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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누가 거행하는가-
  • 1136 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의 ‘행위’이다. 이 세상에서 표징들이 암시하는 전례를 거행하는 사람들은 이미 천상 전례에 참여하고 있다. 그곳의 전례는 충만한 친교와 축제이다.
  • 천상 전례의 거행자
  • 1137 교회의 전례 중에 봉독되는 요한 사도의 묵시록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늘에는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라고(1) 계시한다. 그분은 “주님”(이사 6,(1) 이시다.(2) 그분께서는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묵시 5,(6) ,(3)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참지성소의 유일한 대사제,(4) “봉헌하고 봉헌되며, 주고 또 주어지는”(5) 분이시다. 마지막에는, 성령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상징 하나가 계시된다. “생명수의 강……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왔다”(묵시 22,(1) .(6)
  • 1138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완전히 하나가 된 이들’(recapitulati)은, 하느님을 경배하는 예식에 봉사하고, 하느님 계획의 성취에 참여한다. 이들은 하늘의 천사들,(7) 모든 피조물(네 생물), 구약과 신약의 봉사자들(스물네 명의 원로), 하느님의 새 백성(십사만 사천 명),(8) 특히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묵시 6,(9)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 그리고 천주의 성모(여인,(9) 어린양의 신부(10) ), 끝으로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이들”(묵시 7,(9) 이다.
  • 1139 우리가 구원의 신비를 성사 안에서 거행할 때, 성령과 교회는 우리를 이 영원한 전례에 참여하게 한다.
  • 성사 전례의 거행자
  • 1140 성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 머리와 결합되어 있는 공동체 전체가 거행하는 것이다. “전례 행위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주교 아래 질서 있게 모인 거룩한 백성인 교회의 예식 거행이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교회의 몸 전체에 관련되고 그 몸을 드러내며 영향을 끼친다. 교회의 각 지체는 위계와 임무와 실제 참여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관여한다.”(11) 이러한 까닭에 “예식이 그 고유한 본질에 따라 많은 신자들의 참석과 능동적인 참여와 더불어 공동 거행으로 이루어질 때마다, 될 수 있는 대로, 이 공동 거행이 개별적이고 거의 사적인 거행보다 낫다는 것을 강조하여야 한다.”(12)
  • 1141 전례를 거행하는 회중은 “새로 남과 성령의 도유를 통하여 신령한 집과 거룩한 사제직으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통하여 신령한 제사를 바치는”(13) 세례 받은 이들의 공동체이다. 이러한 ‘보편 사제직’은 유일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이며 그분의 모든 지체들이 이 사제직에 참여한다.(14)
  •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으로 완전히 참여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와 같은 참여는 바로 전례의 본질이 요구하는 것이며, 또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인(15)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힘으로 그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16)
  • 1142 그러나 “지체가 모두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로마 12,4). 어떤 지체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특별히 봉사하도록 하느님께 부름을 받는다. 이러한 봉사자들은 선택되고 성품성사로 축성된다. 이 성사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그들이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봉사하도록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이 되게 하신다.(17) 성품을 받은 봉사자는 말하자면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표상(icon)이다. 성사인 교회는 성찬례에서 충만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성찬례를 주례할 때에 주교의 직무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또 주교와 일치한 사제들과 부제들의 직무가 잘 드러난다.
  • 1143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다른 특별한 직무들이 있는데, 성품성사로 축성되지 않는 이 직무들은 전례 전통과 사목적 필요에 따라 주교가 정한다. “복사, 독서자, 해설자와 성가대원 들은 진정한 전례 봉사 직무를 수행한다.”(18)
  • 1144 그러므로 성사를 거행할 때 온 회중은 모든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으로 하나 되어” 각자의 임무에 따라 ‘전례 거행자’(liturgus)가 된다. “전례 거행에서는 누구나 교역자든 신자든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예식의 성격과 전례 규범에 따라 자기에게 딸린 모든 부분을 또 그것만을 하여야 한다.”(19)
  • II. 어떻게 거행하는가-
  • 표징과 상징들
  • 1145 성사의 거행은 표징과 상징으로 짜여 있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에 따라 창조 사업과 인류 문화에 근거를 두고 있는 표징과 상징의 의미는 구약의 사건들 안에서 점차적으로 드러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업적에서 충만하게 계시된다.
