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 제2부 주님의 기도 “우리 아버지”
- 제 3 장 기도 생활
- 제1절 기도의 형태
제 1 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 I. 소리 기도
- 2700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기도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나 또는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 중에 말씀을 드리는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열성에 달린 것입니다.”(2)
- 2701 소리 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스승이 침묵 중에 하시는 기도에 마음이 끌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리 내어 하는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의 전례 기도만 드리신 것이 아니다. 복음서들은, 환희에 차서 성부를 찬양하신 것을 비롯해서,(3) 겟세마니에서 비탄에 젖으시기까지,(4) 개인 기도를 소리 높여 드리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 2702 내적 기도에 감각을 결합하려는 욕구는, 우리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의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의 청원에 가능한 모든 힘을 부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온몸으로 기도해야 한다.
- 2703 이러한 욕구는 하느님의 요구에도 부합한다. 하느님께서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곧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기도에 몸까지 결합시키는 외적 표현도 원하신다. 왜냐하면 외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완전한 찬미를 이루기 때문이다.
- 2704 소리 기도는 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일반 대중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내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소리 기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기도는 “우리가 말씀드리는” 그분을 의식하면 할수록, 내적인 것이 된다.(5) 이리하여 소리 기도는 관상 기도의 최초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 II. 묵상
- 2705 묵상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탐색이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사람의 정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여기에는 어려운 주의력 집중이 요구된다. 그래서 대개는 어떤 책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리스도인이 사용할 수 있는 그러한 책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경, 그 중에서도 특히 복음서, 성화상, 그 날이나 시기의 전례문, 영성 교부들의 저서, 영성에 관한 저술들, 창조와 역사라는 위대한 책, 곧 하느님의 ‘오늘’이 펼쳐지는 지면이다.
- 2706 우리가 읽은 것에 대해 묵상하면, 그 내용을 자기 자신에 비추어서 생각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여기서 다른 한 권의 책, 삶이라는 책이 펼쳐진다. 생각에서 현실로 옮겨지는 것이다. 겸손과 신앙의 정도에 따라, 우리는 묵상 중에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빛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진리를 실천하느냐가 문제이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 2707 영성의 대가들이 다양한 만큼이나 묵상의 방법도 다양하다. 그리스도인은 정기적으로 묵상하기를 원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처음 세 가지 종류의 땅과 비슷하게 된다.(6) 그러나 방법이란 단지 길잡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를 위한 유일한 길, 곧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다.
- 2708 묵상에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과 의욕이 모두 동원된다. 이러한 동원은 신앙의 확신을 심화하고, 마음의 회개를 불러일으키며,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나 묵주 기도에서처럼, 특히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에 더 마음을 쓴다. 이와 같은 성찰 기도의 형태는 큰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과 결합하기 위하여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
- III. 관상 기도
- 2709 관상 기도란 무엇인가-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답한다. “마음으로 하는 관상 기도란, 제 생각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7)
- 관상 기도는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아가 1,(7) 를(8) 찾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고, 또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에 대한 소망이 언제나 사랑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순수한 신앙으로 그분을 찾으니, 이 신앙은 우리를 그분에게서 태어나게 하고, 그분 안에서 살게 한다. 관상 기도 중에도 묵상을 할 수는 있지만 우리 시선은 언제나 주님께 고정되어 있다.
- 2710 관상 기도를 하는 때와 시간을 선택하는 일은 내밀한 마음을 드러내는 결연한 의지에 달려 있다. 관상 기도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하는 기도가 아니다. 주님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만남에 어떠한 시련이 따르고 아무리 마음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더라도, 도중에 주님에게서 그 시간을 다시 빼앗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늘 관상 기도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건강이나 일이나 정서라는 조건들과 관계없이 언제나 관상 기도에 들어갈 수는 있다. 마음은 가난과 신앙 안에서 주님을 찾고 만나는 장소가 된다.
