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토마스 셔우드는 1551년경 영국 잉글랜드의 런던에서 가톨릭 신앙 때문에 감옥생활까지 겪은 아버지 헨리 셔우드(Henry Sherwood)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셔우드(Elizabeth Sherwood)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직물 소매상인이었다. 15살 때 그는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떠나 10년 동안 모직물 사업을 함께했다. 1576년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에 있는 영국 대학에 가서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계좌를 정리하고 공부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잠시 런던의 집으로 돌아왔다. 런던에 도착한 그는 도싯셔(Dorsetshire) 출신의 트레곤웰(Tregonwell) 부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은 가끔 비밀리에 미사가 봉헌되는 곳이었다.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던 부인의 한 아들은 이를 매우 싫어했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복자 토마스 셔우드를 만나자 큰소리로 ‘반역자’라고 외쳤다. 결국 복자 토마스 셔우드는 판사 앞에 서게 되었다. 그는 런던탑의 지하 감옥에 갇혀 영국 교회에 대한 여왕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굶주림과 추위와 싸워야 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고초를 겪은 그는 1578년 2월 7일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주 예수님, 저는 당신을 위하여 이 같은 고통을 받는 것도 부당합니다. 하오나 당신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저에게도 풍성하게 허락하소서.” 복자 토마스 셔우드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2월 7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토마스 셔우드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7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의류 상인이었던 복자 토마스 셔우드가 두에에서 사제직을 시작했으나 늙고 병든 아버지를 돕기 위해 런던에 갔다가 거리에서 체포되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 런던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