  • 1146 인간 세상의 표징. 인간의 삶에서 표징과 상징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물질적인 표징과 상징을 통해서 영적인 실재를 표현하고 인식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나 몸짓, 동작을 통한 표징과 상징이 필요하다.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 1147 하느님께서는 가시적 피조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지성을 갖추고 있는 인간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물질적인 우주에서 창조주의 흔적을 읽어 낸다.(20) 빛과 어둠, 바람과 불, 물과 대지, 나무와 열매들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해 주며, 그분의 위대하심과 가까이 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 1148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이러한 피조물들은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이 표현되는 수단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경배드리는 인간의 행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생활을 위한 표징과 상징도 마찬가지이다. 씻고, 기름 바르고, 빵을 떼고, 잔을 나누는 행위들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며 창조주에 대한 인간의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
  • 1149 인류의 주요 종교들은 때때로 종교 의식의 이러한 우주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교회 전례는 피조물과 인간 문화의 여러 요소들을 전제로 하며, 그것들을 통합하고 성화시킨다. 이때 교회의 전례는 그 요소들을 은총의 표징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의 표징으로 승화시킨다.
  • 1150 계약의 표징. 선택된 백성은 그들의 전례 생활을 특징짓는 특수한 표징과 상징들을 하느님께 받았다. 이것들은 이제 우주 운행의 주기나 사회 활동에 대한 단순한 기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표징이며, 당신 백성을 위해 행하신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의 상징이다. 구약의 이 전례적 표징들을 들어 보면, 할례, 왕과 사제에 대한 도유와 축성, 안수, 희생 제사, 그리고 특히 파스카 등이 있다. 교회는 이러한 표징들 안에서 신약의 성사들의 예표를 본다.
  • 1151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표징. 주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는 중에 종종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자 피조물을 표징으로 이용하신다.(21) 예수님께서는 물질적인 표징이나 상징적 행위로 병을 고쳐 주시거나 당신의 설교를 부각시키신다.(22)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사건과 표징들, 특히 이집트 탈출과 파스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다.(23) 그분 자신이 바로 이 모든 표징들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 1152 성사의 표징. 성령 강림 날부터 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사적 표징을 통하여 성화 활동을 하신다. 교회의 성사들은 물질세계와 사회생활의 풍부한 모든 표징과 상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화하고 수용한다. 그뿐 아니라, 구약의 예표와 형상들을 완성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상징하고 실제로 현존하게 하며, 하늘의 영광을 예시하고 미리 누리게 한다.
  • 언어와 행위
  • 1153 성사 거행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와 만나는 것이며, 이 만남은 행위와 언어를 통하여 대화로 표현된다. 상징적인 행위 자체가 이미 언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좋은 땅에서 열매 맺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이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 이 행위들에 따라 나와야 하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전례 행위는 하느님의 말씀이 표현하는 것을 드러낸다. 곧 무상으로 먼저 베푸시는 하느님의 주도와 하느님 백성의 신앙의 응답을 동시에 의미한다.
  • 1154 말씀 전례는 성사 거행의 필수 부분이다. 신자들의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는, 말씀의 책(전례 성경), 말씀에 대한 존경(행렬, 향, 촛불),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독서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경 봉독, 말씀 선포의 연장인 사제의 강론, 회중의 응답(환호송, 화답송, 연도[連禱], 신앙 고백) 등 하느님 말씀의 표징들이 부각되어야 한다.
