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2 장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 제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 제2단락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 I. 역사적이며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639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는 신약 성경이 증언하듯이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들을 보여 주는 실제 사건이다. 서기 56년경에 이미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사도는 여기서, 다마스쿠스 성문 근처에서 개종한 뒤에 알게 된 부활에 대한 살아 있는 전승을 말하고 있다.(543)
- 빈 무덤
- 640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5-6). 파스카 사건의 테두리 안에서 발견하는 첫 번째 요소는 바로 빈 무덤이다.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의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시체가 무덤 안에 없다는 사실은 달리 설명될 수도 있다.(544) 그럼에도 빈 무덤은 모든 사람에게 핵심적 징표가 된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인정하는 첫걸음이었다. 먼저 거룩한 여인들의 경우가 그러했고(545) 다음에 베드로의 경우가 그러했다.(546)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요한 20,2) 빈 무덤 안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요한 20,6) 발견하고, “보고 믿었다.”고(547) 한다. 이는 그가 빈 무덤의 상태를 보고(548)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은 사람이 한 일일 수 없으며, 라자로의 경우와는 달리(549) 예수님이 단순히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 부활하신 분의 발현
- 641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거룩한 여인들이 처음으로 부활하신 분을 만났다.(550) 그들은 성금요일 저녁에 안식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서둘러 매장했던(551)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마저 발라 드리려고 무덤에 갔다.(55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도들에게 알린 첫 사람은 여인들이었다.(553) 그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는데, 먼저 베드로에게 그리고 이어서 열두 사도들에게 나타나신다.(554) 베드로는 형제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도록 부름을 받았기에(555) 그들보다 먼저 부활하신 그분을 보았고, 그의 증언을 듣자 공동체는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루카 24,34)고 외친다.
- 642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일어난 모든 일은, 모든 사도를 ─ 특히 베드로를 ─ 부활 날 아침에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건설에 참여시킨다. 그들은 부활하신 분의 증인들로서 그분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다. 초기 신자 공동체의 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던, 그리고 대부분이 아직 그들 가운데 살고 있던 사람들의 직접적인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은(556) 우선 베드로와 열두 사도였으나, 그들뿐이 아니었다. 바오로는 야고보와 모든 사도 외에도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557)
- 643 이런 증언들을 앞에 두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물리적인 차원을 벗어난 어떤 것으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며, 이를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제자들의 신앙이, 그들의 스승이 미리 알려 주셨듯이, 스승의 수난과 십자가 위의 죽음이라는 가혹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여러 사실에서 분명해진다.(558) 수난으로 받은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제자들은(적어도 그들 가운데 몇몇은) 부활 소식을 쉽게 믿지 못했다. 복음서들은 우리에게 신비로운 열광에 넘치는 공동체를 보여 주기는커녕 기가 꺾이고(“침통한 표정으로” 루카 24,17) 두려워하는(559)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온 거룩한 여인들의 말을 믿지 못했으며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루카 24,11).(560)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마르 16,14).
- 644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 앞에서도 여전히 의심할 정도로,(561) 제자들에게는 부활이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들은 유령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562)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였다”(루카 24,41). 토마스도 같은 의심의 시험을 겪게 된다.(563) 그리고 마태오 사도가 전하는 갈릴래아의 마지막 발현 때에도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7). 이런 이유로, 부활이 사도들의 신앙의 (또는 경솔한 신앙의) 산물이었다는 가설은 신빙성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다.
- 그리스도의 부활한 인성
- 64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만지게 하시고,(564) 함께 식사를 하심으로써(565)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끄시며,(566)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나타나 부활하신 그 육신이 수난의 흔적을 아직 지니고 있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육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567) 한편 이 참되고 실제적인 육신은 영광스러운 육신의 새로운 특성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육신은 이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나타날 수가 있다.(568) 왜냐하면 그분의 인성은 더 이상 지상에 매여 있지 않고 다만 성부의 신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569) 이런 이유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정원지기의 모습이나(570) 또는 제자들에게 친숙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마르 16,12) 등 얼마든지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는 분명 그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571)
- 646 그리스도의 부활은 당신이 부활 전에 야이로의 딸, 나인의 젊은이, 라자로 등을 다시 살리신 경우처럼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적적인 사건들이었지만 이 기적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으로 지상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을 뿐이었다. 때가 되면 그들은 다시 죽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신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서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진다. 예수님의 몸은 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하늘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572)
- 초월적 사건인 부활
- 647 부활 성야의 ‘부활 찬송’(Exultet)은 “오, 참으로 복된 밤! 너 홀로 때와 시를 알고 있었으니, 너 홀로 죽은 이들의 세계에서 살아 나오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았도다.”(573) 하고 노래한다. 사실 부활 사건 자체를 눈으로 목격한 증인은 아무도 없었고 어느 복음사가도 그것을 묘사하지 않았다. 누구도 부활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말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다른 생명으로 넘어간다고 하는 부활 사건의 핵심은 감각 기관으로 지각할 수 없는 것이다. 빈 무덤이라는 표징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들이 만났다는 사실로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확인되지만, 역사를 초월하고 넘어선다는 면에서 부활은 여전히 신앙의 신비의 핵심에 머물러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시고(574) 다만 당신 제자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이다”(사도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