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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창세기, 이게 궁금해요: 이름을 바꾼다는 게 무슨 의미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528 추천수0

[창세기, 이게 궁금해요] 이름을 바꾼다는 게 무슨 의미죠?

 

 

* 창세 17장을 읽으며 세례 때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때 새 이름을 받으며 “이제 나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나네요. 창세기를 읽으면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오래된 관습인지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아브람과 아브라함, 서로 비슷한 것 같은데 하느님께서 왜 이름을 바꿔 주셨는지 잘 모르겠어요(20대 유 히야친타 님).

 

 

자매님은 자기 이름이나 세례명이 마음에 드세요? 불릴 때마다 기분이 좋은가요? 이름이 지어진 배경을 잘 알고 계세요? 이 모든 물음에 “네” 한다면 참 복된 경우지요.

 

우리 문화에서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기 이름을 지을 때마다 조부모나 부모가 무척 고심합니다. 때로는 적잖은 돈을 들여 소문난 작명소를 찾아가지요. 이름이 그 아이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에 항렬자를 넣고자 할 경우에는 족보를 들여다보며 선조들의 이름(함자)과 동기들의 이름을 참고하여 짓곤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에는 시대의 생활상이 반영됩니다. 103위 순교성인 중에는 이름 없이 성(姓)과 세례명만 있는 분이 제법 됩니다. 당시 평민 여성은 고유한 이름을 받지 못한 예가 많았다는 방증이겠죠.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여성들의 이름에는 ‘자(子)’로 끝나는 일본식 이름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뜻도 중요하지만 소리와 연상되는 이미지를 매우 중시해서 한글 이름을 많이 짓지요. 자기 이름이 못마땅하여 개명한 이가 1년에 72,815명(2005년 대법원 자료)이나 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의 중요성은?

 

어디 실생활뿐인가요?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도 등장인물의 이름은 그의 성격은 물론 배역의 비중까지 암시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만큼 이름은 나와 남을 구분하여 부르는 한낱 ‘기호’를 넘어서 중요성을 지니지요.

 

성경 이야기에서도 그러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그의 특성, 성격뿐 아니라 운명까지 시사합니다. 좋은 예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입니다. 그는 출생 때 형 에사우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와 ‘야곱’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창세 25,26 참조). 그 이름의 뜻은 ‘발뒤꿈치’와 ‘속이다, 남의 자리를 뺏다’입니다. 그 뒤로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 끊임없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는 짓을 합니다(창세 27,22.36 참조).

 

이름이 없는 사람은 무가치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임을 알려 줍니다. 가령 창세기에 이어 나오는 탈출 1장을 보면,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 그리고 히브리 산파 두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집트 임금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그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자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그의 존재는 대단치 않다는 표시입니다. 그는 하느님 백성의 역사에서 그림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 이름에는 집안을 밝히는 성姓과 고유한 개인 이름이 함께 붙어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개인 이름만 갖습니다. 물론 그 이름에도 조부모나 부모의 염원과 희망이 가득 담겨 있죠. 좋은 예가 창세 29장에 나옵니다. 야곱의 첫째 부인인 레아가 아들들을 낳으면서 이름을 짓는데, 하나같이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한 그 어머니의 염원이 간절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맏아들의 이름이 ‘르우벤’인데, 그 뜻은 ‘보라, 아들이다!’입니다. 그러니까 맏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 이 아들을 보세요, 내가 당신에게 집안을 이을 맏아들을 낳아 준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러니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세요” 하는 레아의 울부짖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이름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이는 작명소의 간판이 아니라, 성경의 주장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름에는 한 존재의 고유한 특성과 운명이 갈무리되어 있으므로, 이름이 바뀌면 존재의 삶도 다른 방향으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어 갑니다. 이때 스스로 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이름을 바꿔 주시는 경우가 그렇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잘 알려진 경우가 자매님이 질문하신 아브라함의 예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아브람(Abram)인데, 이는 서부 셈족의 흔한 이름인 아비람(Abiram: 민수 16,1)의 다른 형태입니다. 그 뜻은 ‘아버지(신神)는 존귀하시다’ 또는 ‘존귀하신 아버지’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아들이 자기 씨족이 섬기던 신을 드높이는 존재로 커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고 본고장마저 떠나야 하는 아브람의 신세는 이름의 뜻과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떠난 뒤 24년 되던 해, 하느님께서는 그와 계약을 맺으시며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언어학상 같은 형태의 사투리에 불과하나, 성경은 그 이름의 뜻을 ‘많은(hemon) 민족들의 아버지(ab)’라고 풀이합니다(창세 17,4 참조). 자식을 가질 수 없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자손의 번성을 보게 하겠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계획이 그 바뀐 이름에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본인조차 믿기 어려워 웃었지만(창세 17,17 참조),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도 사라이에서 사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역시 사투리의 변형이지만, 한낱 염원에 그쳤던 그 이름의 뜻(‘왕후’)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전환점이 됩니다. 또 속이는 자 야곱(yaaqob)은 야뽁(yabboq) 내에서 하느님과 씨름한(yeabeq) 뒤 이스라엘(Israel: ‘하느님께서 싸우신다. 하느님과 겨루었다’)로 바꾸어 주십니다(창세 32,29 참조). 한편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 여호수아(‘야훼가 구원하신다’는 뜻)라는 이름을 새로 주었습니다(민수 13,16 참조).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히브리어로 시메온)에게 케파(그리스어로 베드로: ‘바위’라는 뜻)라는 새 이름을 주셨지요(요한 1,42 참조). 사도 바오로는 교포 유다인이라 처음부터 사울(‘야훼께 요구받은’의 약어)이라는 히브리 이름과 바오로(Paulo, ‘작다’)라는 라틴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맺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이름을 불러 당신과 관계를 맺도록 이끄십니다. 신앙인은 세례를 받았을 때가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이사 49,1)고 믿습니다. 그분은 내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내 이름, 내 존재를 알고 계십니다. 이번 기회에 내 이름과 세례명의 뜻, 작명 경위를 알아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이름도 조용히, 힘 있게 불러 보십시오. “예수님!”

 

* 이용결 님은 본지 편집부장이며 말씀의 봉사자로 하느님 말씀과 씨름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9월호(통권 450호), 이용결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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