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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지역에서 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두시켰다.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602년 교구장이 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에 선종하였다.

입당송

에제 34,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양 떼를 찾아서, 그들을 먹일 목자를 세우리라.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프란치스코 주교가 목자의 사랑을 실천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형제들을 섬기며
언제나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사울을 놓아주며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4,3-21
그 무렵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7(56),2.3-4.6과 11(◎ 2ㄱ)
◎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 영혼이 당신께 숨나이다. 재앙이 지나갈 그때까지, 당신 날개 그늘로 피신하나이다. ◎
○ 하느님께, 지극히 높으신 분께, 나를 위하시는 하느님께 부르짖네. 하늘에서 나에게 구원을 보내시어, 나를 짓밟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리라. 하느님은 자애와 진실을 보내시리라. ◎
○ 하느님, 하늘 높이 오르소서. 당신 영광을 온 땅 위에 드러내소서. 당신의 자애 크시어 하늘에 이르고, 당신의 진실 크시어 구름에 닿나이다. ◎

복음 환호송

2코린 5,19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3,8-12)와 복음(요한 15,9-17)을 봉독할 수 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며 비오니
복된 프란치스코의 온유한 마음을 성령의 불로 타오르게 하셨듯이
저희 마음에도 성령의 그 거룩한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5,16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가 세상에서 복된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온유함을 본받아
하늘에서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열둘’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유다 사회는 그 숫자를 ‘민족’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룬 통일 왕국을 상징하는 것이 ‘열둘’이었고,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곧추세울 때 사용한 숫자가 ‘열둘’이었습니다.
곧 ‘열둘’은 참된 신앙을 지닌 하느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파견하신다고 하여서, 요즘의 ‘경쟁 의식’을 염두에 둔 해석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열둘은 다른 이들과 달리 능력 있는 이들로 뭉친 특정 계급이 아니라, 모든 이가 예수님의 참제자가 될 수 있다는 무한한 초대의 자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떠한 차별도 없이 예수님 곁에 머물며, 모든 이에게 파견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열둘의 참된 의미입니다.오늘 우리 곁의 또 다른 열둘을 생각합니다.
이웃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 자신이 ‘열둘’의 범주 안에 함께하는지 되돌아봅니다.
‘열둘’이기 위하여 스스로를 가두어 놓는 일이 없는지, 나는 진정 자유로운지 되물어 봅니다.
예수님의 ‘열둘’은 너무나 다른 사상과 삶의 방식을 지닌,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들로 짜여 있습니다.
우리 각자 안에서도 너무나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고 갈라지고 있을 테지요.
그런 나를 진정 사랑하고 또한 그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열둘’의 자리는 무한한 우주처럼 유연하고 여유로워야 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제자여야 해!’라는 독선은 내려놓고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