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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복음생각/생활
2021.04.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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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현장에서] 함께 사는 삶을 배우며
장은열(골룸바, 골롬반 평신도 선교사)
▲ 장은열 선교사



처음 필리핀에 파견되어 타갈로그어라는 필리핀 공용어를 배우고 마닐라에서 멀리 떨어진 할라 할라라는 시골 본당에 동료와 함께 파견되었을 때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마을에 여러 소문이 떠돌았다고 한다. 소문 중 하나가 한국 기업에서 필리핀에 공장을 세우기 위해 사전조사팀이 온다는 것이었다. 나와 나의 동료는 졸지에 조사연구팀이 되었다. 바랑가이 캡틴(마을의 수장)이라는 분이 심문하는 말투로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 질문 공세를 하던 긴장된 순간도 있었다. 남편감을 찾으러 온 것이라는 황당한 소문에 당황하기도 했었다.

평신도 선교사가 무엇하는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역시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사제나 수도자에 대한 역할이나 이미지는 익숙하다. 하지만 평신도 선교사는 아니었기에 나는 말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소문과 오해가 무성한 가운데 당시 많은 선교사가 영어와 비교하면 타갈로그어가 유창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언어인 타갈로그어를 쓴다는 것과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우리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처음에는 수녀님 아니면 선생님으로 부르던 호칭을 자연스럽게 골룸바 또는 별명인 바바라고 바꾸면서 가족처럼 대해 주었다.

우리가 살던 마을은 본당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한 달에 한 번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기초 교회 공동체 활동은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신부님은 더욱 선교사가 필요했다. 우리는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지역 지도자들과 함께 여러 신앙모임과 활동을 했다. 평신도 선교사로서 삶에 보람을 느끼고 나의 소명에 확신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장은열(골룸바) 골롬반 평신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