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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특집기획
2025.09.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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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땅에 탄생한 벨기에 스헤르펜회벨 바로크 성모 성지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44. 벨기에 스헤르펜회벨 성모 바실리카
스헤르펜회벨 성모 바실리카. 1606년 7월 2일 마리아 방문 축일(현재 5월 21일)에 합스부르크가의 알브레히트와 이사벨 대공 부부가 초석을 놓았고, 1627년에 완공됐다. 원래는 성당을 둘러싸고 칠각형 별 모양의 요새 형태를 띠었는데, 대공이 칠(七)의 모티브를 선택했고, 예수회 건축가 코베르허가 성당의 칠각형 평면·별 모양 정원·도시 그리드까지 칠의 반복을 구현했다. 1922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스헤르펜회벨 성모 바실리카의 돔과 성모자상. 칠각형의 금박 별 298개가 장식되어 있다.

플랑드르라고 하면 거기가 어디인지 낯설어하시겠지만,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지명입니다. 발음만 다를 뿐 일본 애니메이션 ‘플란더스의 개’(1975)의 무대가 바로 그 지방입니다. 폭설이 내리던 성탄 전야, 안트르베르펜 성모 대성당 안에서 한 줄기 빛이 루벤스의 십자가 제단화를 비추면서 천사들이 넬로와 파트라슈를 감싸 안던 장면은 기억에 지우기 힘듭니다. 그런데 같은 플랑드르의 끝자락 완만한 구릉 위에는 16~17세기 전란 속에서 힘든 이들이 찾던 성모 성지가 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동쪽으로 평야를 따라 달리면 지평선에 뜻밖의 실루엣이 나타납니다. 낮은 구릉 위에 금빛 별들이 박힌 돔, 스헤르펜회벨(Scherpenheuvel)의 성모 바실리카입니다. 성모 바실리카는 스헤르펜회벨 이름 대로 “뾰족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지요. 
스헤르펜회벨 성모에 관한 판화. 아직 바실리카 건립 전으로 참나무 위에 있는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마리아상과 알브레히트와 이사벨 대공 부부가 봉헌한 첫 석조성당(왼쪽), 초기 두 번의 기적의 당사자인 지체장애인 한스 클레멘츠, 악령이 들렸다가 치유된 카트린 뒤 뷔(가운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구교 경계의 땅에 피어오른 성모 신심

중세 말 이 언덕의 십자가 모양 참나무와 작은 성모자상을 둘러싼 이야기가 널리 퍼집니다. 1415년경 한 목동이 나무 아래에 떨어진 성모자상을 발견합니다. 집으로 가져가려 했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죠. 저녁이 되어 주인이 그를 발견하고, 성모자상을 나무에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은 뒤에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평범한 전설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이라는 시대 격랑과 맞물리며 교회사로 들어옵니다.

이곳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며 최전선이 교차하던 경계의 땅이었습니다. 1568년 네덜란드는 스페인에 맞서 독립의 날개를 펼칩니다. 칼뱅파가 주도하던 북부는 점차 네덜란드공화국연합을 이루었고, 가톨릭을 믿는 남부는 스페인을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왕가에 여전히 충성을 다했죠.

1580년부터 3년간 네덜란드 연합공화국의 신교군이 이 지역을 점령해 다스리는 동안 참나무 성모자상은 성상 파괴 광풍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를 스페인군이 다시 탈환하자, 주민들은 그전보다 더욱 자주 언덕을 찾았습니다. 특히 주변에 주둔하던 스페인군 부상병들과 환자들은 주민들처럼 스헤르펜회벨로 순례하며 기적을 체험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고 1602년에는 나무 근처에 목조 소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스헤르펜회벨 성모자상. 높이 약 30.5cm, 폭 11cm 크기의 성모자상으로 바실리카 주 제대에 모셔져 있다. 성모상의 옷은 이사벨 대공비가 스페인 관습에 따라 직접 수를 놓아 1603년 첫 순례 때 기증한 것이다. 소성당 건립 후 1604년에 참나무를 베었는데, 그 목재로 17세기 복제품들을 만들어 여러 성당과 수도원에 모셨다.

