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주민 신앙공동체를 위해 매주 토요일에는 베트남 미사, 마지막 주일에는 영어 미사도 봉헌하고 있다. 이렇듯 많은 이주민이 모이면서 매주 주일에 점심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레인보우 식당’.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쉼터’이자 꿈을 키우는 ‘꿈터’, 다양한 맛이 섞인 레인보우 식당이 있는 곳이 바로 이웃살이 공동체다.

존재에 불법은 없다
처음부터 미등록 체류자인 사람은 없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왔지만 3개월 안에 취업하지 못해 미등록이 된 경우 등 여러 제도적 맹점으로 양산되고 있다. 전국에 40만, 김포에 3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눈에 띄는 점은 임산부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오 신부는 “출산 후 아이가 아파서 온 경우가 많아, 아예 산전검사부터 시행하고 있다”며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기에 제도권 안에서 해결되면 하고, 안 되면 교회 안에서, 그래도 안 되면 모금으로 돕고 있다”고 했다.
“이주민 중에는 사실혼이 많습니다. 결혼식을 하고도 이혼하는데, 사실혼은 어떻겠어요. 그만큼 이주민 미혼모가 많다는 거죠. 또 다른 빈곤층입니다. 자녀 출산을 돕다가 이젠 월세와 보육료·장학금 등 상황에 따라 긴급 생계비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소풍도 가고요. 역차별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만남이 없었기 때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직접 만나 보면 같은 이웃임을 다들 느끼죠. 행정법상 체류기간이 초과한 것이지,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될 순 없습니다.”

이웃살이
이웃살이에는 ‘나눔터’가 있다.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고 옷가지나 아기용품 등이 잔뜩 쌓여있다. 오 신부는 “나눔터 물건 상당 부분은 이주민이 내놓은 것”이라며 “이곳은 단순히 복지시설의 개념을 넘어 나눔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라고 했다. 또 “후원자들 도움으로 김포쌀이 떨어진 적이 없다”며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매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살이’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따왔다. ‘이웃살이’의 이웃이란 ‘내 이웃’ ‘네 이웃’ ‘내국인’ ‘외국인’ 등 구별이나 제한 없이, 나와 너를 차별하지 않는, 사랑 안에 하나 되는 관계, 즉 개방과 포용의 대상이다.
김포에는 이웃살이를 시작으로 현재 20여 개 단체가 이주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상담소나 쉼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안 신부는 “함께 살면서 부딪혀야 하고, 문제 소지가 우려되기 때문”이라며 “막상 해보면 이주민들끼리 협력해서 잘 살아간다”고 했다.
“낯선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공감대가 있으니까 서툰 한국어로 소통하며 서로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들의 시선에서 함께하고 있고요. 말 그대로 이웃입니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는 이웃이죠. 20년을 돌아보면 그렇게 이웃살이를 배워나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