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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특집기획
2026.04.2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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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성월 특집-세계 성모발현지를 가다]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

전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동의 포성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평화는 여전히 기도의 언어 속에서만 살아 있는 듯하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땅은 인류가 가장 절박하게 평화를 부르짖던 시절에 열렸다. 1858년 루르드, 1917년 파티마, 1932~33년 벨기에 보랭과 바뇌. 성모의 메시지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세상의 죄악을 슬퍼하고 회개하라. 끊임없이 기도하라."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도 그 말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3월 14일부터 25일까지 가톨릭신문투어 성모발현지 순례단에 동행해 네 곳의 성지를 직접 찾았다. 성모 성월을 맞아 세 차례에 걸쳐 그 여정을 전한다.



무릎으로 걷는 참회의 길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여를 달리면 중부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 닿는다. 3월 중순의 이른 아침, 파티마 성지의 광장을 마주했다. 성모 성월인 5월이면 전 세계 순례자들로 가득 찬다는 그 광장이, 쌀쌀한 초봄의 냉기 속에 오히려 더 깊은 고요를 품고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참회의 길이다. 성지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발현 경당까지 약 700m, 흰 대리석 길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아직 차가운 날씨에도 몇몇 순례자들이 무릎을 꿇은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 무릎씩 내디딜 때마다 돌바닥에 살이 닿고, 그 위로 묵주알이 넘어간다. 완주하는 데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1917년, 전쟁의 한복판에서


파티마 발현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피로 물들이고 있던 바로 그때 시작됐다. 그해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성모 마리아는 세 어린이 루치아(10세)와 프란치스코(9세), 히야친타(7세)에게 나타났다. 동네의 가난한 목동 아이들, 세상에서 가장 낮고 힘없는 이들이었다.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에 평화가 오도록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할 것,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할 것. 


10월 13일 마지막 발현 날, 7만여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양이 빠르게 회전하며 다채로운 빛을 내뿜다가 땅으로 돌진했다. 폭풍우에 흠뻑 젖었던 옷과 진흙탕이던 땅은 그 순간 완전히 말라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발현은 1930년 파티마가 소속된 레이리아교구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이후 비오 12세 교황은 1942년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기념해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세계를 봉헌하고, 1946년에는 파티마 성모상에 왕관을 씌워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선포했다.


광장과 발현 경당, 로사리오 성모 대성당 등으로 이뤄진 지금의 성지는, 세 어린이가 양을 치다 첫 번째 섬광을 목격하고 성모를 처음 뵈었다고 전해지는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 들판 일대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백 년의 시간이 마주 보는 광장 


광장에는 백 년의 시간차를 두고 지어진 두 성당이 서로를 마주 본다. 한쪽 언덕 위에는 1928년 착공해 1953년 축복된 네오 바로크 양식의 로사리오 성모 대성당(Bas?lica de Nossa Senhora do Ros?rio de F?tima)이 있다. 65m 종탑이 눈길을 끄는 파티마 성지의 랜드마크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묵주 기도 15가지 신비를 주제로 한 15개의 제대가 좌우로 늘어서 있고,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발현, 파티마 메시지를 담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머금고 있다. 중앙 제대 좌우와 바로 앞에는 세 목동의 묘소가 있다.


반대편에는 2004년 공사를 시작해 3년 만에 완공된 현대식 원형 구조의 삼위일체 대성당(Bas?lica da Sant?ssima Trindade)이 낮고 넓게, 땅에 엎드리듯 자리 잡고 있다. 


9000여 명을 수용하는 이 성당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보낸 베드로 무덤 대리석으로 초석을 다졌으며, 로사리오 성모 대성당을 가리지 않도록 설계돼 넓은 광장을 포근하게 감싼다. 


둥근 성체 모양의 외관은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맞은편 제대를 바라보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한 공간에 담긴다. 제단 벽면의 금빛 모자이크는 세상 종말에 삼위일체를 경배하는 천상 교회를 웅장하게 그리며, 지상의 미사가 천상 예배로 이어지는 궁극의 목적을 상기시킨다.


