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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1 예수님께서는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습니다.……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에페 4,9-10).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심과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같은 조항에서 고백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파스카 안에서, 바로 죽음에서 생명이 솟아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샛별이여.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527)
  • 제1단락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셨다
  • 632 예수님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 15,20)고(528) 하는 신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이들의 거처에 머물러 계셨다는 사실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529) 이것은 사도적 설교가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신 사실에 부여한 첫째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겪으셨고, 그 영혼은 죽은 이들의 거처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곳에 묶여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구원자로서 그곳에 내려가신 것이다.(530)
  • 633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내려가신 죽은 이들의 거처를 성경은 저승이나 셔올(지옥)이라고 하는데,(531) 이곳에 있는 이들이 하느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532) 사실 악인이건 의인이건 구세주를 기다리는 모든 죽은 이의 경우가 그렇듯이,(533)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불쌍한 라자로의 비유에서 보여 주시듯이(534) 그들의 운명이 모두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 구해 내신 것은 아브라함의 품에서 자신들의 해방자를 기다리던 거룩한 영혼들이었다.”(535)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진 이들을 구하거나(536) 저주받은 지옥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537) 당신보다 먼저 간 의인들을 해방시키고자 저승에 가신 것이다.(538)
  • 634 “죽은 이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1베드 4,6).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심은 구원의 복음 선포의 충만한 완성이다. 이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의 궁극적 단계이며 시간 안에 압축된 단계이지만, 구원된 모든 사람이 속량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에 구원 사업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실제적인 의미에서 무한히 방대한 단계이다.
  • 635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나게”(요한 5,25) 하시고자 죽음의 심연으로 내려가셨다.(539) “생명의 영도자”이신(540)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다”(히브 2,14-15). 이제부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묵시 1,18),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을 것이다”(필리 2,10).
  • 오늘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습니다. 하나의 깊은 침묵이요 고독입니다. 임금님께서 주무시기에 깊은 침묵입니다. 하느님께서 육신을 지니고 잠드셨으며, 옛적부터 잠들어 있던 이들을 깨우러 가셨기에 땅은 떨며 말을 잃었습니다.……주님은 잃어버린 양인 원조 아담을 찾아가십니다. 주님은 죽음의 그늘 밑, 어두움 속에 앉아 있는 모든 이를 만나러 가고자 하십니다. 그들의 하느님이며 동시에 그들의 후손이신 그분은 아담과 함께 묶여 있는 하와를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자 찾아가십니다.……“나는 너의 하느님이지만 너를 위하여 너의 아들이 되었다.……잠자는 너는 잠에서 깨어나거라. 지옥의 사슬에 매여 있도록 너를 창조하지 않았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나오너라. 나는 죽은 이들의 ‘생명’이니라.”(541)
  • 간추림
  • 636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셨다.”는 표현으로써 신경은 예수님이 참으로 죽으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당신이 죽으시어 죽음과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히브 2,14) 악마를 멸망시키셨다는 것을 고백한다.
  • 637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적 위격과 결합된 영혼으로 죽은 이들의 거처로 내려가셨다. 그분은 당신보다 앞서 간 의인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셨다.
  • 제2단락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 638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사도 13,32-33).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신앙 진리의 정수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를 중심 진리로 믿고 실천했으며, 성전(聖傳)이 근본 진리로 전승하였고, 신약 성경의 기록으로 확립되어 십자가와 함께 파스카 신비의 핵심 부분으로 가르쳐 온 신앙 진리이다.
