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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일반기사
2021.0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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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62)무엇을 믿는 사람들인가


신앙인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무엇을 믿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질문에 답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하느님 존재에 대한 사실을 믿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느님이 매일의 삶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하느님 역사(役事)에 대한 사실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이성의 추론을 통해 생겨난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처럼 인간은 믿기 위해 이해가 필요한 존재다. 오감으로는 체험되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는 오로지 이성적 활동을 통해서만 추론된다. 중세의 보나벤투라 성인이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하느님의 실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소위 신 존재 증명을 통해 첫 번째 믿음을 확립했다.

하느님 역사에 대한 믿음은 종교적 경험을 통해 생겨난다. 하느님이 이성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종교가 생겨날 수 없었다. 하느님이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활동하시는 실재적 존재라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서만 증명된다. 종교적 경험은 하느님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였던 추상적 믿음(believe)을 실재적 신념(believe in)으로 만들어 준다.

어릴 적 유아세례를 받고 첫 영성체 교리, 혹은 성인기에 예비자 교리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이성적으로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믿음인 "하느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 믿음인 "하느님이 활동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신앙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이 믿음이 생겨나려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종교적 체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연 종교적 체험, 즉 하느님 체험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전례와 성사 그리고 묵상과 기도다.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 경신례를 올리거나 하느님 은총에 대한 인간적 표징인 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 한편, 하느님 말씀 안에 고요히 머물거나 일상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 이 체험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온전한 의지로 이루어지기에 하느님의 선물(성화 은총 / 주부적 은총)로 불린다.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인간적 사랑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다. 일상의 체험이기에 종교적 체험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서로의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하느님 체험은 그 자체로 종교적 체험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 체험을 하지 못해 방황하는 신자들은 전례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하느님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으니,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신앙인이 인간적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하느님의 존재마저 의심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신앙인들이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통해 드러난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사랑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예외 없이 이렇게 물으신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예수님께서 과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믿느냐고 물으시는 것일까? 아마 그것보다는 당신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치유해주시며 마침내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 즉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활동하신다는 사실을 믿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다. 예수님의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께 진정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 7,50)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