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1 장 천주 성부를 믿나이다
- 제1절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 제7단락 타락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385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모든 업적도 선하다. 그러나 아무도 고통의 경험과, 자연계의 ─ 피조물 고유의 한계성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 악을 피할 수 없으며, 특히 윤리 악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찾았으나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258) 고 말하였으며, 마침내 살아 계신 하느님께 돌아섬으로써 그의 고통스러운 탐구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악의 신비’(2테살 2,7)는 ‘경외의 신비’(259) 로써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사랑의 계시는 만연되어 있는 악과 동시에 넘쳐흐르는 은총을 보여 준다.(260) 그러므로 우리가 악의 기원 문제를 숙고할 때, 악을 홀로 정복하신 그분께 우리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야 한다.(261)
- I.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넘쳐흐른다
- 죄의 실재
- 386 죄는 인간 역사 안에 현존한다. 이를 무시하거나 또는 이 모호한 실재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자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죄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과 하느님의 심오한 관계를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관계를 떠나서는, 계속 인간의 삶과 역사를 짓누르면서 하느님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죄악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 387 죄의 실재, 특히 원죄의 실재는 오로지 하느님 계시의 빛으로 밝혀진다. 하느님에 대한 계시가 없다면 우리는 죄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으며, 단지 죄를 성장의 결함, 심리적 나약함, 어떤 잘못, 또는 부적합한 사회 구조에서 나오는 필연적 결과 등으로 설명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앎으로써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이 그분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주신 자유를 오용하는 것이 죄임을 이해하게 된다.
- 원죄 - 신앙의 본질적인 진리
- 388 계시가 진행됨에 따라 죄의 실재도 밝혀진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 역시 인간 조건의 고통을 창세기에 나오는 타락의 이야기에 비추어 보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의 궁극적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빛에서만 명백해진다.(262) 죄의 원천인 아담을 알려면 은총의 원천으로서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세상의 구원자를 드러내 보이시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요한 16,8) 분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파라클리토 성령이시다.
- 389 원죄 교리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시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고, 그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복음의 ‘이면’(裏面)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진 교회는(263) 그리스도의 신비가 손상되면 원죄의 계시 역시 올바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타락 이야기를 읽으려면
- 390 인류의 타락 이야기(창세 3장)는 상징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인간 역사의 시초에 일어났던 사실, 곧 원초적인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264) 계시는 우리의 첫 조상들이 자유로이 범한 원죄가 온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신앙의 확신을 우리에게 준다.(265)
- II. 천사들의 타락
- 391 우리의 첫 조상들이 불순명을 선택하게 된 배후에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유혹의 목소리가 있었다.(266) 그 목소리는 질투심 때문에 그들을 죽음에 빠지게 하였다.(267) 성경과 교회의 성전(聖傳)은 그 목소리에서 사탄 또는 악마라 불리는 타락한 천사를 본다.(268) 교회는 그가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천사였다고 가르친다. “악마와 모든 마귀는 하느님께서 본래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그들 스스로 악하게 되었다.”(269)
- 392 성경은 이 천사들의 죄에 대해 말한다.(270) 이 ‘타락’은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철저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부한 이 영적 피조물들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생겨난 것이다. 우리 첫 조상들에게 “너희가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창세 3,5)고 한 유혹자의 말에 바로 이 반역을 엿볼 수 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고”(1요한 3,8),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요한 8,44)다.
- 393 천사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지닌 돌이킬 수 없는 특성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참회가 없는 것처럼, 그들도 타락한 뒤에는 참회가 없다.”(271)
- 394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살인자”(요한 8,44)라고 부르셨던 자, 아버지께 받은 사명을 포기하도록 예수님까지도 유혹한 악마의 해로운 영향을 성경은 증언한다.(272) 그러나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이다”(1요한 3,8). 악마가 저지른 일 가운데 가장 중대한 것은 바로 인간을 하느님께 불순명하도록 거짓말로 유혹한 것이었다.
- 395 그러나 사탄의 힘은 무한하지 못하다. 그는 다만 하나의 피조물일 뿐이다. 그는 순수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강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막지 못한다. 사탄은 하느님을 거슬러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느님 나라를 증오하면서 세상에서 활동한다. 인간과 사회에 영적으로 또 간접적으로는 물질적인 것에까지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이러한 활동은 인간과 세계의 역사를 힘차고도 부드럽게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허락하신 일이다. 이러한 악마의 활동에 대한 하느님의 허락은 하나의 커다란 신비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로마 8,28).
- III. 원죄
- 자유에 대한 시험
- 396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셨고 당신과 친교를 이루게 하셨다. 영적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께 자유롭게 순명함으로써만 이 친교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인간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는 금지령은 이것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세 2,17)는 피조물인 인간이 자유로이 인정하고 신뢰로써 지켜야 할,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를 상징적으로 환기시킨다. 창조주께 속해 있는 인간은 창조 질서와 자유의 사용을 규제하는 윤리적 규범의 지배를 받는다.