- 2711 관상 기도에 들어가는 일은 성찬 전례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곧, 마음을 ‘모으고’, 성령께서 움직여 주시도록 우리의 전 존재를 집중시키며,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거처인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우리가 머물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현존을 깊이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려, 정화되고 변화되어야 할 제물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겨 드리는 것이다.
- 2712 관상 기도는 하느님 자녀의 기도이며,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하고 더욱 사랑하여 그 사랑에 응답하기를 바라는 용서받은 죄인의 기도이다.(9)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우리의 사랑 역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것임을 우리는 안다.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기 때문이다. 관상 기도는, 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더욱 깊이 일치함으로써, 사랑하시는 성부의 뜻에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으로 승복하는 것이다.
- 2713 이처럼 관상 기도는 기도의 신비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관상 기도는 선물이며 은총이다. 이 은총은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관상 기도를 통해서,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계약의 관계가 맺어진다.(10) 관상 기도는 성삼위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을 ‘당신과 닮게’ 하시는 친교이다.
- 2714 관상 기도를 하는 시간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도 가장 알찬 시간이다. 관상 기도 안에서 성부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신다. 이로써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머무르시게 되고, 우리는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기초로 삼게 될 것이다.(11)
- 2715 관상 기도를 하는 것은 신앙의 눈길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이것은 비안네 성인이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있을 때 감실 앞에서 기도하던 한 농부가 한 말이다.(12) 예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자아’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눈길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시선의 빛은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준다. 그분의 진리와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에 비추어, 우리는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관상은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향해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리하여 관상 기도를 하는 사람은 ‘주님에 대한 내적 지식’을 배워 그분을 더욱 사랑하고 따르게 된다.(13)
- 2716 관상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하는 일은 결코 수동적인 일이 아니라, 신앙에 따라서 순명하는 것이요, 종으로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며, 어린이가 부모를 사랑하여 따르는 것과 같다. 이런 경청은 종이 되신 성자의 “예.”(Amen)라는 응답과, 겸손한 여종의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응답에 동참하는 것이다.
- 2717 관상 기도는 침묵이다. 곧 “다가올 세상의 상징”,(14) 또는 “말 없는 사랑”(15) 처럼, 침묵 속에서 하는 기도이다. 관상 기도 중에 하는 말은 장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와 같다. ‘외적인’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이 침묵 중에 성부께서는, 강생하시고, 고통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자녀가 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게 하신다.
- 2718 관상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기도와 합쳐진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교회가 성찬례에서 기념하는데, 성령께서는 우리가 관상 기도 중에 그 신비를 다시 체험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내게 하신다.
- 2719 신앙의 어둔 밤에 머물기를 동의할 정도에 이르면, 관상 기도는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기도가 된다. 부활의 새벽은 고뇌와 무덤의 밤을 통과한다. (‘연약한 육신’이 아닌) 예수님의 성령께서, 관상 기도 중에 우리가 ‘예수님의 시간’ 가운데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난의 사흘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주신다. 관상 기도에는 “그분과 함께 한 시간을 깨어 있을 것에”(16) 동의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 간추림
- 2720 교회는 매일 기도, 성무일도, 주일의 성찬례, 전례주년에 따른 축일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기도하라고 신자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 2721 그리스도교 전통은 기도 생활의 세 가지 중요한 형태, 곧 소리 기도, 묵상 기도, 관상 기도를 인정해 왔다. 이 세 기도 형태의 공통점은 마음을 가다듬는 데 있다.
- 2722 몸과 정신이 결합된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소리 기도는, 당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시고 또한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몸을 마음의 내적인 기도에 일치하게 한다.
- 2723 묵상 기도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 의욕을 동원하는 탐색적인 기도이다. 묵상의 목적은 우리네 삶의 현실에 비추어 고찰한 주제를 신앙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 2724 관상 기도는 기도의 신비를 단순하게 나타내는 기도이다. 관상 기도는 예수님께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없이 우리 사랑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관상 기도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기도와 합쳐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