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인간의 소명: 성령 안의 삶
- 제 2 부 십 계 명
- 제 2 장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제7절 일곱째 계명
- VI.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제 2 부 십 계 명
- 2443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배척하신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2).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해 준 것으로써 선택된 사람들을 알아보실 것이다.(193)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마태 11,5)(194) 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표징이 된다.
- 2444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사랑은……변함없는 전통에 속한다.”(195) 이 사랑은 참행복의 복음,(196) 예수님의 가난,(197)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배려하신 예수님을(198) 본받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할 의무를(199) 지우는 동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사랑은 물질적 가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다양한 형태의 가난에도 미치는 것이다.(200)
- 2445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재물에 지나친 애착을 갖거나 재물을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 그대들은 의인을 단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야고 5,1-6).
- 2446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를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201) “먼저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정의에 따라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마치 사랑의 선물처럼 베풀어서는 안 된다.”(202)
-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203)
- 2447 자선 활동은 육체적으로나 영신적으로 궁핍한 이웃을 돕는 사랑의 행위이다.(204) 용서해 주고 참을성 있게 견디어 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가르치고, 충고하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행위는 영적인 자선 활동이다. 육체적인 자선 활동은 특히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잃은 사람을 묵게 해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며, 병자와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보고, 죽은 이들을 장사 지내는 것이다.(205) 이러한 행위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206) 형제애의 주요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하다.(207)
-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5-16)(208)
- 2448 “물질적 궁핍, 부당한 억압, 육체적 정신적 질병, 끝으로 죽음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인간의 비참은 원죄 이후 인간이 놓이게 된, 타고난 나약한 처지와 구원의 필요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표지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은 구세주 그리스도의 연민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이 비참을 짊어지시고,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 40.45)과 같아지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에 짓눌리는 사람들은 교회의 우선적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교회는 그 초기부터 많은 지체들의 과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하고, 해방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는 갖가지 자선 사업을 통해서 이 일을 해 왔다. 자선 사업은 지금도 여전히 어느 곳에서나 필수적인 일이다.”(209)
- 2449 구약 시대부터 있었던 각종 법적 수단들(빚을 탕감해 주는 해, 이자와 담보의 금지, 십일조의 의무, 하루 벌이 일꾼의 품삯을 매일 지불하는 것, 남은 포도와 이삭을 주울 권리 등)은 신명기의 권고에 부응하는 것들이다. “너희 땅에서 가난한 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 땅에 있는 궁핍하고 가난한 동족에게 너희 손을 활짝 펴 주라고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15,1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당신 것으로 삼으신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8). 예수님께서 이 말씀으로써 “힘없는 자를 돈으로 사들이고, 빈곤한 자를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들이자. 지스러기 밀도 내다 팔자.”(아모 8,6)라고 한 옛 예언자들의 격렬한 말씀을 폐기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당신의 형제들인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아보라고 우리에게 촉구하시는 것이다.(210)
-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집에 거두어들이는 것을 어머니가 나무라던 날, 리마의 로사 성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에게 시중들 때, 우리는 예수님께 시중드는 것이어요. 우리는 이웃을 통해서 예수님께 시중드는 것이므로, 싫증내지 말고 우리 이웃을 도와야 해요.”(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