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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특집기획
2025.07.0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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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이와 같이

왕복 10시간이 걸리고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내가 서울 구치소 사형수 미사 봉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무엇보다 현재 사형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마땅한 봉사자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2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만나며 지금은 나의 친구가 된 우리 사형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더 큰 이유겠지만 아마 다른 이유도 있지 싶다.



 



이번 달에도 세 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다섯 시 반에 길을 떠났다. 잠을 설친 탓인지, 아주 힘들었다. 커피 몇 잔으로는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엄청난 피곤을 견디며 들어선 교도소에서, 그러나 지난달보다 훨씬 맑아진 얼굴로 우리를 만나러 나오는 사형수 형제들을 보면 사실 이런 피곤은 사라진다. 다섯 명의 사형수 형제를 네 팀의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만나기 때문에 매달 보는 일은 없고 몇 달 만에 한 번 보기 때문에, 그의 삶의 흔적은 얼굴에 금방 나타나는데 거의 틀린 적이 없어 신기했다.



 



 



이번 달에 만난 형제는 내가 봉사자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할 때 가장 맘에 걸렸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가장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만나러 나왔다. 첫마디에 내가 “그동안 기도 많이 하고 잘 살았군요” 했는데, 그는 칭찬을 처음 받은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웃었다. 그는 지난번 내가 이 칼럼에 쓴 사람으로 무더위 속에서 묵주 120단을 하루 종일 바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묵주 많이 하죠?” 내가 물으니 그는 이번에는 “네” 하며 그냥 웃었다. 복음 나누기 시간에 그가 입을 열었다.



 



 



“지난주에 소 내에서 참을 수 없을 일을 당했어요. 예전의 나라면 그를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화를 내야 하나 보복을 해야 하나 사흘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깜짝 놀라 생각했어요. 내가 이걸 고민하고 있구나. 예전 같으면 그냥 보복했을 텐데… 그래도 묵주를 계속했어요. 억지로 묵주를 굴렸죠. 억지로 했는데, 그래도 되나요? ”



 



 



구치소 방문 중에 우리들은 지난날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이야기만을 나눈다. 그가 괴로워할 때마다 나는 가끔 그에게 말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당신은 죄인이고 나는 깨끗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느님 저울로 달면 어떨지 몰라요. 우리 모두 고만고만한 죄인일 수도 있어요. 게다가 당신은 이 연옥 같은 벌을 견디고 있고, 나는 내가 죄 없다고 생각하며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지내고 있죠.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듯해요. 기도는 원래 억지로 하는 게 대부분 아닌가요? ” 



 



 



면회소의 희미한 에어컨 아래서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의 범죄는 유명하고, 그걸 본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저런 놈은 바로 사형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처음 이 봉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절망적이었다. “죄송해요. 하느님, 차라리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믿어도 사람은 못 믿어요”라고 기도하던 때였다. 그러나 이 사형수 봉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인간에게 희망을 보았다. 내 주변의 모든 지식인과 부유한 사회지도층들에 느꼈던 절망을 이들이 치유해 준 셈이다.



 



 



미사 때마다 나는 기이한 체험을 했었다. “어쩌면 천국이 이와 같지 않을까?” 내가 봉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내가 봉사 받아 치유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는 다시 생각했다. 하늘나라는 이와 같은지도 모른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주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이 여기 있으니까. 나까지 모두.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