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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여론
2021.10.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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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성호경의 아름다움(장일범, 발렌티노, 음악 평론가)



디에고 마라도나(1960~2020)는 펠레와 함께 20세기 전 세계 축구의 상징이자 최고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런 그가 마약에 손을 대면서 기행도 일삼으며 인생을 망치게 되었지만, 그는 다시 일어납니다. 월드컵에서 고국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도 맡았던 마라도나는 그 이후, 아랍에미리트 2부 리그 감독을 거쳐 멕시코의 2부 리그 하위권을 맴도는 팀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의 감독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시날로아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거점도시로, 매우 위험한 도시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을 불러주는 시날로아 팀의 감독이 된 마라도나는 선수들이 잘못해도 선수 탓을 하지 않고 언제나 큰형처럼 "너희는 잘하고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면서 뜨겁게 선수들을 응원하고 독려하며 아껴주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불같이 뜨거운 자신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혈기를 참지 못하고 심판의 판정에 항의해 퇴장당한 채 라커룸에 가서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보기 일쑤였습니다.

선수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 추앙받은 살아있는 전설이었지만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야유를 받는 2부 리그에서 그는 자신의 선수들을 진심으로 아꼈고,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선수들에게 전파해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마라도나가 시합 전 집에서 나올 때 꼭 십자가 앞에서 십자성호를 여러 번 긋고 기도를 하며 길을 나섰고,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선수들과 라커룸에서 스타디움으로 나가기 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 기도를 올리고 성호를 그었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모습에 바로 마라도나의 진심이 담겨있고 그의 간구가 담겨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면 2루타를 쳐도 성호를 긋고, 홈런을 쳐도 홈을 밟으면서 성호를 긋는 선수들이 정말 많습니다. 감사의 기도입니다. 대부분 중남미계 선수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선수들이 경기 시작할 때 그리고 교체되어서 그라운드로 나올 때 언제나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이 선수들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예전에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을 하기 전에 성호를 긋고 빼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김연경 선수가 성호를 그으며 이번 도쿄올림픽 여자배구에서 4강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말이죠.

저도 마라도나를 비롯한 프로 선수들이 성호를 그으면서 경기장에 비장하게 나서는 것과도 같이, 콘서트홀에서 해설하러 나가기 전에 그리고 가톨릭평화방송 스튜디오에서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을 진행하기 전에 꼭 성호를 긋고 짧은 기도를 올립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공연에 집중하게 되며 지향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나 성호를 그어볼까요? 주님께서 내려다보시고 수호천사가 우리를 도와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