  • 1155 표징과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전례적인 말씀과 행위는 그것들이 가리키는 바를 실현한다는 면에서도 분리될 수 없다. 성령께서는 신앙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실 뿐 아니라, 성사를 통해서 말씀으로 예고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실현하신다. 성령께서는 사랑하시는 성자께서 성취하신 성부의 업적을 현존하게 하고 나누어 주신다.
  • 노래와 음악
  • 1156 “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다른 예술 표현들 가운데에서 매우 뛰어난, 그 가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보고이다. 그것은 특히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24) 흔히 악기로 반주되는 영감을 받은 시편의 가사와 노래는 구약의 전례 거행과 이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지속 발전시켜 왔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에페 5,19).(25) “성가는 두 배의 기도입니다.”(26)
  • 1157 노래와 음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주요 기준에 따라 “전례 행위와 더욱 밀접히 결합되면 될수록 더더욱”(27) 깊은 의미를 지닌 표징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기준들은 기도의 아름다운 표현, 예정된 시간에 이루어지는 회중 전원의 일치된 참여, 전례 거행의 장엄함 등이다. 이처럼 노래와 음악은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라고 하는 전례적 언어와 행위의 궁극 목적에 이바지한다.(28)
  • 성당에 울려 퍼지는 찬미가와 송가와 감미로운 노래들을 듣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요! 그 노래들은 제 귀로 흘러들어 제 가슴에 진리를 퍼뜨렸습니다. 저는 신심의 약동으로 고양되었으며,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눈물은 유익한 눈물이었습니다.(29)
  • 1158 이 표징(성가, 음악, 언어, 행위)들의 조화는 전례를 거행하는 하느님 백성 고유의 풍부한 문화로 표현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로운 것이 된다.(30) 그러므로 교회의 규범에 따라, “거룩한 신심 행사들에서 그리고 바로 전례 행위 안에서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대중 성가를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31) 그렇지만 “성가에 붙여진 가사는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성경과 전례의 샘에서 길어 올려야 한다.”(32)
  • 성화상
  • 1159 성화와 전례에 쓰이는 성화상(icon)은 주로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다.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느님을 성화상(聖畵像)으로 표현할 수 없었으나,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성화상의 새로운 ‘경륜’이 열렸다.
  • 전에는 육신도 형체도 갖지 않으신 하느님을 결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이후로 이제는 내가 본 하느님을 그릴 수 있습니다. …… 가려지지 않은 그 얼굴에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33)
  • 1160 그리스도교의 성화상은 성경이 언어로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형상으로 옮긴다. 형상과 언어는 서로를 분명하게 해 준다.
  • 신앙을 간결하게 고백하기 위해서, 우리는 글이나 글 아닌 것으로 변함없이 전해진 교회의 모든 전통을 보존한다. 그 전통 중의 하나가 복음 선포와 부합되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전통이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외형적으로가 아니라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그림들은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다. 서로를 밝혀 주는 형상과 언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서로 그 의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34)
  • 1161 전례 거행의 모든 표징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천주의 성모와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성화상들은 그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구원에 계속 참여하는 “구름처럼 많은 증인들”(히브 12,1)을 보여 주며, 우리는 특히 성사 거행 안에서 이들과 결합된다. 우리 신앙은 이러한 성화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마침내 “하느님의 모습을 닮도록”(35) 변화된 인간과 천사들을 본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완전히 하나가 된 모습이다.
  •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우리 교부들의 가르침과 가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결정한다. (교회의 전승은 바로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의 전승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림으로 그려졌거나, 모자이크로 만들어졌거나 또는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서 깊고 거룩한 그림들과, 귀중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상은 하느님의 성당과 제기들과 제의에, 벽과 화판에, 집안과 거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순결하신 우리 주 천주 성모의 성화상이나 거룩한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36)
  • 1162 “성화상의 아름다움과 색채는 나의 기도를 고무시킵니다. 전원 풍경이 나의 마음을 자극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것처럼 성화상을 보는 것은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축제와 같습니다.”(37) 성화상을 보는 일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과 전례의 찬미가와 합쳐져, 전례 거행의 표징들과 조화를 이룬다. 그리하여 전례가 기념하는 신비가 마음속에 기억되고, 나아가 신자들의 새로운 생활로 표현된다.
