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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7 기도는 새 마음의 생명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기도에서 생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전부이신 분을 잊고 지낸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 생활의 교부들은, 신명기와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기도는 ‘마음의 기억’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숨을 쉬는 것보다 더 자주 하느님을 생각해야 합니다.”(1) 그러나 일정 시간에 의식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어느 때에나’ 기도할 수 없다. 이런 일정 시간들은,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깊이와 지속성을 주는 특별한 시간이다.
  • 2698 교회 전통은 지속적인 기도를 함양시켜 주는 주기적인 기도를 신자들에게 권한다. 어떤 기도들은 날마다 바치는데, 곧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식사 전후의 기도, 성무일도가 그러하다. 그리고 주일에는 성찬례를 중심으로 무엇보다도 기도로써 거룩하게 지낸다. 또한 전례주년과 그에 따르는 대축일들은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에 근본이 되는 주기이다.
  • 2699 주님께서는 친히 바라시는 길과 방식을 통해서 각 사람을 인도하신다. 신자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내리는 결정과 자신이 바치는 기도의 독특한 표현으로써 주님께 응답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전통은 기도 생활의 중요한 세 가지 표현 방식, 곧 소리 기도, 묵상 기도, 그리고 관상 기도를 인정해 왔다. 이 기도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물고자 하는 노력에 따라, 이 세 가지의 기도 형태는 기도 생활을 깊이 있게 해 준다.
  • 제1절 기도의 형태
  • I. 소리 기도
  • 2700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기도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나 또는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 중에 말씀을 드리는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열성에 달린 것입니다.”(2)
  • 2701 소리 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스승이 침묵 중에 하시는 기도에 마음이 끌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리 내어 하는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의 전례 기도만 드리신 것이 아니다. 복음서들은, 환희에 차서 성부를 찬양하신 것을 비롯해서,(3) 겟세마니에서 비탄에 젖으시기까지,(4) 개인 기도를 소리 높여 드리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 2702 내적 기도에 감각을 결합하려는 욕구는, 우리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의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의 청원에 가능한 모든 힘을 부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온몸으로 기도해야 한다.
  • 2703 이러한 욕구는 하느님의 요구에도 부합한다. 하느님께서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곧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기도에 몸까지 결합시키는 외적 표현도 원하신다. 왜냐하면 외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완전한 찬미를 이루기 때문이다.
  • 2704 소리 기도는 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일반 대중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내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소리 기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기도는 “우리가 말씀드리는” 그분을 의식하면 할수록, 내적인 것이 된다.(5) 이리하여 소리 기도는 관상 기도의 최초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 II. 묵상
  • 2705 묵상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탐색이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사람의 정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여기에는 어려운 주의력 집중이 요구된다. 그래서 대개는 어떤 책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리스도인이 사용할 수 있는 그러한 책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경, 그 중에서도 특히 복음서, 성화상, 그 날이나 시기의 전례문, 영성 교부들의 저서, 영성에 관한 저술들, 창조와 역사라는 위대한 책, 곧 하느님의 ‘오늘’이 펼쳐지는 지면이다.
  • 2706 우리가 읽은 것에 대해 묵상하면, 그 내용을 자기 자신에 비추어서 생각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여기서 다른 한 권의 책, 삶이라는 책이 펼쳐진다. 생각에서 현실로 옮겨지는 것이다. 겸손과 신앙의 정도에 따라, 우리는 묵상 중에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빛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진리를 실천하느냐가 문제이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 2707 영성의 대가들이 다양한 만큼이나 묵상의 방법도 다양하다. 그리스도인은 정기적으로 묵상하기를 원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처음 세 가지 종류의 땅과 비슷하게 된다.(6) 그러나 방법이란 단지 길잡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를 위한 유일한 길, 곧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다.
  • 2708 묵상에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과 의욕이 모두 동원된다. 이러한 동원은 신앙의 확신을 심화하고, 마음의 회개를 불러일으키며,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나 묵주 기도에서처럼, 특히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에 더 마음을 쓴다. 이와 같은 성찰 기도의 형태는 큰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과 결합하기 위하여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
  • III. 관상 기도
  • 2709 관상 기도란 무엇인가-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답한다. “마음으로 하는 관상 기도란, 제 생각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7)
  • 관상 기도는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아가 1,(7) (8) 찾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고, 또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에 대한 소망이 언제나 사랑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순수한 신앙으로 그분을 찾으니, 이 신앙은 우리를 그분에게서 태어나게 하고, 그분 안에서 살게 한다. 관상 기도 중에도 묵상을 할 수는 있지만 우리 시선은 언제나 주님께 고정되어 있다.
