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인간의 소명: 성령 안의 삶
- 제 2 부 십 계 명
- 제 3 장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 제2절 은총과 의화
- II. 은총
제 1 부 인간의 소명: 성령 안의 삶
- 1996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된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50) 곧 양자가 되고(51) 신성(神性)과(52) 영원한 생명을(53)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 1997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이다. 곧 은총은 우리를 성삼위의 내적 생활 안으로 이끌어 준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는다. 그는 ‘양자’로서, 외아들과 결합되어, 이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사랑을 불어넣어 주시고 교회를 이루시는 성령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 1998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러한 부름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 부름은 스스로 거저 베푸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만 당신을 계시하시고 당신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름은 인간 지성의 능력과 의지의 힘을 초월하며, 어떤 피조물의 능력과 힘도 초월한다.(54)
- 1999 그리스도의 은총은 무상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당신 생명이다. 이 은총은 세례로써 받는 성화 은총(聖化恩寵, gratia santificans) 또는 신화 은총(神化恩寵, gratia deificans)이다. 이 은총은 우리 안에서 성화 활동의 샘이 된다.(55)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2코린 5,17-18).
- 2000 성화 은총은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살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완전하게 하는 상존 은총(常存恩寵, gratia habitualis)이며, 지속적이고 초자연적인 성향이다. 이 성화 은총, 곧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자 하는 변함없는 마음가짐인 상존 은총은, 회개의 시작이나 성화 활동의 과정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가리키는 조력 은총(助力恩寵, gratia actualis)과는 구별된다.
- 2001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은 은총이 이미 작용한 결과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하는 데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원의(願意)를 일으키심으로써 일을 시작하시며, 우리의 의지에 협력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56)
- 우리도 일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일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일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고자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에 앞서 있고, 일단 치유가 된 뒤에는 활기를 주려고 우리의 뒤를 따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부름을 받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원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57)
- 2002 하느님의 자유로운 주도(主導)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그에게 자유와 더불어, 당신을 알고 사랑할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에만 사랑의 친교를 이룰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직접 감동시켜 주시고 직접 움직이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채워 주실 수 있는 진리와 선에 대한 갈망을 인간 안에 심어 주셨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은, 모든 기대 이상으로 그 갈망을 충족시킨다.
- 당신께서 고요한 가운데 창조의 일을 하셨어도, 매우 좋은 그 일을 끝내신 뒤 이렛날에 안식을 취하셨다고 성경의 말씀이 말해 주는 것은, 당신께서 주셨기에 매우 좋은 일들을 한 뒤에 우리도 영원한 생명의 안식을 당신 안에서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58)
- 2003 은총은 먼저, 그리고 주로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선물이다. 그러나 은총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당신 사업에 참여시키고, 우리를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선물들도 포함된다. 이 선물들 중에는 각 성사의 고유한 은혜인 성사 은총도 있고, 바오로 사도가 사용한 그리스 말을 따라서 카리스마(charisma)라고 부르기도 하는 특별한 은총[特恩] 또는 은사들도 있다. 카리스마는 호의, 무상의 선물, 은혜를 의미한다.(59) 기적이나 이상한 언어의 은사와 같이 때로는 예외적인 그 은사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카리스마는 성화 은총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또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한다. 카리스마는 교회를 건설하는 사랑에 이바지하는 것이다.(60)
- 2004 특은들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책임을 완수하고 교회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따르는 직분의 은총을 언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로마 12,6-8).
- 2005 은총은 초자연적인 것이므로 우리의 감각 기관에 감지되지 않으며, 신앙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업적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다고 추론할 수 없다.(61) 그러나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20)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우리 삶과 성인들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은총이 우리 안에 활동하고 있다는 보장도 받고, 우리가 갈수록 더 커져 가는 신앙과 신뢰하는 청빈의 태도를 지니도록 자극도 받는다.
- 이러한 마음가짐의 가장 아름다운 예는, 교회의 재판관들이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질문에 대해 잔 다르크 성녀가 한 답변에서 볼 수 있다. “잔 다르크 성녀는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 중에 있음을 아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제가 은총 중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저를 은총의 상태에 두시기를 바라며, 만일 제가 은총 중에 있다면 저를 그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