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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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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조각 모셔진 샤이에른 베네딕도회 수도원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22. 독일 바이에른 ‘샤이에른 베네딕도회 수도원’
샤이에른 베네딕도회 수도원. 바이에른 베네딕도 연합회의 일원으로, 1077년 하치가 백작 부인이 바이어리시첼 숲에 설립한 작은 은수처에서 시작됐다. 1119년 비텔스바흐 오토 5세 백작이 왕가의 성채를 기증하면서 이곳에 자리 잡았다. 현재 순례자들을 반기는 열린 공동체로서, 피정의 집·학교·양조장·증류소·농장·레스토랑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샤이에른 수도원은 면적이 2400km²인 세계 최대 홉 생산지 홀러타우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1119년부터 맥주를 양조했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생산되며, 수도원 비어가르텐에서 맛볼 수 있다.


뮌헨에서 북쪽으로 50㎞ 떨어진 작은 동네에는 바이에른 지방과 비텔스바흐 가문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는 웅장한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있습니다. 아우토반을 나오면 하늘로 곧게 뻗은 덩굴밭이 줄지어 나타납니다. 맥주 원료인 세계 최대 홉 생산지 할러타우 지역에 들어선 건데요. 그 남쪽 언저리 구릉지대 마을에 샤이에른 수도원이 있습니다.



옛 바이에른의 성채에 자리한 베네딕도회 수도원

푸른 들판 너머로 멀리 웅장한 수도원 건물과 종탑이 보입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맥주를 양조한 목적은 자체 식량 조달과 순례자 및 손님들을 환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여기에 터를 잡은 것은 아닙니다. 원래 샤이에른 수도원은 바이에른 명문가인 비텔스바흐 가문의 성채였습니다.

수도원의 시작은 1077년 하치가 백작 부인이 두 은수자를 위해 바이리시첼의 숲에 세운 작은 은수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몇 년 뒤에 히르사우 수도원의 베네딕도회 수도자 12명도 그곳에 파견됩니다. 하지만 물 공급 등의 어려움으로 세 번이나 장소를 옮기다가 1119년 오토 5세 백작이 가문의 성채를 베네딕도회 공동체가 머물 수도원으로 전환하면서 이곳에 정주하게 됐지요.

수도원 정문을 지나면 분수가 있는 넓은 안뜰이 펼쳐집니다. 안뜰을 가로질러 수도원 성당이 보입니다. 샤이에른의 수도자는 당시 독일 남부지역의 수도원 개혁을 주도하던 히르사우 수도원 개혁 정신에 따라 살았습니다. 베네딕도 규칙에 따라 공동 기도와 노동을 철저히 이행하며 문화와 학문을 진흥하려 했기에, 단지 중심에는 성모 승천과 성십자가에 봉헌된 수도원 성당이 자리 잡았고, 도서관과 필사실도 마련했습니다. 수도원 주변에 농장과 양조장 등 여러 사업체가 있는 것도 이런 전통 때문입니다.

수도원 성당은 수백 년에 걸쳐 확장과 리모델링을 거쳤기에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고딕·바로크·후기 로코코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수도원 성당 안은 흰 벽에 밝게 채색된 천장화로 환합니다. 자연스레 시선은 화려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주제대로 이끌립니다. 비틀린 기둥들과 성인 조각들로 둘러싸인 제대 중앙에는 성모님의 승천과 천상 모후의 관을 쓰는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이 보입니다.
십자가 소성당과 성십자가 성유물함. 1738/1739년에 새롭게 소성당을 로코코 양식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왕실 소성당에 있던 성유물을 이곳으로 옮겼다. 감실 아래에 있는 비잔티움 총대주교 십자가 형태의 성유물함은 그때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샤이에른 지자체의 문장도 이중 형태의 성 십자가를 모티브로 했다.
성모 승천과 성 십자가 수도원 성당 안과 밖 모습. 본당 천장화는 성모 승천과 천상 모후의 관을 쓰는 모습, 성 베네딕도의 시성, 성 십자가의 발견과 구원을 형상화했다. 1980년 3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성 십자가 성유물이 독일 수도원에 있는 까닭