- 인간의 첫 범죄
- 397 악마에게 유혹을 받은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창조주를 향한 신뢰가 죽게 버려두었으며,(273) 자신의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하느님의 계명에 불순종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첫 범죄가 성립하는 것이다.(274) 그 뒤의 모든 죄는 하느님에 대한 하나의 불순종이 되고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이 될 것이다.
- 398 이 죄로 인간은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함과 동시에 하느님을 무시하였다. 곧,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하느님을 거슬렀고, 피조물로서 자신의 처지가 요구하는 것을 거슬렀으며, 결국은 자신의 선익을 거슬렀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한 상태에 있게 하시고, 영광 안에서 충만히 ‘신화’(神化)하기로 정하셨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275) “하느님처럼 되기를”(276) 원하였다.
- 399 성경은 이러한 첫 불순종의 비극적인 결과를 보여 준다. 아담과 하와는 곧 원초적 거룩함의 은총을 잃는다.(277) 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특권에 집착하시는 분이라고 잘못 생각하고(278)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279)
- 400 그들이 원초적 의로움으로 누리던 조화는 파괴되었으며, 육체에 대한 영혼의 영적 지배력이 손상을 입게 되고,(280)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갈등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281) 그들의 관계는 탐욕과 지배욕으로 얼룩지게 되었다.(282) 피조물들과 이루는 조화는 깨졌다. 보이는 피조물은 인간에게 낯설고 적대적인 것이 되었다.(283) 인간 때문에 피조물은 “멸망의 종살이에”(로마 8,21) 매이게 되었다.(284) 이 불순종의 사건을 두고 인간은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285) 분명히 예고한 결과가(286)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죽음이 인류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287)
- 401 이러한 첫 범죄 이후로 이 세상에는 죄가 범람하게 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형제 살해를(288) 비롯하여, 죄로 말미암은 전반적인 타락이(289) 이어진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죄는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대한 불충실과 모세 율법의 위반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속량’ 이후에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죄는 무수히 나타난다.(290) 성경과 교회의 성전은 끊임없이 인간 역사 안에 존재하는 죄와 그 보편성을 환기시킨다.
- 하느님의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 사실은 우리의 경험과 일치한다. 인간이 제 마음을 살펴볼 때, 선하신 자기 창조주에게서는 올 수 없는 악에 기울어져 있고 수많은 죄악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흔히 하느님을 자기 자신의 근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궁극 목적을 지향하는 당연한 질서마저 무너뜨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조화를 깨트려 버렸다.(291)
-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미치는 결과
- 402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에 연관된다.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다.”(로마 5,19)고 말한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12). 죄와 죽음의 보편성에 대비시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보편성을 내세운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 5,19).
- 403 바오로 사도의 뒤를 이어 교회는, 인간을 짓누르는 엄청난 비참이나 죄와 죽음으로 기울어지는 인간의 경향을 아담의 범죄 사실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영혼의 죽음’인 죄에 물들어, 죄가 우리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과도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항상 가르쳐 왔다.(292) 신앙의 이 확신으로 교회는, 인격적으로 아직 죄를 범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죄의 사함을 위한 세례를 주는 것이다.(293)
- 404 어떻게 아담의 죄가 그 후손들의 죄가 될 수 있는가- 모든 인류는 “마치 한 사람의 한 몸과 같이”(294) 아담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단일성’으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연관되듯이 아담의 죄와 연관된다. 그러나 원죄의 전달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이다. 아담이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받은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하여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계시를 통하여 알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에게 굴복함으로써 지은 죄는 개인의 죄이지만, 그 죄가 타락한 상태로 전달될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쳤다.(295) 이 죄는 인간 번식을 통하여, 곧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인간 본성의 전달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원죄를 유비적으로 ‘죄’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죄는 ‘범한’ 죄가 아니라 ‘짊어진’ 죄이며, 행위가 아니라 상태이다.
- 405 원죄는 비록 각자에게 고유한 것이기는 하지만,(296) 아담의 어떤 후손에게도 개인의 잘못이라는 성격을 가지지는 않는다.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은 잃었지만, 인간 본성이 온전히 타락한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이 그 본연의 힘에 손상을 입고 무지와 고통과 죽음의 세력에 휘둘리며 죄에 기우는 것이다(악으로 기우는 이 경향을 ‘탐욕’이라고 부른다). 세례는 그리스도 은총의 생명을 줌으로써 원죄를 없애고 인간을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지만, 약해지고 악으로 기우는 인간 본성에 미친 결과는 인간 안에 집요하게 남아서 영적인 싸움을 치르게 한다.
