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 제2부 주님의 기도 “우리 아버지”
- 제 1 장 기도에 대한 계시
- 제3절 교회 시대의 기도
제 1 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 2623 오순절 날에, “한자리에 모여”(사도 2,1)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며”(사도 1,14) 그분을 기다리던 제자들 위에 약속된 성령께서 내리셨다. 교회를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는(92)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가 기도 생활로 성장하게 하신다.
- 2624 예루살렘의 첫 공동체 안에서, 믿는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이는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곧 사도들의 신앙에 근거를 두고, 사랑으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는 교회의 기도는 성체성사로써 양육된다.
- 2625 이 기도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신자들이 성경에서 듣고 읽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신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도들, 특별히 시편의 기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것을 근거로 하여, 이 시편들을 현재 상황에 따라 새롭게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 바친다.(93) 기도하는 교회에게 그리스도를 상기시켜 주시는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교회 생활과 성사와 교회의 사명 수행에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신비를 표현하게 될 새로운 기도문들이 생겨나게 하신다. 이러한 기도문들은 위대한 전례적 영적 전승들 안에서 발전되어 갈 것이다. 신약 성경 곧 사도들의 저서와 정경(正經) 안에 들어 있는 기도문들은 그리스도교 기도의 규범이 될 것이다.
- I. 찬미와 흠숭
- 2626 찬미는 그리스도인 기도의 기본 움직임을 드러낸다. 찬미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다. 찬미 안에서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과 이 선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서로 대화하며 결합한다. 찬미 기도는 하느님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곧, 하느님께서 강복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 2627 이 움직임은 두 가지 기본 형태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올라가는 움직임 곧 찬미이다(우리에게 강복하셨기에 우리는 성부를 찬미한다).(94)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내려오시는 성령의 은혜를 간청하는 것이다(성부께서는 우리에게 강복하신다).(95)
- 2628 흠숭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임을 깨달은 인간이 취하는 기본 자세이다. 흠숭은 우리를 지어 내신 주님의 위대함과,(96) 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시는 구세주의 전능을 드높이는 것이다. 흠숭은 “영광의 임금님”(97) 앞에서 인간이 마음을 쏟아 꿇어 엎드리는 것이며, “언제나 더욱 위대하신”(98) 하느님 면전에서 존경 어린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시며 최고의 사랑을 받으셔야 할 하느님에 대한 흠숭은 우리를 겸손되게 하고, 우리의 간청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준다.
- II. 청원 기도
- 2629 탄원(supplicatio)이라는 낱말은 신약 성경에서 그 의미가 풍부하게 나타난다. 곧, 청원하다, 애원하다, 끈질기게 청하다, 호소하다, 부르짖다, 울부짖다 등의 의미와 “기도를 통한 줄다리기”라는(99) 의미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가장 일상적인 형태는 청원이며, 이는 청원이 가장 자발적이기 때문이다. 청원 기도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표현한다. 피조물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원(起源)도 아니고, 우리가 당하는 역경을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주인도 아니며, 우리의 궁극 목적도 아니다. 도리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아버지께 등을 돌린 죄인임을 알고 있다. 청원은 이미 아버지께로 돌아섬을 의미한다.
- 2630 신약 성경에는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비탄의 기도가 거의 없다. 우리가 비록 아직은 기다림 중에 있고 날마다 회개해야 하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청원은 희망으로 지탱된다. 비탄보다 훨씬 더 깊은 데서 솟아나는 그리스도교 청원을 바오로 사도는 탄식이라고 부른다. 이 탄식은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는”(로마 8,22) 모든 피조물의 탄식이기도 하며, 우리의 탄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3-24). 끝으로, 이 탄식은 바로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시는”(로마 8,26) 성령의 탄식이다.
- 2631 용서를 청함은 청원 기도의 첫 단계이다(“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세리, 루카 18,13). 용서를 청함은 올바르고 순수한 기도의 전제 조건이다. 겸손하고 신뢰심을 가져야만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고 타인들과도 친교를 나누어, 다시 빛 가운데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100)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된다”(1요한 3,22). 용서를 청함은, 개인이 드리는 기도에서 그러하듯이, 성찬 전례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행동이다.
- 2632 그리스도인의 청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가오고 있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고 찾는 것에 집중된다.(101) 청원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청하고, 다음에는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고 그 나라의 도래에 협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청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맡으신 임무에 대하여 그와 같이 협력하는 것은 이제 교회의 사명으로서, 사도 공동체가 이 협력 문제를 기도의 주제로 삼고 있다.(102) 참으로 출중한 사도인 바오로 사도의 기도는, 모든 교회에 관한 숭고한 염려가 그리스도인 기도의 중요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103)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 2633 이렇게 하여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 사랑에 참여하게 될 때,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이 청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을 속량하려고 모든 것을 떠맡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청원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104) 이러한 확신에서 야고보(105) 와 바오로(106) 사도는 언제나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한다.