  • 2710 관상 기도를 하는 때와 시간을 선택하는 일은 내밀한 마음을 드러내는 결연한 의지에 달려 있다. 관상 기도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하는 기도가 아니다. 주님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만남에 어떠한 시련이 따르고 아무리 마음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더라도, 도중에 주님에게서 그 시간을 다시 빼앗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늘 관상 기도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건강이나 일이나 정서라는 조건들과 관계없이 언제나 관상 기도에 들어갈 수는 있다. 마음은 가난과 신앙 안에서 주님을 찾고 만나는 장소가 된다.
  • 2711 관상 기도에 들어가는 일은 성찬 전례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곧, 마음을 ‘모으고’, 성령께서 움직여 주시도록 우리의 전 존재를 집중시키며,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거처인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우리가 머물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현존을 깊이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려, 정화되고 변화되어야 할 제물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겨 드리는 것이다.
  • 2712 관상 기도는 하느님 자녀의 기도이며,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하고 더욱 사랑하여 그 사랑에 응답하기를 바라는 용서받은 죄인의 기도이다.(9)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우리의 사랑 역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것임을 우리는 안다.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기 때문이다. 관상 기도는, 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더욱 깊이 일치함으로써, 사랑하시는 성부의 뜻에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으로 승복하는 것이다.
  • 2713 이처럼 관상 기도는 기도의 신비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관상 기도는 선물이며 은총이다. 이 은총은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관상 기도를 통해서,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계약의 관계가 맺어진다.(10) 관상 기도는 성삼위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을 ‘당신과 닮게’ 하시는 친교이다.
  • 2714 관상 기도를 하는 시간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도 가장 알찬 시간이다. 관상 기도 안에서 성부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신다. 이로써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머무르시게 되고, 우리는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기초로 삼게 될 것이다.(11)
  • 2715 관상 기도를 하는 것은 신앙의 눈길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이것은 비안네 성인이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있을 때 감실 앞에서 기도하던 한 농부가 한 말이다.(12) 예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자아’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눈길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시선의 빛은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준다. 그분의 진리와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에 비추어, 우리는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관상은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향해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리하여 관상 기도를 하는 사람은 ‘주님에 대한 내적 지식’을 배워 그분을 더욱 사랑하고 따르게 된다.(13)
  • 2716 관상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하는 일은 결코 수동적인 일이 아니라, 신앙에 따라서 순명하는 것이요, 종으로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며, 어린이가 부모를 사랑하여 따르는 것과 같다. 이런 경청은 종이 되신 성자의 “예.”(Amen)라는 응답과, 겸손한 여종의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응답에 동참하는 것이다.
  • 2717 관상 기도는 침묵이다. 곧 “다가올 세상의 상징”,(14) 또는 “말 없는 사랑”(15) 처럼, 침묵 속에서 하는 기도이다. 관상 기도 중에 하는 말은 장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와 같다. ‘외적인’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이 침묵 중에 성부께서는, 강생하시고, 고통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자녀가 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게 하신다.
  • 2718 관상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기도와 합쳐진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교회가 성찬례에서 기념하는데, 성령께서는 우리가 관상 기도 중에 그 신비를 다시 체험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내게 하신다.
  • 2719 신앙의 어둔 밤에 머물기를 동의할 정도에 이르면, 관상 기도는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기도가 된다. 부활의 새벽은 고뇌와 무덤의 밤을 통과한다. (‘연약한 육신’이 아닌) 예수님의 성령께서, 관상 기도 중에 우리가 ‘예수님의 시간’ 가운데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난의 사흘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주신다. 관상 기도에는 “그분과 함께 한 시간을 깨어 있을 것에”(16) 동의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 간추림
  • 2720 교회는 매일 기도, 성무일도, 주일의 성찬례, 전례주년에 따른 축일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기도하라고 신자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 2721 그리스도교 전통은 기도 생활의 세 가지 중요한 형태, 곧 소리 기도, 묵상 기도, 관상 기도를 인정해 왔다. 이 세 기도 형태의 공통점은 마음을 가다듬는 데 있다.
  • 2722 몸과 정신이 결합된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소리 기도는, 당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시고 또한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몸을 마음의 내적인 기도에 일치하게 한다.
