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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0 등록
[신앙단상] ‘난 널 버리지 않아’ 예수 성심의 고백

저는 요즘 ‘감성 싱어송라이터’로 불리는 가수 한로로의 노래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서정적인 가사와 음색,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위로가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주 듣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0+0’입니다. 혹시 제목만 보고 ‘제로 플러스 제로’라고 읽으실까 덧붙이자면, 이 노래는 ‘영영’으로 읽습니다. 가사 가운데 유독 마음에 오래 남은 구절이 있습니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한로로, ‘0+0’ 가사 일부)
초록이 짙어지는 어느 여름날, ‘0+0’을 콧노래처럼 흥얼거리며 미사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성당 입구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 성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시관으로 둘러싸인 불타는 심장, 창에 찔려 피를 흘리는 모습, 그리고 심장 위에 놓인 십자가. 바로 예수 성심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그 처참한 심장의 주인공, 예수님의 얼굴은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신자들을 맞고 계셨습니다. 세상 모든 고통을 한데 모은 예수님의 심장, ‘예수 성심’은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 인내를 상징합니다. “누구 하나 잃지 않고 끝까지 품겠다”는 약속의 표지로 느껴집니다.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던 예수님의 마음이 떠오릅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에 오랫동안 회의감을 품어온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사회부 기자로 현장을 누비다 보면 가슴 아픈 사건들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아동학대 범죄를 취재할 때면 마음이 까맣게 무너져 내립니다. 자기 의사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세 살도 채 안 된 아이를 향한 범행, 그것도 가해자 대부분이 친부모라는 현실 앞에서는 말문이 막힙니다. 열 달 넘게 품어 낳은 자녀를 때리고, 심하면 숨지게 만드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멈추지 않는 사랑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내리사랑조차 이토록 차갑게 배신당하는데, 예수님 사랑은 정말 그 열기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방 청소를 하다가 신문기자 시절 스크랩해둔 제가 쓴 신문 기사들을 발견했습니다. 12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한 장 한 장 넘기던 중 눈길이 머무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경기도 안산 빈센트의원 원장 전 다니엘라 수녀님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빈센트의원은 2004년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설립한 의료기관으로, 극빈자와 노숙자, 미등록 이민자까지 무료로 진료하는 작은 공간입니다. 인터뷰 당시 수녀님은 “피부색과 질병 구분 없이 모든 환자를 내 형제처럼 끝까지 치료해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분이 불명확한 이를 마주하고, 병의 위험성도 모른 채 치료부터 했다는 대목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수녀님이 가졌던 그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 아닐까.’ 내가 낳은 자식도,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도 아닌 사람을 위해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랑.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한다’는 예수 성심이 우리 가운데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조용히 물으십니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