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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복음생각/생활
2021.10.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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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현장에서] 미처 잡아주지 못한 손
은성제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
▲ 은성제 신부



2019년 11월 2일. 저는 그 날짜를 잊지 않습니다. 6년 6개월 대학교 사목을 하면서 목표 없이 안주하기 시작한 저 자신을 보며 주교님께 다른 사목을 할 수 있도록 청을 드리기 위해 면담을 하러 갔습니다. 그날 베드로 연수를 청했는데 저에게 버스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3년이 됐습니다.

저는 서울아지트 버스 사목을 시작했고,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아버지의 건강 악화와 어머니의 정신 질환, 어렵게 가정을 꾸려나가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던 이 친구와는 천주교 신자인 중학교 선생님의 연락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2020년 1월 14일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만나다가 8월 26일을 끝으로 만남이 끊겼습니다. 이 친구를 저에게 소개해준 선생님은 이 친구가 비록 교내 폭력사건에 연루된 적은 있지만 착하게 살고 싶어 하고 천주교에 관심이 있어서 저에게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예비자 교리를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본당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8월 26일 이 친구를 관할구역 본당 주일학교 담당 신부님과 교사에게 소개해줬습니다.

그 후 이 친구와 연락을 했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위기 청소년들이 그렇듯, 나가기로 약속했지만 이끌어 주는 이가 없어 나가지 않았습니다. 본당에서도 코로나19로 청소년 미사와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않아 이 친구를 챙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한두 차례 연락만 하던 중 2021년 8월 14일.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신부님, 저 ○○○중학교 ○○이를 부탁했던 로사입니다. ○○이가 토요일에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거짓말 같고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모든 게 후회됐습니다. "그냥 내가 끝까지 맡아서 예비자 교리 해 줄걸"이라는 생각부터, 한 번 더 시간 내서 만나지 못한 것까지. 모든 게 후회로 밀려왔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순간은 다 소중하겠죠. 그런데 위기를 겪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주님의 품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기도드립니다. 제가 세상 모든 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더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서 걸어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은성제 신부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