  • 2723 묵상 기도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 의욕을 동원하는 탐색적인 기도이다. 묵상의 목적은 우리네 삶의 현실에 비추어 고찰한 주제를 신앙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 2724 관상 기도는 기도의 신비를 단순하게 나타내는 기도이다. 관상 기도는 예수님께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없이 우리 사랑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관상 기도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기도와 합쳐지게 된다.
  • 제2절 기도의 싸움
  • 2725 기도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시는 선물인 동시에, 이 선물에 대한 우리들의 결정적인 응답이다. 기도는 언제나 노력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 이전 곧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기도하는 사람들과,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성인들과, 그리스도 자신이 기도란 일종의 싸움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누구와 싸우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인간에게 기도를 외면하게 하고, 인간과 하느님의 일치를 깨뜨리려는 유혹자의 계략에 맞서는 싸움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대로 살기 때문에, 또한 사는 대로 기도한다. 우리가 평소에 그리스도의 성령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늘 기도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을 위한 ‘영적 싸움’은 기도의 싸움과 분리될 수 없다.
  • I. 기도에 대한 반대
  • 2726 기도의 싸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는, 그리고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기도에 대한 그릇된 견해들을 극복해야 한다. 이 잘못된 견해들 가운데에는 기도를 단순한 심리적 활동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정신적 공백 상태에 이르려는 집중 노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기도는 의례적(儀禮的)인 태도와 말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무의식 중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그 모든 일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일’로 생각한다. 말하자면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쉽게 낙담하는 것은, 기도는 그들의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 2727 우리는 ‘이 세상’의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우리가 방심한다면, 이 사고방식은 우리 안에 스며들게 된다. 예를 들어서, 이성과 과학을 통해서 검증되는 것만이 참되다는 생각이다(그러나 기도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어서는 신비이다). 사람들은 생산과 효용성의 가치만을 높이 평가한다(기도는 비생산적인 것이어서, 그들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다). 그들은 관능주의와 안락을 진선미의 척도로 내세운다(그러나 기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philokalia]이며,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느님의 영광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는 행동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삶과 결별하는 것도 아니다).
  • 2728 끝으로, 우리가 기도에 실패했다는 느낌에 대항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마음의 무감각 때문에 낙심하는 일이 있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17) 주님께 다 드려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일이 있으며, 우리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망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죄인으로서 무력감을 느껴 상처를 입은 우리의 자존심이 더욱더 완고해지는 일도 있고, 기도란 거저 얻어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잘못된 반감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기도를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늘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자면, 우리는 겸손과 신뢰와 인내로써 싸워야 한다.
  • II. 겸허한 경계심
  • 기도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 2729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흔한 어려움은 분심이다. 이것은 소리 기도에서 말과 그 의미에 관련될 수 있고, 좀 더 심하면, (전례적이거나 개인적인) 소리 기도에서, 묵상 기도나 관상 기도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분과 관련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분심을 몰아내려고 쫓아다니는 것은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것이 된다. 그저 우리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분심은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므로, 이것을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깨달으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우선적인 사랑이 일깨워질 것이다.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결연히 바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실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로 선택하는 것이다.(18)
  • 2730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소유욕과 지배욕에 맞서 싸우는 것은 경계심 곧 마음의 절제이다. 예수님께서 경계심을 강조하실 때, 그것은 늘 당신 자신과, 그분의 오심과, 마지막 날과 매일, 곧 ‘오늘’과 연관되는 깨어 있음이었다. 신랑은 한밤중에 온다. 꺼지지 않아야 할 불은 바로 신앙의 불이다. “당신을 제가 생각하오며,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삽나이다”(시편 27[26],8).