  • III. 언제 거행하는가-
  • 전례 시기
  • 1163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한 해의 흐름을 통하여 지정된 날들에 하느님이신 자기 신랑의 구원 활동을 거룩한 기억으로 경축하는 것을 자기 임무라고 여긴다. 주간마다 주일이라고 불린 날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또 일 년에 한 번 주님의 복된 수난과 함께 이 부활 축제를 가장 장엄하게 지낸다. 한 해를 주기로 하여, 강생과 성탄에서부터 승천, 성령 강림 날까지, 또 복된 희망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펼친다. 이렇게 속량의 신비들을 기억하며, 자기 주님의 풍요로운 힘과 공로가 모든 시기에 어떻게든 현존하도록 그 보고를 신자들에게 열어, 신자들이 거기에 다가가 구원의 은총으로 충만해지도록 한다.”(38)
  • 1164 하느님 백성은 모세의 율법 시대부터 파스카를 기점으로 해서 정해진 날에 지내는 축일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구세주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기념하고, 그분께 감사드리며, 그 기억을 영구히 간직하고 새로운 세대들이 여기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이미 단 한 번에 영원히 성취된 그리스도의 파스카와,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이 파스카의 완성 사이에 위치한 교회의 시대에, 정해진 날에 거행되는 전례에는 그리스도 신비의 새로움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 1165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하는 기도 중에 두드러지는 단어 하나는 바로 “오늘!”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와(39) 성령의 초대를(40) 그대로 반향하고 있다.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이 ‘오늘’에 들어오도록 초대하시며, 이는 바로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의 파스카의 ‘시간’이다.
  • 생명이 모든 존재 위에 펼쳐졌고, 모두에게 큰 빛이 가득 찼습니다. 태양 중의 태양이신 분이 우주를 덮으시고, 새벽 별보다 먼저, 천체들보다 먼저 계시는 분,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위대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존재 위에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길고도 영원히 저물지 않는 빛의 하루가주어지니 그것이 바로 신비한 파스카입니다.(41)
  • 주님의 날
  • 1166 “교회는, 사도전승에 따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에 그 기원을 둔 파스카 신비를 여덟째 날마다 경축한다. 그날은 당연히 주님의 날 또는 주일이라고 불린다.”(42)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은 창조의 첫째 날을 기념하는 ‘주간 첫날’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대안식일의 ‘휴식’ 다음에 “주님께서 만드신 날”(시편 118[117],24), “저물지 않는 날”을(43) 시작하시는 ‘여덟째 날’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당신 잔치에 초대하신 모든 신자들의 공동체가 부활하신 주님을 여기에서 만나게 되므로, ‘주님의 만찬’이 이날의 중심이다.(44)
  • 주님의 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그리스도인들의 날이 바로 우리의 날입니다. 이 때문에 이날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날 주님께서 승리하셔서 성부께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이날을 태양의 날(일요일)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도 기꺼이 이날을 태양의 날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세상의 빛이 떠올랐고, 오늘 우리를 치유하는 빛을 비추는 정의의 태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45)
  • 1167 주일은 전례 모임을 위해 가장 좋은 날이다. 이날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례에 참여하고, 주님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며,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46)
  •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부활 주일에 이루어진 놀라운 일들을 묵상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되다 주일이여, 이날 만물의 창조가 시작되었으며……세상이 구원되고……인류가 새롭게 되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로다. 이날 하늘과 땅이 기뻐하였으며, 온 우주에 빛이 가득 찼도다. 복되다 주일이여, 이날 낙원의 문이 열려, 아담과 추방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그리로 들어가게 되었도다.”(47)
  • 전례주년
  • 1168 빛의 근원인 파스카 성삼일에서 시작하여 부활의 새로운 시기는 전례주년 전체를 찬란히 비춘다. 이 근원을 중심으로,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점차 옮겨감으로써 한 해는 전례를 통하여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전례주년은 참으로 “주님의 은혜로운 해”이다.(48) 구원 경륜은 시간의 틀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그 구원 경륜이 예수님의 파스카와 성령의 파견으로 완성된 뒤에 역사의 종말이 ‘미리 맛봄’으로 실현되었고, 하느님 나라가 우리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
  • 1169 그렇기 때문에 부활절은 단순히 여러 축일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마치 성체성사가 성사 중의 성사(큰 성사)인 것처럼, ‘축일 중의 축일’, ‘대축일 중의 대축일’이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동방 교회가 성주간을 “대주간”이라고 부르듯이 이날을 “대주일”(49) 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쳐 이기신 부활의 신비는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할 때까지 그 힘찬 능력으로 우리의 낡은 시대를 새롭게 한다.