- 406 원죄의 전달에 관한 교회의 교리는 5세기 펠라지우스 이단에 반대하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사색에서 특히 자극을 받았고, 16세기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에 대항하여 세부적으로 확정되었다. 펠라지우스는 인간이 하느님 은총의 필연적인 도움 없이 자신의 자유 의지의 자연적 힘으로 윤리적으로 선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담의 죄의 영향을 단순히 나쁜 표양 정도로 축소시켰다. 이와는 반대로 프로테스탄트의 초기 개혁자들은, 인간은 원조의 죄로 근본적으로 타락했으며 그의 자유는 소멸되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인간이 저마다 물려받은 죄와 악으로 기우는 경향(탐욕)을 동일시하여, 이 경향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교회는 529년 제2차 오랑주 공의회와(297)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298) 특히 원죄에 관하여 계시된 내용의 의미를 밝혔다.
- 힘든 싸움
- 407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교리와 관련된 원죄 교리는 세상에서 인간의 상황과 행위를 분명히 식별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비록 인간이 자유롭다 해도 원조들의 죄로 악마는 인간에게 어떤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원죄는 “죽음의 지배력을 지닌 존재, 곧 ‘악마’의 권세에 예속하게 만들었다.”(299) 인간 본성이 손상되어 악으로 기울어진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교육, 정치, 사회,(300) 그리고 도덕 분야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 408 원죄와 인간의 모든 개인적인 죄의 결과들은, 요한 사도가 “세상의 죄”(요한 1,29)라고 표현하듯이 세상 전체를 죄스러운 처지에 빠지게 한다. 이 표현은 또한 인간들의 죄로 생겨난 공동체적 상황과 사회 구조들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의미한다.(301)
- 409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1요한 5,19)는(302) 비극적 상황에서 인간의 삶은 일종의 싸움이다.
- 암흑의 세력에 대한 힘든 투쟁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이 투쟁은 태초부터 시작되어 주님의 말씀대로 마지막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투쟁에 뛰어든 인간은 선을 고수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하느님의 도우시는 은총과 커다란 노력이 없으면 자기 자신 안에서 통일을 이룰 수 없다.(303)
- IV. “인간을 죽음의 세력 아래 버려두지 않으셨다”(감사 기도 제4양식)
- 410 인간이 타락한 뒤에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를 부르시어(304) 악을 이기고, 타락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는 것을 신비로운 방법으로 말씀하신다.(305) 창세기의 이 구절은 ‘구속자 메시아’에 대한 첫 예고, 곧 뱀과 여인 사이의 싸움과 이 싸움에서 마침내 이 여인의 후손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처음 알리는 것이어서 ‘원복음’(原福音)이라고 부른다.
- 411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 대목을 “새로운 아담”의(306) 예고라고 본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리 2,8) 아담의 불순종을 넘치게 보상한다.(307) 한편 많은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은 이 ‘원복음’에서 예고된 ‘여인’을 “새로운 하와”인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로 생각한다. 마리아는 최초로 그리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죄에 대한 승리의 은혜를 입은 분이다. 그분은 원죄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308) 지상 생애 동안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 어떤 죄도 범하지 않으셨다.(309)
- 412 그렇다면 어째서 하느님께서는 첫 인간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막지 않으셨던가- 대 레오 성인은 이렇게 답한다. “그리스도의 형언할 수 없는 은총은 마귀가 질투로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310) 그리고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도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죄를 지은 이후에도 더 높은 목적을 향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 하느님께서는 더 큰 선을 이루어 내시고자 악을 허락하신다. 이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고 말했으며, 부활 찬송(Exultet)은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하고 노래한다.”(311)
- 간추림
- 413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지혜 1,13; 2,24).
- 414 사탄 또는 악마와 모든 마귀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획에 봉사하기를 거부하여 타락한 천사들이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그들의 선택은 결정적인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들의 반역에 인간을 끌어들이고자 애쓴다.
- 415 “하느님께서 의롭게 창조하신 인간은 그러나 악의 유혹에 넘어가 역사의 시초부터 제 자유를 남용하여, 하느님께 반항하고 하느님을 떠나서 제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312)
- 416 첫 인간으로서 아담은 죄를 지음으로써, 자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하여 하느님께 받은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잃어버렸다.
- 417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첫 범죄로 후손들에게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손상된 인간 본성을 전해 주었다. 이 상실을 ‘원죄’라 한다.
- 418 원죄의 결과로 인간 본성은 그 힘이 약해져서, 무지와 고통과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죄로 기울게 되었다(이러한 경향을 ‘탐욕’이라 한다).
- 419 “그러므로 우리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따라, 원죄는 ‘모방이 아닌 번식으로’ 인간 본성과 함께 전달되며, ‘각자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13)
- 420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죄에 대한 승리는, 죄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준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 421 “그리스도인은 이 세계가 창조주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보존된다고 믿는다. 죄의 노예 상태에 떨어졌으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악의 권세를 쳐부수시고 해방시키신 이 세계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변혁되고 마침내 완성될 것이다.”(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