이 두 거대한 건축물 사이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작고 소박한 발현 경당(Chapel of Apparitions)이다. 1917년 성모님이 발을 딛고 서 계셨던 참나무 자리에 세워진 이 작은 경당에는, 1920년 포르투갈 신자가 헌납해 같은 해 5월 13일 축복된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이 성모상은 발현 목격자인 루치아 수녀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됐다. 성모상의 왕관에는 1981년 5월 13일, 발현 기념일 당일 로마에서 피격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년 직접 봉헌한 총탄이 박혀 있다. 




찔린 심장, 장벽의 파편


삼위일체 대성당과 기도 구역 사이 지하, 150m 길이의 복도식 공간에 고해소와 경당들, 그리고 24시간 불을 밝히는 성체조배실이 있다. 그 근처에는 파티마 성모발현 100주년을 기해 만들어진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상이 놓여 있다. 루치아 수녀는 1917년 6월 발현 때 가시에 둘러싸여 찔리고 있는 심장을 보았다고 기술했다. 1925년 성모 마리아는 이 성심을 다시 보여주시며 호소하셨다. "너무 많은 이들이 가시로 내 심장을 찌르고 있는데, 이 가시를 빼주려는 이가 아무도 없구나." 여기에 발걸음이 오래 머무는 것은, 그 말씀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광장 오른편에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가 유리관 안에 서 있다. 무게 2.6톤의 베를린 장벽 실제 파편으로, 장벽 붕괴 후 독일 거주 포르투갈 이민자들의 모금으로 구매해 1994년 성지에 봉헌됐다. 1917년 성모님께서 전쟁의 종식과 러시아의 회개,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던 메시지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응답받았는지를 증언하는 상징물이다. 




발린호스와 십자가의 길


성지에서 도보 약 15분 거리에 있는 발린호스(Valinhos)에서는 1917년 8월 19일 네 번째 발현이 있었다. 파티마의 여섯 차례 발현 가운데, 코바 다 이리아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예외적인 발현이었다. 여기서 양을 치던 세 어린이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는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라고 당부했다. 


헝가리 가톨릭 신자들이 봉헌한 성모상과 석조 기념비가 그 장소를 표시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이들이 봉헌한 십자가의 길 14처와 부활을 기념하는 15처, 그리고 헝가리의 첫 번째 왕인 성 스테파노에게 바쳐진 성당이 자리한다. 그 길 끝 로카 도 카베수(Loca do Cabe?o)에는 1916년 성모 발현에 앞서 세 어린이에게 두 차례 나타났던 평화의 천사 발현지가 있다.



파티마의 밤


밤이 되면 성지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매일 밤 9시30분, 발현 경당에서 시작되는 묵주 기도와 촛불 행렬은 파티마 순례의 절정이다. 순례단이 참가한 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대표가 각자의 언어로 기도를 선창했고, 모두 함께 초를 높이 들고 아베 마리아를 노래했다. 한국어로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도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어 성모상을 모시고 성지를 한 바퀴 도는 촛불 행렬이 진행됐다. 행렬은 1920년대 후반 루르드 성지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으며, 날씨가 허락하는 한 연중 매일 열린다.


초 봉헌대 앞은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자들이 하나씩 봉헌한 불씨들이 모여 큰 불길을 이뤘다. 꺼져가던 불씨들이 모여 다시 타오르는 그 모습에서,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로 다시 초대하시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성모 발현지이지만, 성지의 가장 중앙에는 양팔 벌린 예수성심상이 있다. 성지 측은 이를 "파티마 메시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성모 발현의 궁극 목적은 결국 예수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티마의 초대는 그렇게,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 가톨릭신문투어 


순례 문의: 02-2281-9070, 1577-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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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http://www.cttour.org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