  • 1170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모든 교회들은 춘분 후 만월(니산월 14일) 뒤에 오는 주일에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을 지내기로 합의했다. 니산월 14일을 계산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부활절 날짜는 항상 같지는 않다. 그래서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는 다시 주님의 부활절을 같은 날에 지내기 위해 합의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 1171 전례주년은 파스카라는 단 하나의 신비가 지닌 다양한 측면이 전개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구원의 시작을 기념하고 우리에게 파스카 신비의 첫 열매를 전해 주는, 강생의 신비가 중심이 되는 축일들(주님 탄생 예고, 예수 성탄, 주님 공현)의 주기(週期)도 그러하다.
  • 전례주년의 성인 축일
  • 1172 “그리스도 신비의 이 연례 주기를 지내는 동안, 거룩한 교회는 당신 아드님의 구원 활동과 뗄 수 없는 유대로 결합되어 있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마리아를 특별한 사랑으로 공경한다. 그분 안에서 교회는 구원의 뛰어난 열매를 경탄하고 찬양하며, 이를테면 그 지순한 표상 안에서 자신이 온전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열망하는 모습을 기쁨으로 바라본다.”(50)
  • 1173 교회가 전례주년 안에서 순교자들과 다른 성인들을 기념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받고 함께 영광을 받은 성인들 안에서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며,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하는 그들의 모범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고, 그들의 공로로 하느님의 은혜를 간청하여 받는다.”(51)
  • 시간 전례(성무일도)
  • 1174 우리가 성찬례에서 특히 주일 집회에서 거행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인 강생과 파스카의 신비는, 시간 전례 곧 “성무일도”의(52) 거행을 통하여 매일의 시간에 스며들어 그 시간을 변화시킨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고(53) 하는 사도의 권고에 따라 충실하게 거행하는 이 성무일도(聖務日禱)는 “낮과 밤의 모든 흐름이 하느님 찬미를 통하여 성화되도록 이루어져 있다.”(54) 이것은 “교회의 공적 기도”(55) 인데, 이로써 신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은 세례 받은 사람들의 왕다운 사제직을 수행한다. 교회가 ‘공인한 형식으로’ 거행하는 시간 전례는 “참으로 자기 신랑에게 이야기하는 신부의 목소리이며, 또한 당신 몸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기도이다.”(56)
  • 1175 시간 전례는 하느님 백성 전체의 기도가 되어야만 한다. 이 전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저 사제 임무를 바로 당신 교회를 통하여 수행하신다.”(57) 모든 신자는 교회 안에서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위치와 생활의 처지에 따라 여기에 참여한다. 사제들은 사목직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기도와 말씀의 봉사에 충실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기 때문에,(58) 남녀 수도자들은 자기 봉헌 생활의 은사에 따라,(59) 성무일도를 바치며, 모든 신자들도 가능한 한 성무일도를 바쳐야 한다. “영혼의 목자들은 주일과 대축일에 주요 시간경 특히 저녁 기도를 성당에서 합동으로 바치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또한 평신도들도 사제들과 함께, 또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아니면 각기 혼자서 성무일도를 바치도록 권장한다.”(60)
  • 1176 시간 전례의 거행은 목소리와 기도하는 마음의 조화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전례와 성경 특히 시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출 것”(61) 을 요구한다.