  • 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도다. 당신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죽은 이들에게 생명을 주셨도다.(542)
  • I. 역사적이며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
  • 639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는 신약 성경이 증언하듯이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들을 보여 주는 실제 사건이다. 서기 56년경에 이미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사도는 여기서, 다마스쿠스 성문 근처에서 개종한 뒤에 알게 된 부활에 대한 살아 있는 전승을 말하고 있다.(543)
  • 빈 무덤
  • 640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5-6). 파스카 사건의 테두리 안에서 발견하는 첫 번째 요소는 바로 빈 무덤이다.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의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시체가 무덤 안에 없다는 사실은 달리 설명될 수도 있다.(544) 그럼에도 빈 무덤은 모든 사람에게 핵심적 징표가 된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인정하는 첫걸음이었다. 먼저 거룩한 여인들의 경우가 그러했고(545) 다음에 베드로의 경우가 그러했다.(546)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요한 20,2) 빈 무덤 안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요한 20,6) 발견하고, “보고 믿었다.”고(547) 한다. 이는 그가 빈 무덤의 상태를 보고(548)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은 사람이 한 일일 수 없으며, 라자로의 경우와는 달리(549) 예수님이 단순히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 부활하신 분의 발현
  • 641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거룩한 여인들이 처음으로 부활하신 분을 만났다.(550) 그들은 성금요일 저녁에 안식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서둘러 매장했던(551)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마저 발라 드리려고 무덤에 갔다.(55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도들에게 알린 첫 사람은 여인들이었다.(553) 그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는데, 먼저 베드로에게 그리고 이어서 열두 사도들에게 나타나신다.(554) 베드로는 형제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도록 부름을 받았기에(555) 그들보다 먼저 부활하신 그분을 보았고, 그의 증언을 듣자 공동체는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루카 24,34)고 외친다.
  • 642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일어난 모든 일은, 모든 사도를 ─ 특히 베드로를 ─ 부활 날 아침에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건설에 참여시킨다. 그들은 부활하신 분의 증인들로서 그분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다. 초기 신자 공동체의 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던, 그리고 대부분이 아직 그들 가운데 살고 있던 사람들의 직접적인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은(556) 우선 베드로와 열두 사도였으나, 그들뿐이 아니었다. 바오로는 야고보와 모든 사도 외에도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557)
  • 643 이런 증언들을 앞에 두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것으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며, 이를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제자들의 신앙이, 그들의 스승이 미리 알려 주셨듯이, 스승의 수난과 십자가 위의 죽음이라는 가혹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여러 사실에서 분명해진다.(558) 수난으로 받은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제자들은(적어도 그들 가운데 몇몇은) 부활 소식을 쉽게 믿지 못했다. 복음서들은 우리에게 신비로운 열광에 넘치는 공동체를 보여 주기는커녕 기가 꺾이고(“침통한 표정으로” 루카 24,17) 두려워하는(559)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온 거룩한 여인들의 말을 믿지 못했으며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루카 24,11).(560)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마르 16,14).
  • 644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 앞에서도 여전히 의심할 정도로,(561) 제자들에게는 부활이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들은 유령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562)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였다”(루카 24,41). 토마스도 같은 의심의 시험을 겪게 된다.(563) 그리고 마태오 사도가 전하는 갈릴래아의 마지막 발현 때에도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7). 이런 이유로, 부활이 사도들의 신앙의 (또는 경솔한 신앙의) 산물이었다는 가설은 신빙성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다.
  • 그리스도의 부활한 인성
  • 64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만지게 하시고,(564) 함께 식사를 하심으로써(565)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끄시며,(566)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나타나 부활하신 그 육신이 수난의 흔적을 아직 지니고 있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육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567) 한편 이 참되고 실제적인 육신은 영광스러운 육신의 새로운 특성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육신은 이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나타날 수가 있다.(568) 왜냐하면 그분의 인성은 더 이상 지상에 매여 있지 않고 다만 성부의 신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569) 이런 이유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정원지기의 모습이나(570) 또는 제자들에게 친숙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마르 16,12) 등 얼마든지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는 분명 그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571)
  • 646 그리스도의 부활은 당신이 부활 전에 야이로의 딸, 나인의 젊은이, 라자로 등을 다시 살리신 경우처럼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적적인 사건들이었지만 이 기적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으로 지상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을 뿐이었다. 때가 되면 그들은 다시 죽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신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서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진다. 예수님의 몸은 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하늘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572)
  • 초월적 사건인 부활
  • 647 부활 성야의 ‘부활 찬송’(Exultet)은 “오, 참으로 복된 밤! 너 홀로 때와 시를 알고 있었으니, 너 홀로 죽은 이들의 세계에서 살아 나오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았도다.”(573) 하고 노래한다. 사실 부활 사건 자체를 눈으로 목격한 증인은 아무도 없었고 어느 복음사가도 그것을 묘사하지 않았다. 누구도 부활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말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다른 생명으로 넘어간다고 하는 부활 사건의 핵심은 감각 기관으로 지각할 수 없는 것이다. 빈 무덤이라는 표징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들이 만났다는 사실로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확인되지만, 역사를 초월하고 넘어선다는 면에서 부활은 여전히 신앙의 신비의 핵심에 머물러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시고(574) 다만 당신 제자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이다”(사도 13,31).