- III. 전 구
- 2634 전구(轉求)는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기도와 매우 흡사하게 해 주는 청원 기도의 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전구자이시다.(107)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히브 7,25). 성령께서도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27).
- 2635 다른 사람을 위하여 청원하는 전구는 아브라함 이래로,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일치된 인간 마음의 특징이다. 교회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인의 전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며, 성인들의 통공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구에서, 기도하는 이는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며”(필리 2,4),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위해서까지 기도한다.(108)
- 2636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이런 형태의 나눔을 철저히 실천하였다.(109)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기도하는 공동체들을 그의 복음 선포 직무에 참여시키면서도,(110) 그들을 위하여 전구한다.(111) 그리스도인의 전구에는 한계가 없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1티모 2,1),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112)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113) 간구한다.
- IV. 감사 기도
- 2637 감사 행위는 교회의 기도를 특징짓는다. 교회는 감사의 제사인 성찬례를 거행하여, 자신의 정체를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본질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구원 사업을 통해서 창조된 만물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 그것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께 돌아서게 하신다. 지체가 드리는 감사 행위는 그 머리의 감사 행위에 참여한다.
- 2638 모든 사건과 모든 필요는, 청원 기도의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감사 기도의 동기가 될 수 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는 흔히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끝맺으며, 또한 감사의 대목에서는 언제나 주 예수님이 언급되고 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콜로 4,2).
- V. 찬양 기도
- 2639 찬양은 하느님께서 진정 하느님이심을 한결 더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기도의 형태이다. 찬양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기리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찬양은, 영광 중에 하느님을 뵙기 전에, 믿음 안에서 그분을 사랑하는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누리는 참행복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 찬양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과 일치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시며,(114) 그 외아들을 증언하신다. 그 외아들 안에서 우리가 양자로 받아들여지고, 그 외아들을 통해서 우리가 성부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찬양은 기도의 다른 형태들을 통합하여, 만물의 근원이시며 목표이신 그분께 인도한다.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1코린 8,6).
- 2640 루카 성인은 그의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 앞에서 터져 나온 감탄과 찬양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사도행전에 기술되어 있는 성령의 행적에 관한 감탄과 찬양에 대해서도 또한 강조한다. 그것은 예루살렘 공동체의 생활,(115)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쳐 준 일,(116) 그것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군중들,(117)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는”(사도 13,48) 피시디아의 이방인들의 경우이다.
- 2641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에페 5,19).(118) 영감을 받은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그러했듯이, 초기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도 시편을 새로운 각도에서 읽고, 시편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노래하였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은총을 받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통해 실현하신 놀라운 사건, 곧 그분의 강생, 죽음을 정복한 그분의 죽음, 그분의 부활,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신 그분의 승천 등을 주제로 하여 찬미가와 송가를 지었다.(119) ‘경이로운’ 이 구원 경륜 전체에 대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인 영광송이 울려 퍼졌다.(120)
- 2642 “곧 일어나게 될 일”에 대한 계시인 요한 묵시록은 천상 전례의 찬미가뿐(121) 아니라, 또한 “증인들”(순교자들)의(122) 전구로 점철되어 있다. 예언자들과 성인들, 예수님을 증언하려고 세상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이,(123) 큰 고난을 거쳐 우리보다 먼저 하늘 나라에 간 사람들의 큰 무리가, 옥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 양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124) 그들과 일치하여, 지상의 교회 또한 신앙과 시련 속에서 그와 같은 찬미가들을 부른다. 신앙은 청원과 전구를 통하여, 절망 속에서도 희망하고, “모든 완전한 은사를 내려 주시는 빛의 아버지”께(125) 감사를 드린다. 이처럼 신앙은 순수한 찬미이다.
- 2643 성찬례는 모든 형태의 기도를 포함하며 드러낸다.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하느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정결한 제물”로 봉헌하는 것이다.(126) 동방과 서방의 전통에 따르면, 성찬례는 ‘찬미의 제사’이다.
- 간추림
- 2644 교회를 가르치시고 또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되새기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변하지 않는 기본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그 표현에서 새로운, 찬미, 청원, 전구, 감사, 찬양의 기도 등이 생겨나게 하심으로써 교회에게 기도 생활도 가르치신다.
- 2645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내려 주셨기에, 인간은 그 보답으로 모든 복의 원천이신 분께 찬미를 드릴 수 있다.
- 2646 청원 기도의 목표는 용서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추구,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을 청하는 것이다.
- 2647 전구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청원하는 것이다. 전구에는 한계가 없으며, 원수들을 위해서도 전구한다.
- 2648 모든 기쁨과 모든 슬픔, 모든 사건과 모든 필요가 다 감사를 드리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으니, 그리스도의 감사 기도에 참여하게 해 주는 이 감사 행위는 전 생애에 걸쳐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8).
- 2649 이해관계를 완전히 초월한 찬양 기도는 하느님께 향한다. 찬양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을 기리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