  • 1177 여러 시간경의 ‘찬미가’는 시편 기도를 교회의 절기에 맞추어 하루 중의 시간이나 전례 시기나 기념하는 축일의 상징적 의미를 표현한다. 그뿐 아니라, 시간경마다 읽는 하느님 말씀(성경 소구와, 이어지는 응송 또는 화답송: troparia)과 어떤 시간경(독서 기도)에서 읽는 교부들과 영성가들의 글은 기념하는 신비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일깨우고, 시편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며, 침묵 기도를 준비시켜 준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기도가 되게 하는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는 이렇게 해서 전례 거행 안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 1178 성찬례 거행의 연장인 시간 전례는 하느님 백성의 여러 가지 신심 행위들, 특히 성체 조배와 공경을 배제하지 않으며, 그러한 보완적인 신심 행위를 장려한다.
  • IV. 어디에서 거행하는가-
  • 1179 “영과 진리 안에서”(요한 4,24) 드리는 신약의 예배는 어느 한 특정 장소에만 매이지 않는다. 온 땅은 거룩하며, 사람의 자녀들에게 맡겨졌다. 신자들이 한 장소에 모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영적 집”으로 세워지도록 모인 “살아 있는 돌”(1베드 2,5)이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생수가 솟아 나오는 영적인 성전이다.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이다.
  • 1180 종교 자유가 방해받지 않을 때,(62)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건물을 짓는다.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은 단순히 신자들이 모이는 장소일 뿐 아니라, 그 지역에 살아 있는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여 하나가 된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께서 머물러 계시는 교회를 의미하고 드러내 보인다.
  • 1181 “기도의 집은 성찬례가 거행되고, 성체가 보존되어 있으며, 신자들이 모이고, 우리를 위하여 희생의 제단에서 봉헌되신 우리 구세주이신 하느님 아들의 현존을 공경하며 신자들이 도움과 위로를 받는 곳이므로, 아름다워야 하고 기도와 장엄한 성사에 알맞아야 한다.”(63) 이 ‘하느님의 집’을 이루는 표징들이 지닌 진실과 조화는 그곳에 계시면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64)
  • 1182 신약의 제대는 주님의 십자가이며,(65) 그곳으로부터 파스카 신비의 성사들이 흘러나온다. 성당의 중심인 제대 위에서 십자가의 제사가 성사의 표징을 통하여 재현된다. 제대는 하느님의 백성이 초대되는 주님의 식탁이기도 하다.(66) 동방의 일부 전례 전통에서는 제대가 무덤을 상징하기도 한다(그리스도 참으로 돌아가셨고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 1183 감실은 “성당 내에서 최대의 존경심으로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위치에”(67) 설치되어야 한다. 성체를 모시는 감실의 고귀한 외양과 그 위치와 안정성은(68) 제대에서 이루어진 성체성사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주님께 드리는 경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 도유는 성령 부여의 인호에 대한 성사적 표징이므로, 축성 성유는 전통적으로 성소의 안전한 곳에 정중하게 보관한다. 그곳에 예비 신자 성유와 병자 성유를 함께 보관할 수 있다.
  • 1184 주교의 좌석(cathedra)이나 사제석은 “모임을 주재하고 기도를 지도하는 이의 직무를 드러내야 한다.”(69)
  • 독서대(ambo). “하느님 말씀의 존엄성은, 성당 안에서 말씀의 선포에 도움이 되고, 말씀 전례가 진행되는 동안 신자들의 주의를 자연스럽게 끌 수 있는 장소를 요구한다.”(70)
  • 1185 하느님 백성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형성된다. 그러므로 성당에는 세례성사를 베풀기 위한 장소(세례대)가 있어야 하며, 세례 서약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장소(세례수 보관소)가 있어야 한다.