독립 이전부터 뿌리내린 바로크 성모 성지

스헤르펜회벨이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알브레히트와 이사벨 대공 부부의 도움이 컸습니다. 대공 부부는 1603년 석조 소성당 건립을 지원했고, 그해 11월 20일 이곳까지 6㎞를 걸어서 순례하며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단순히 개인적 신심에서 나온 순례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군의 전황이 암울했기 때문입니다.

1601년부터 스페인군은 벨기에의 오스텐더 항구를 점령하려 했으나 계속 실패했습니다. 되레 스페인군의 요충지인 스헤르토헨보스가 공격받기도 했죠. 순례 중 대공 부부는 오스텐더 함락에 성공하면 매년 이곳으로 순례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1604년 9월 22일 마침내 스페인군은 오스텐더에 진입합니다. 이로써 남부 네덜란드의 마지막 신교 요새가 함락되면서 위협도 사라졌습니다. 다들 스헤르펜회벨 성모님의 중재 덕분에 일어난 기적으로 여겼습니다.

1609년 ‘12년의 휴전’ 협정이 안트베르펜에서 체결되자, 대공 부부는 언덕에 새 바실리카를 짓습니다. 그리고 스헤르펜회벨 성모님을 남부 네덜란드의 미래 수호성인으로 엄숙히 선포하지요. 이 직후 메헬렌대교구는 기적을 조사해 성모 신심을 공인했고, 스헤르펜회벨 성모님과 관련된 공식 조사 기록을 모아 만든 누먼의 「기적집」(1604)이 각 나라 언어로 출간되면서 스헤르펜회벨은 유럽의 성모 성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지요. 17세기 동안 약 700건의 기적이 보고·수집되었습니다.
스헤르펜회벨 성모 바실리카의 주 제대. 제단화는 테오도르 반 룬이 성모 승천 등 성모님의 삶을 주제로 그렸다. 제대 뒤편 벽감에는 2011년 베네딕도 16세 교황이 봉헌한 황금 장미가 전시되어 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스헤르펜회벨 성모님과 관련된 인물과 기적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성모님의 ‘닫힌 동산’ 성모 바실리카

성모 바실리카는 초기 바로크 양식으로 벨기에 최초의 바실리카이자 순례 성당입니다. 금빛 별들이 햇빛을 받으면, 오래된 상징들이 현재형으로 반짝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최전선의 땅이 성모님의 정원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칠각형의 큰 구역 안에 원형 광장이 성당을 둘러싸고 있어서, 점점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성모님을 뵐 수 있는 “닫힌 동산, 봉해진 우물”(아가 4,12)을 구현했다고 합니다.

성당 정문을 지나면 중앙엔 웅장한 돔과 주 제대가 보입니다. 성당은 칠각형 평면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칠(七)은 성모 신심에서 중요한 상징입니다. 돔 아래 일곱 개의 기둥은 ‘성모 칠고(七苦)’를 구현해 놓았죠. 회랑을 따라 돌면 각 모서리에 있는 소성당과 제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주 제대에 작은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는데, 작지만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헤르펜회벨은 지금도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가 찾는 베네룩스의 큰 순례지입니다. 여러 도시의 신자들이 그곳을 도보로 순례하지만, 5월 1일 새벽 4시 안트베르펜에서 출발해 57㎞를 걸어 스헤르펜회벨에 도착하는 “그로테 트레크”가 유명하지요.

역사가는 스헤르펜회벨을 그 시대 정치 신심에서 탄생한 성지라고 보기도 합니다. 칼뱅주의의 위협에 맞선 가톨릭 신심의 요새를 만들려고 했다는 거지요. 하지만 전쟁과 분열의 시대에 민중의 위로이자 버팀목이 된 순례의 수도, 하느님의 질서를 담은 바로크의 ‘닫힌 동산’이 탄생한 것은 인간만의 의지가 아닌 하느님의 섭리가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순례 팁>

※ 브뤼셀 중앙역에서 루뱅을 거쳐 디스트역에서 하차(50분) 후 버스로 환승(N.30, 15분) 후 스헤르펜회벨 시청에서 하차. 브뤼셀에서 자동차로 50㎞ 거리.(45분 소요)

※ 성모 바실리카 미사: 주일과 대축일 07:30·08:30·10:00·11:00·16:00, 평일 08:00·11:00·15:00. 순례자 숙박은 마리아 하우스(Huis van Maria). 바실리카 좌우로 조그만 초 소성당에서 노베나 초 봉헌.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