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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7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과 예루살렘 성전 때문에 예수님을 “반대”하였지만,(392) 그들에게 진정으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죄인들을 속량하시는 그분의 소임이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393)
  • 588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식사하실 때처럼(394) 세리들과 죄인들과도 친하게 식사를 하심으로써, 바리사이들을 놀라게 하셨다.(395)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루카 18,9)(396) 사람들을 두고 다음과 같이 단언하셨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2).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 앞에서, 죄는 보편적인 것이므로(397) 구원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눈이 먼 것이라고 선언하신다.(398)
  • 589 예수님께서 특히 죄인들에 대한 당신의 자비로운 태도가 하느님의 태도와 동일한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개했다.(399)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심으로써(400) 그들을 메시아의 잔치에 받아들임을 암시하기까지 하셨다.(401)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으셨다. 그들이 놀라서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하고 말한 것은 옳은 말이 아니던가-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셨으니, 이는 인간으로서 하느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여 하느님을 모독한 것이거나,(402) 그게 아니라면 그 말씀은 진실이며, 그분의 인격은 하느님 이름을 드러내고 계시하는 것이 된다.(403)
  • 590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기에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마태 12,30)고 하는 절대적 요구를 정당화하실 수 있으며, 당신을 “요나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이”(마태 12,41-42)이고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404) 말씀하실 때에도, 다윗이 당신을 그의 주님 메시아라고 불렀다는 것을 상기시키실 때에도,(405)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하고 단언하실 때에도,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모두 그러하다.
  • 59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행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보고 당신을 믿으라고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요구하셨다.(406) 그러나 이러한 신앙 행위는 하느님 은총의 인도로(407) “위로부터 태어나기”(408)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죽는 신비로운 죽음을 거쳐야 했다. 이토록 놀라운 약속의 성취에 직면하여(409) 회개하라고 하는 이러한 요구는, 의회 법정이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고 판단한 비극적 오해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410) 의회 의원들이 이렇게 한 것은 “무지한 탓”이기도(411) 했고, 또 “완고한”(412) 불신 때문이기도 했다.(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