  • 2731 또 다른 어려움, 특히 마음을 다해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딪치는 어려움은 마음의 메마름이다. 이 메마름은 관상 기도의 한 부분이다. 거기서는 생각도 기억도 느낌도 의욕도 없고, 영적인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이때는 고뇌와 무덤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참된 신앙의 순간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말씀이 돌밭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지 못해 메마름이 생긴 것이라면, 회개하려고 싸워야 한다.(19)
  • 기도 중 유혹에 직면하여
  • 2732 가장 흔하면서도 매우 은밀한 유혹은 우리 신앙의 부족이다. 이 유혹은 공공연한 불신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급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갖가지 일이나 근심이 더 중요한 것처럼 나타나는데, 이는 또다시 무엇엔가 집착하고 있는 마음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주님을 우리 최후의 피난처로 여겨 그분께 갈 때에도, 우리는 참으로 그분을 믿는가- 또 주님을 우리의 친지로 여길 때에도, 우리 마음은 여전히 자만으로 차 있는 경우가 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우리 신앙의 부족, 곧 우리가 아직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 2733 자만 때문에 빠지게 되는 또 다른 유혹은 게으름이다. 영성적인 교부들은 이를 금욕 정신이 해이하고 경계심이 감퇴하여 마음이 태만해짐으로써 나타나는 일종의 의기소침으로 이해해 왔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 26,41).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많이 다치게 된다. 고통스러운 좌절감은 교만의 이면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지 않는다. 자신의 비참함을 느끼는 겸손한 사람은 더 깊은 신뢰심을 갖게 되고, 더욱 끈기있게 참아 견딘다.
  • III. 자녀다운 신뢰
  • 2734 자녀다운 신뢰는 시련 속에서 드러난다.(20) 특별한 어려움은 자신을 위한 청원 기도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전구하는 청원 기도에 관련된다. 자신의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여긴 나머지, 기도를 그만두기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왜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효과 있는’ 기도가 되는가-
  • 왜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가-
  • 2735 우리는 먼저 한 가지 뚜렷한 사실 앞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통 우리가 하느님을 찬양하거나 또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때,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는지를 알고자 진정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가 청하는 기도의 결과를 보아야겠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우리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여 그분께 기도하는가-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가 이용할 만한 수단으로 이해하는지 아니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이해하는가-
  • 2736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른다.”(로마 8,26)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알맞은 것’을 하느님께 청하는가-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시면서도(21) 우리의 청원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것은, 자유로워야만 하느님의 품위 있는 자녀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를 확실하게 알려면 자유의 성령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22)
  • 2737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2-3).(23) 만일 우리가 “절개 없는 자들”로서(24) 갈라진 마음으로 청한다면, 우리의 행복을 원하시고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야고 4,5)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질투를 느끼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표징이다. 그분의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우리의 청원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 당신이 청하는 것을 하느님에게서 바로 받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기도하면서 꾸준히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 있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25)
  •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이 기도 안에서 정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는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26)
  • 어떻게 효과 있는 기도가 되는가-
  • 2738 구원 경륜 안에서 기도에 대한 계시는, 신앙이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업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하느님께서 하신 최대의 업적, 곧 당신 아드님의 수난과 부활은 우리의 자녀다운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을 위한 그 사랑의 계획에 협력하는 것이다.
  • 2739 바오로 사도의 이 신뢰는 대담한 것으로서,(27)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기도에, 그리고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성부의 성실하신 사랑에 근거를 둔 것이다.(28) 기도하는 마음의 변화가 바로 우리의 청원에 대한 첫 번째 응답이다.
  • 2740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는 유효한 청원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시며,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신다. 성자의 마음도 성부의 마음에 드는 것만을 바라시는데, 양자가 된 자녀들의 마음이 어떻게 선물을 주시는 분보다 선물에 더 집착할 수 있겠는가-
  • 2741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이롭도록 기도하신다. 우리의 모든 청원은 한 번에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상 부르짖음 속에 모아져, 그분의 부활로써 성부께 받아들여졌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성부 곁에서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전구하신다.(29) 만일 우리의 기도가 자녀다운 신뢰와 대담성을 지녀 예수님의 기도와 튼튼히 결합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모든 것을 얻으며, 이러저러한 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곧 모든 선물을 지니신 성령 바로 그분을 받게 된다.
  • IV. 항구한 사랑으로
  • 2742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 5,20).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에페 6,18). “언제나 일하고 깨어 있으며 재를 지키라는 명령을 우리가 받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법입니다.”(30) 이런 지치지 않는 열성은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 우리의 우둔함과 게으름에 대항하는 기도의 싸움은 겸손하고, 신뢰하며, 항구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 벌이는 투쟁이다. 이 사랑은 기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빛과 생명을 주는 세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 2743 첫째로, 기도는 언제나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시간은, 어떠한 풍파 중에라도(31) 날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마태 28,20) 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시간이다. 우리의 시간은 하느님 손안에 있다.
