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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67)

이주민과 난민들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대체로 차갑다. 인구 감소는 선진국들이 이미 다 겪었던 문제다. 일할 사람이 갈수록 없어지고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 인구가 감소한 이들 나라는 활발한 이민 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대다수 이민 희망자는 기회의 땅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리고자 하는 저소득층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반세기 전 유럽과 북미, 호주로 떠났던 한국인들 역시 같은 신세였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으며, 그때 당했던 수많은 차별과 멸시가 아직도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교회도 2001년부터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당시 ‘이민의 날’)을 제정한 것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도 다른 민족을 수용하지 못한 나라는 그리 좋은 결말을 갖지 못했다. 구약 성경의 열왕기하에서 함락한 예루살렘의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삼고 함부로 대한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2세(이탈리아어로 나부코)의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에 의해 오페라로 각색된다. 작품은 느부갓네살왕이 회개했다는 내용이지만, 실제 그는 유다인뿐 아니라 정복한 수많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학대하면서 제국의 부를 쌓아올린 인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죽고 나서 30년도 안 되어 바빌론은 멸망하고 만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youtu.be/ntflUU_xmqY?si=7RrZuPNmGG7siQoj
모세와 히브리인들을 학대하고 차별했던 이집트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5년 이전까지 한국 천주교회는 이에 대한 성경 기록을 ‘출애굽기’(出埃及記)라고 썼지만, 이후 그리스어와 라틴어 ‘Exodus’를 그대로 직역한 ‘탈출기’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Exodus’는 탈출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정표라는 의미도 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자리 잡은 이집트에서 그들의 성세를 질투한 새로 등극한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삼았고, 그들의 남자 아기를 모두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라고 명령했다. 모세는 이 박해 속에서 자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의 계시를 얻어 박해받는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주시키면서 그가 행한 놀라운 기적이 그 유명한 ‘10개의 재앙’이다.
이때가 대략 BC 1448~1447년이었고, 그 후 람세스 2세 등 이집트 전성기를 이끈 명군도 있었지만, 혹독한 민족차별 정책을 추구했던 이집트는 그후 성세를 이어 나가지 못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 싸움에서 안토니우스를 택했던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우스(후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로마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배제와 차별과 멸시는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온 적이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지만,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유명한 브루흐의 오라토리오 ‘모세’를 감상해보자.
박스 브루흐 오라토리오 ‘모세’ 1부
//youtu.be/zS8ujVu8OVA?si=PlEMPjG-g0U5LNSJ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