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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특집기획
2025.06.0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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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배달하 필립보 신부님을 내 젊은 날 주말마다 가던 시골집의 본당 신부님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행운이었다. 당시 고3이던 딸이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주일 미사에 참례했다가, 신부님의 강론에 감동하여 고3인데도 바로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해서 세례를 받은 것도 그분의 훌륭하고 좋은 강론 때문이었다. 


그분의 여러 가지 좋은 강론 중에서 기도에 대한 것은 아직도 내게 선명히 남아 있다. 탈출기 17장 12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싸우는 동안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려놓으면 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모세는 지치기 시작했고 자꾸 손이 내려가자, 사람들이 그를 앉히고 양쪽에서 그의 손을 억지로 받쳐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이 구절이 무슨 소린지 몰랐다. 특히 구약에 보면 이런 걸 왜 성경에 썼을까 싶은 구절이 많이 나오는데, 신부님이 이 구절을 가지고 강론하신 것이었다.


"무엇이든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의 이치입니다"라는 말로 강론은 시작되었다. "스포츠도 등산도 요리도, 하다못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매 맞는 행위라도 소위 이골이라는 게 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도는 해도 해도 힘들어요. 이 모세의 행위는 기도에 대한 말입니다. 기도는 자발적으로 이렇게 해도 좋지만 정말 힘들면 억지로 남에게 끌려서라도 하라는 말이에요. 이 구절은 그런 뜻입니다. "


좋은 말씀을 들었을 때 언제나 그렇듯, 가슴이 작게 콩콩 뛰었다. 기도에 어려움을 겪던 나에게, 왜 나는 묵주기도를 하는 동안 잡념의 잔치를 벌이는 것일까? 죄스럽던 나에게 하신 말씀인 것 같아서였다. 이 강론은 후에 아빌라의 데레사의 거둠기도라는 것에서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기도하려는 의지를 보신다. 기도하는 시간이 힘겹고 아무 감동이 없어도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무르려는 사랑의 선택 자체를 받으신다."


운전할 때나 여행할 때 늘 묵주기도를 하곤 하는데, 가끔은 내가 어디까지 했지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의식적으로 했던 묵상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곤 하는데, 한번은 어떤 나눔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묵주기도는 묵상이야. 그렇게 양으로 많이 한다고 해서 묵주기도가 제대로 되는 거야?"하고 누군가 묻기도 했다. - 대체 이 바리사이 자매들은 어디에나 있고, 꼭 제때 나타난다! -


가끔은 그런 말들에 기운이 빠져 내가 지금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싶지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를 보시는 거라는 말씀에 힘을 내곤 한다. 가끔 누군가가 묻는다. 기도하면 믿어지나요? 믿어져야 기도하나요? 


나는 대답한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믿음은 그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기도합니다.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제가 늘 당신을 마음속에 그리고 매 순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라고. 혹시나 ? 그럴 리가 없지만 - "예수님이 내게 오셔서 무엇을 주랴. 하나만 말해보라 한다면 저는 대답할 거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요즈음 하느님은 내 기도를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는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마음이 그리 상하지 않는 것은 그 지루한 양의 기도를 통해 나의 믿음이 아주 작게 자랐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분은 언제나 내 바람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깨닫게 되었기에 말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