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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84 하느님께서는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었다.”(신명 5,6)고 말씀하시는 그 백성의 역사 안에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며 해방시켜 주시는 당신의 행업을 상기시키심으로써 당신을 알리신다. 첫째 말씀에는 율법의 첫째 계명이 담겨 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신명 6,13-14). 하느님의 첫째 요청과 정당한 요구는 인간이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흠숭하라는 것이다.
  • 2085 유일하고 참되신 하느님께서는 먼저 당신 영광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하신다.(3) 인간의 소명과 진리에 관한 계시는 하느님에 관한 계시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6) 창조되었으니, 이에 걸맞게 자신의 행업으로써 하느님을 드러내는 소명을 받았다.
  • 트리폰 씨, 태초로부터……우주를 창조하고 질서 지어 주신 신 외에 다른 신은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며, 태초부터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느님께서 당신들의 신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조상들을 “그분의 힘있는 손과 팔을 들어”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다른 어떤 신에게 희망을 두지 않고, 당신들과 같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4)
  • 2086 “첫째 계명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포함한다. ‘하느님’이라고 하면, 한결같고 변함이 없으며 항상 동일하신 분, 성실하고 악이 전혀 없는 온전히 의로우신 분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해야 한다. 그 누가 전능하고 인자하며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께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무한한 호의와 애정을 생각하면, 누가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성경에서 하느님께서는 계명의 시작과 끝에 ‘나는 주님이다.’라고 반복하신다.”(5)
  • 믿음
  • 2087 우리에게 당신 사랑을 계시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안에 우리 윤리 생활의 원천이 있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순종’을(6) 첫째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모든 도덕적 탈선의 시작이고 이유라고 설명한다.(7)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그분을 믿고 그분을 증언하는 것이다.
  • 2088 첫째 계명은 현명하고 조심스럽게 우리의 믿음을 기르고 지키며, 믿음과 대립되는 모든 것을 물리칠 것을 요구한다. 믿음을 거슬러 짓는 죄에는 여러 가지 양상이 있다.
  • 믿음에 대한 고의적 의심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교회가 믿으라고 제시하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기를 소홀히 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의심하는 것은 믿기를 망설이거나, 신앙에 대한 반론이나 신앙의 어두움으로 생겨나는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심을 고의적으로 키우면, 정신적으로 소경이 된다.
  • 2089 불신은 계시 진리를 무시하거나 그것에 동의하기를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단(異端)이란 세례 받은 후 거룩한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할 어떤 진리를 완강히 부정하거나 완고히 의심하는 것이고, 배교(背敎)란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부 포기하는 것이며, 이교(離敎)란 교황에게 순종하거나 그에게 속하는 교회 구성원들과 친교 맺기를 거부하는 것이다.”(8)
  • 희망
  • 2090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시고 인간을 부르실 때,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사랑에 응답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의 계명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서 주시기를 바라야 한다. 희망은 하느님의 복과 지복 직관을 확신에 넘쳐 기다리는 것이다. 희망은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고 벌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 2091 첫째 계명은 희망을 거스르는 죄, 곧 절망이나 자만과도 관련된다.
  • 절망으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시거나 죄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버린다. 절망은 하느님의 선함과 의로움과(하느님은 당신 약속에 성실하시다.) 그리고 그분의 자비로움을 거스르는 것이다.
  • 2092 자만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늘의 도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는 형태도 있고, (회개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용서를 얻고 공로 없이도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과신하는 형태도 있다.
  • 사랑
  • 2093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진실한 사랑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라는 요청과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계명은,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 때문에,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보다 하느님을 사랑할 것을 우리에게 명한다.(9)
  • 2094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슬러 여러 가지로 죄를 지을 수 있다. 무관심은 하느님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그 사랑의 힘을 부인하는 것이다. 배은은 하느님의 사랑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랑으로 보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냉담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주저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이며, 그 역동적 사랑에 자신을 내맡기기를 거부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영적 게으름(acedia)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기쁨을 거부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증오는 교만에서 비롯된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부인하고, 하느님을 죄를 엄단하고 벌을 주시는 분으로 여겨 저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