  • 저잣거리에서나 혼자 산책할 때에도, 자주 그리고 열심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중에도, 또는 요리를 하는 중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32)
  • 2744 둘째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반명제에서 이끌어 낸 증명도 똑같이 설득력을 가진다. 곧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죄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33) 만일 우리의 마음이 성령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실 수 있겠는가-
  • 기도만큼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 주고, 어려운 것을 쉽게 해 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죄에 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34) 기도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어김없이 영벌을 자청할 것입니다.(35)
  • 2745 셋째로,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분리될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같은 사랑의 문제이며, 그 사랑에 따른 자아 부정과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곧, 성부께서 세우신 사랑의 계획에 자녀답게 사랑으로 일치함, 우리를 늘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더 닮도록 해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변화됨,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모든 이를 사랑함이 바로 그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6-17).
  • 기도를 일과 결합시키고, 일을 기도와 결합시키는 사람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36)
  •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
  • 2746 당신의 ‘때’가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성부께 기도하신다.(37) 복음서가 전해 주는 예수님의 가장 긴 기도는, 마치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그 안에 포괄하듯이, 창조와 구원의 경륜 전부를 포괄하고 있다. “한 번에 결정적으로” 이루어진 예수님의 파스카가 그분의 교회 전례 안에서 언제나 존속하듯이,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도 늘 그분의 기도로 지속된다.
  • 2747 그리스도교 전통이 당연하게도, 이 기도를 예수님께서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라고 규정하였다. 이 기도는 우리 ‘대사제’의 기도이다. 또한 이 기도는 그분의 희생 제사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분의 ‘성부께 건너가심’(파스카)과 분리될 수 없다. 이로써 그분께서는 당신을 성부께 온전히 바치신다.(38)
  • 2748 이 희생 제사와 파스카의 기도 안에서 모든 것이, 곧 하느님과 세상, ‘말씀’과 살[肉], 영원한 삶과 시간,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과 사랑을 저버리는 죄, 이미 제자가 된 사람들과 제자들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될 사람들, 자기 낮춤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가 된다.(39) 이 기도는 일치의 기도이다.
  • 2749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일을 완수하셨으며, 그분의 기도는, 그분의 희생 제사처럼, 세상 끝 날까지 미친다.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드리신 이 기도는 마지막 시간들을 충만하게 만들며, 이 시간들을 종말로 이끌어 간다.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을 받으신 아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온전히 되맡기셨으며, 동시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전 인류에 대한 권한에 따라, 온전한 자유로 자신을 표현하신다.(40) 스스로 종이 되신 아드님께서는 주님이시며 전권자(Pantocrator)이시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우리의 대사제께서는 또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청원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 2750 우리가 주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도하게 됨으로써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는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기도에 포함된 중요한 청원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 청원들이란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관심,(41) 아버지의 나라(영광(42) )에 대한 열정,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짐,(43) 악에서 구원됨(44) 등이다.
  • 2751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불가분의 ‘인식’을 계시하고 전해 주시는데,(45) 그것이 바로 기도 생활의 신비인 것이다.
  • 간추림
  • 2752 기도는 노력을, 그리고 유혹자의 계략과 우리 자신에 맞서는 싸움을 전제로 한다. 기도의 싸움은, 평소에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영적인 싸움’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살기 때문에, 사는 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 2753 기도의 싸움에서, 우리는 그릇된 견해들, 다양한 시대적 사조들, 우리가 실패한 경험 등에 대항한다. 기도의 유익성이나 기도의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회의를 느끼게 하는 유혹들에 대해서 우리는 겸손과 신뢰와 인내로써 대처해야 한다.
  • 2754 기도하는 데에 가장 흔한 어려움은 분심과 마음의 메마름이다. 여기에 대한 대책은 신앙과 회개와 깨어 있는 마음이다.
  • 2755 두 가지 유혹이 자주 기도를 위협한다. 곧 신앙의 부족과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금욕 정신이 해이해진 데에서 기인하며, 좌절감에 빠지게 하는 의기소침의 한 형태이다.
  • 2756 우리의 청원을 언제나 들어주시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자녀다운 신뢰는 시련을 겪게 된다. 복음서는 우리의 기도가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과 일치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권고한다.
  • 275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 기도는 언제나 가능하다. 나아가, 기도는 절대 필요한 일이다.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 2758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라고 불려 마땅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는(46) 창조와 구원의 경륜 전체를 요약한다. 이 기도는 ‘주님의 기도’의 중대한 청원들에 영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