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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09 관상 기도란 무엇인가-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답한다. “마음으로 하는 관상 기도란, 제 생각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7)
  • 관상 기도는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아가 1,(7) (8) 찾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고, 또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에 대한 소망이 언제나 사랑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순수한 신앙으로 그분을 찾으니, 이 신앙은 우리를 그분에게서 태어나게 하고, 그분 안에서 살게 한다. 관상 기도 중에도 묵상을 할 수는 있지만 우리 시선은 언제나 주님께 고정되어 있다.
  • 2710 관상 기도를 하는 때와 시간을 선택하는 일은 내밀한 마음을 드러내는 결연한 의지에 달려 있다. 관상 기도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하는 기도가 아니다. 주님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만남에 어떠한 시련이 따르고 아무리 마음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더라도, 도중에 주님에게서 그 시간을 다시 빼앗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늘 관상 기도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건강이나 일이나 정서라는 조건들과 관계없이 언제나 관상 기도에 들어갈 수는 있다. 마음은 가난과 신앙 안에서 주님을 찾고 만나는 장소가 된다.
  • 2711 관상 기도에 들어가는 일은 성찬 전례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곧, 마음을 ‘모으고’, 성령께서 움직여 주시도록 우리의 전 존재를 집중시키며,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거처인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우리가 머물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현존을 깊이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려, 정화되고 변화되어야 할 제물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겨 드리는 것이다.
  • 2712 관상 기도는 하느님 자녀의 기도이며,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하고 더욱 사랑하여 그 사랑에 응답하기를 바라는 용서받은 죄인의 기도이다.(9)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우리의 사랑 역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것임을 우리는 안다.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기 때문이다. 관상 기도는, 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더욱 깊이 일치함으로써, 사랑하시는 성부의 뜻에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으로 승복하는 것이다.
  • 2713 이처럼 관상 기도는 기도의 신비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관상 기도는 선물이며 은총이다. 이 은총은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관상 기도를 통해서,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계약의 관계가 맺어진다.(10) 관상 기도는 성삼위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을 ‘당신과 닮게’ 하시는 친교이다.
  • 2714 관상 기도를 하는 시간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도 가장 알찬 시간이다. 관상 기도 안에서 성부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신다. 이로써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머무르시게 되고, 우리는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기초로 삼게 될 것이다.(11)
  • 2715 관상 기도를 하는 것은 신앙의 눈길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이것은 비안네 성인이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있을 때 감실 앞에서 기도하던 한 농부가 한 말이다.(12) 예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자아’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눈길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시선의 빛은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준다. 그분의 진리와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에 비추어, 우리는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관상은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향해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리하여 관상 기도를 하는 사람은 ‘주님에 대한 내적 지식’을 배워 그분을 더욱 사랑하고 따르게 된다.(13)
  • 2716 관상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하는 일은 결코 수동적인 일이 아니라, 신앙에 따라서 순명하는 것이요, 종으로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며, 어린이가 부모를 사랑하여 따르는 것과 같다. 이런 경청은 종이 되신 성자의 “예.”(Amen)라는 응답과, 겸손한 여종의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응답에 동참하는 것이다.
  • 2717 관상 기도는 침묵이다. 곧 “다가올 세상의 상징”,(14) 또는 “말 없는 사랑”(15) 처럼, 침묵 속에서 하는 기도이다. 관상 기도 중에 하는 말은 장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와 같다. ‘외적인’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이 침묵 중에 성부께서는, 강생하시고, 고통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자녀가 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게 하신다.
  • 2718 관상 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기도와 합쳐진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교회가 성찬례에서 기념하는데, 성령께서는 우리가 관상 기도 중에 그 신비를 다시 체험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내게 하신다.
  • 2719 신앙의 어둔 밤에 머물기를 동의할 정도에 이르면, 관상 기도는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기도가 된다. 부활의 새벽은 고뇌와 무덤의 밤을 통과한다. (‘연약한 육신’이 아닌) 예수님의 성령께서, 관상 기도 중에 우리가 ‘예수님의 시간’ 가운데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난의 사흘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주신다. 관상 기도에는 “그분과 함께 한 시간을 깨어 있을 것에”(16) 동의하는 일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