샤이에른 수도원은 ‘성 십자가 수도원’이라고도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 십자가 성유물이 십자가 소성당에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성당 창으로 들어온 빛이 교회와 세상의 십자가 경배 모습을 그린 천장화를 밝힙니다. 그리스도는 오른손에 샤이에른 십자가를 쥐고 계시며, 거기서 나온 광선이 수도원의 창설자와 수도자들·세속 성직자들·세속 영주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을 십자가가 왜 독일에 있을까? 그 이야기는 십자군 원정 시대에 예루살렘 왕국의 궁정 성직자였던 풀케리우스에서 시작됩니다. 제1차 십자군 원정 때 샹파뉴의 로베르 2세 백작을 동행한 사제로,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라틴 왕국 내에 계속 남아 예루살렘 왕국의 궁정에서 활동했지요. 성지 유지를 위한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콘라트 성직자를 유럽으로 파견합니다. 이때 성 십자가 조각과 진품 증서를 지니고 가도록 했습니다.

성 십자가는 325년 성 헬레나가 발견한 뒤 여러 조각으로 나눠 콘스탄티노플 등 다른 장소로 옮겼습니다. 아마도 풀케리우스가 유럽으로 보낸 성 십자가 성유물은 630년 동로마 제국 황제가 예루살렘으로 반환한 후 사라졌다가 1099년 8월에 성묘 교회의 은상자에서 발견된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 성유물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텔스바흐 가문의 일족으로 당대 바이에른 실세인 다하우 백작가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1182년 다하우 백작 가문의 마지막 남자 상속자가 죽으면서 유해와 함께 비텔스바흐 가문의 묘지인 샤이에른 수도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성십자가 성유물은 울리히 3세 아빠스 때 수도원으로 옮겨졌지만, 일반 신자들이 경배하도록 공개한 것은 후임 아빠스가 재임하던 1180년부터였습니다. 그때부터 성 십자가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도원 제의방. 수백 년 동안 사용되어 온 제의와 제구가 있는 곳이다. 15세기 지어졌으나, 섬세하게 조각된 천장과 벽 장식·가구들은 바로크 시대 작품이다. 출처=샤이에른수도원

샤이에른 십자가

성 십자가 성유물은 이중십자가 형태의 성물함에 모셔져 있습니다. 십자가에 하나 더 있는 가로막대는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의 팻말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1738년 소성당을 로코코 양식으로 개축하면서 성 십자가가 예루살렘에서 왔음을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고딕 양식 성물함을 녹여서 이중 십자가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이런 형태의 십자가를 독일어권에서는 샤이에른 십자가라고 부르지요.

그리스도가 못 박힌 진짜 십자가 조각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중세부터 많은 순례자가 이곳에 와서 기도했고, 특히 성 십자가 축일에는 순례객으로 붐볐습니다. 1362년에는 아비뇽 교황청 문서에 샤이에른 수도원에 성 십자가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주님과 성모님 대축일 등에 이곳을 순례하는 이들에게 40일의 대사를 준다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많은 순례자가 이 소성당을 다녀갔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의 작은 조각은 그 모든 세월을 지키며, 위로와 축복을 구했던 이들의 산증인입니다. 이 자리에서 성유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순례자가 영적 유대를 맺는 것, 순례가 주는 또 다른 경험이 아닌가 합니다.

 

<순례 팁>

※ 뮌헨에서 자동차로 50분 소요(50㎞), 뮌헨역에서 파펜호펜역(일름)까지 기차로 이동(30여 분)한 후 버스로 환승(네 정거장)하거나 택시 이용(10㎞).

※ 수도원 가이드 투어 : 주일 및 대축일 15:00. 유료이나 도서관·제의방 등 공개하지 않은 장소를 둘러볼 수 있다.(1시간 소요)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양조장 투어도 있다.

※ 샤이에른 수도원 전례 : 평일 미사 17:45(월·화·목·금), 주일 및 대축일 미사 7:30·8:30·10:00·19:00 / 십자가 경배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