  • II. 부활 - 거룩한 삼위의 업적
  • 648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느님께서 피조물과 역사 안에 초월적으로 개입하셨다는 점에서 신앙의 대상이다. 부활 안에서 삼위 하느님께서는 동시에 함께 일하시며 또 각 위의 독자성을 드러내기도 하신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당신 아들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사도 2,24) 그로써 그 인성을 ─ 그 육신과 함께 ─ 삼위일체 안으로 완전히 이끌어 들이신 성부의 권능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결정적으로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로마 1,4) 계시되신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은 인성을 되살리시고, 그분을 주님의 영광스러운 상태로 부르신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난다고 강조한다.(575)
  • 649 성자께서는 당신의 신적 능력으로 부활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었다가 부활할(동사 ‘부활하다’의 능동태(576) )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요한 10,17-18).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1테살 4,14).
  • 650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신적 위격에서부터 부활을 관상한다. 이 위격은 죽음으로 분리된 그리스도의 영혼과 육신에 결합된 채로 남아 있었다. “인간의 이 두 구성체 안에 남아 있는 신성의 단일성으로 이 둘은 다시 결합됩니다. 이처럼 두 구성체의 결합이 분리됨으로써 죽음이 오고 분리된 이 둘의 결합으로 부활이 일어납니다.”(577)
  • III. 부활의 의미와 구원 효과
  • 651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부활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것들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던 당신의 신적 권위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부활로써 보여 주셨으므로, 비록 인간의 정신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 모든 진리는 정당화된다.
  • 652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의 약속과,(578) 예수님께서 사시는 동안 하신 약속의(579) 실현이다. “성경 말씀대로”라는(580) 표현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 예언들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점을 가리킨다.
  • 653 예수님의 신성의 진실성은 그분의 부활로 확인되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Ego eimi)을 깨달을 것이다”(요한 8,28).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께서 바로 “나다”는 것, 곧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느님 자신이시라는 것을 증명했다.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천명한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사도 13,32-33).(581)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느님 아들의 강생의 신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활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강생의 완성이다.
  • 654 파스카의 신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시고,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다시 얻게 해 주는 의화이다.(582)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의화는 죄로 생겨난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은총에 대한 새로운 참여이다.(583)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가서 내 형제들에게 전하여라.”(마태 28,10)(584) 하고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셨듯이, 부활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양자 입양을 실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이다. 이 양자 입양은 그분의 부활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외아들의 생명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 655 끝으로 그리스도의 부활 ─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 ─ 은 장차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0-22). 이 완성을 기다리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의 마음 안에 사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히브 6,5), 그들의 삶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려 간다.(585) 이는 그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2코린 5,15).
  • 간추림
  • 656 부활 신앙은 부활하신 분을 실제로 만난 제자들이 역사적으로 증언한 사건과,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간다는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사건을 그 대상으로 한다.
  • 657 빈 무덤과 흩어진 수의는 그리스도의 육신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죽음과 부패의 사슬을 벗어났음을 뜻한다. 이것들은 제자들을 부활하신 분과 만나도록 준비시킨다.
  • 658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한 첫 사람”(콜로 1,18)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우리 영혼을 의화시키심으로써,(586) 장차에는 우리 육신을 다시 살리심으로써(587) 우리 자신의 부활의 근원이 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