  • 세례 생활의 갱신은 회개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성당은 회개를 표현하고 용서를 받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회개하는 사람들을 영접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 또한 성당은 더없이 위대한 성찬례의 기도를 연장하고 내면화하는 묵상과 침묵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 1186 끝으로 성당은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려면 문지방을 넘어야 하는데, 이는 죄로 상처 입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부름 받은 새 생명의 세계로 넘어감을 상징한다. 가시적인 성당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을 상징한다. 하느님 백성은 이 아버지의 집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21,4). 그러므로 성당은 문이 활짝 열려 있어 누구든지 환영하는,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의 집이기도 하다.
  • 간추림
  • 1187 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 곧 머리와 몸이 하는 일이다. 우리의 대사제께서는 천상 전례 중에 천주의 성모와 사도들과 모든 성인과 이미 하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의 무리와 더불어 이 전례를 항상 거행하고 계신다.
  • 1188 전례를 거행하는 모든 회중은 각기 자신의 임무에 따라 ‘전례 거행자’들이 된다. 세례 사제직은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의 사제직이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기 위하여 성품성사로 서품된다.
  • 1189 전례의 거행에는 창조(빛, 물, 불)와, 인간 생활(씻음, 기름 바름, 빵을 나눔)과, 구원의 역사(파스카 예식) 등에 관계되는 표징과 상징들이 포함된다. 신앙의 세계로 들어와 성령의 힘을 받은 이러한 우주의 요소들과 인간적인 예식들과 하느님을 기념하는 행위들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화 행위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 1190 말씀 전례는 전례 거행의 필수 부분이다. 전례 거행의 의미는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신앙의 응답으로 표현된다.
  • 1191 노래와 음악은 전례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을 선용하는 기준은 기도의 아름다운 표현, 회중의 참여와 전례 거행의 신성한 특성에 있다.
  • 1192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르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통하여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 그분을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천주의 성모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통하여 성화상이 나타내는 바로 그분들을 공경한다.
  • 1193 ‘주님의 날’인 주일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에 성찬례를 거행하기에 가장 적절한 날이다. 주일은 특히 전례 모임의 날이고, 그리스도인 가족의 특별한 날이며, 즐거움과 휴식의 날이다. 주일은 “전례주년 전체의 토대이며 핵심이다.”(71)
  • 1194 교회는 “한 해를 주기로 하여, 강생과 성탄에서부터 승천, 성령 강림 날까지, 또 복된 희망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펼친다.”(72)
  • 1195 지상의 교회는 천주의 성모를 비롯하여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다른 성인들을 전례력에 정해진 날에 기억함으로써, 천상 전례와 일치해 있음을 드러낸다. 교회는 영광을 입은 당신 지체들의 구원을 완성하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며, 그 지체들이 보여 주는 모범은 하느님 아버지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있는 교회를 격려한다.
  • 1196 ‘시간 전례’를 거행하는 신자들은 시편 기도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과 찬가와 찬미를 통하여 우리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한다. 그리하여 성부께 영광을 드리며 온 세상에 성령의 선물을 주시도록 간청하시는 그분의 끊임없는 보편적 기도에 합심한다.
  • 1197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는 곳’인 하느님의 참된 성전이시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은혜로 성령의 성전이 되며, 교회를 이루는 살아 있는 돌이 된다.
  • 1198 교회는 지상 조건 때문에 공동체가 모일 수 있는 장소를 필요로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성당들은 거룩한 장소이며, 나그네인 우리가 향하여 나아가는 거룩한 도성 천상 예루살렘의 표상이다.
  • 1199 이 성당 안에서 교회는 거룩하신 삼위께 영광을 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거행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기도를 올리고, 회중 가운데 성사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드린다. 성당은 또한 묵상과 개인 기도를 위한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