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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사야서 해설: 불행하여라!(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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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2,011 추천수0

[이사야서 해설] “불행하여라!”(28,1)

 

 

지하철역에서 종종 범죄 신고 전화번호를 알리는 포스터를 볼 때가 있습니다. ‘긴급 신고’는 112번, ‘신고 상담’은 110번입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포스터의 사진들입니다. 같은 모델이 전화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다릅니다. 110번(신고 상담)에선 수화기를 들고 차분하게 말하는 모습이지만, 112번(긴급 신고)에선 수화기를 들고는 있으나 시선은 다른 어딘가를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소리치는 모습입니다. “불행하여라!”(28,1)라는 예언자들의 선포는 이 ‘긴급 신고’에 해당합니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서 경찰서에 전화해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행복 선언과 축복, 불행 선언과 저주

 

28-35장의 특징은 ‘불행 선언’입니다(28,1; 29,1; 29,15; 30,1; 31,1; 33,1). “불행하여라!”의 히브리어 첫 단어인 ‘호이’는 본래 조가(弔歌)에 사용하는 탄식 -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슬퍼하며 탄식하는 것 - 입니다. 여러 예언서에 “불행하여라!”라는 표현이 많은데, 이는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또는 성읍을 향한 탄식입니다.

 

이 불행 선언은 행복 선언과 대비해 볼 수 있습니다. 시편에 자주 나타나고,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서도 나오는 행복 선언은(“행복하여라!”) 축복과 구별됩니다. ‘축복’이 장차 복을 받으리라는 예고라면, ‘행복 선언’은 지금 복을 누리는 사람에 대한 경탄입니다. 복음서의 행복 선언은 어느 정도 미래지향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말하는 신약의 특성 때문이고, 본래 구약의 행복 선언은 현재의 행복에 대한 진술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주’가 장차 일어날 불행을 말하는 것이라면 ‘불행 선언’은 이미 벌어진 일, 지금 겪고 있는 불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호이’가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탄식이라는 점에서 생각할 수 있듯이, “불행하여라!”라는 예언자들의 선언은 장차 겪게 될 심판의 선고라기보다 이미 불행에 빠져 있는, 아니면 멸망이 이미 눈앞에 닥친 이들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언자들은 110번의 ‘신고 상담’이 아니라 112번의 ‘긴급 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멸망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불행한가

 

그러면 28-35장에서는 누구를 불행하다고 할까요? 28-35장의 ‘불행 선언’(28,1; 29,1; 29,15; 30,1; 31,1; 33,1)을 하나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28,1에서는 “불행하여라, 에프라임 주정꾼들의 거만한 화관!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 버린 꽃! 술에 빠진 자들의 머리 위에, 기름진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것!”이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화관”은 사마리아로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멸망이 다가오는데도 상류층은 사치와 퇴폐를 일삼으니 사마리아는 불행합니다. 술 취한 이들의 머리 위에 있는 거만한 화관, 시든 꽃이라는 비유들이 매우 생생합니다. 전쟁 때문에 불행하다기보다,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술에 취해 거만을 떨고 있는 현실이 어쩌면 더 불행할 것입니다.

 

29,1에서는 “불행하여라, 너 아리엘아, 아리엘아 다윗이 진을 쳤던 도성아!”라고 말합니다. “아리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본문이 단순하지 않아 여기서 말하는 아리엘의 불행은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침공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만일 그렇다면 이 본문은 이사야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편집된 본문이라는 뜻이지요). 이 본문은 불행 선언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느님께서 구해 주시리라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짧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시작 부분에 불행을 선언한 이유는 예루살렘이 종교적인 축제를 거행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은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9,15은 “불행하여라, 자기네 계획을 주님 모르게 깊이 숨기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살길을 찾는 예루살렘을 불행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피하려고 다른 나라에 군사 원조를 청하는 등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길을 도모하면서 하느님의 계획과는 다른 자신들의 계획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30,1은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자식들!”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도 불행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예루살렘입니다. “그들은 계획을 실행하지만 그것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동맹을 맺지만 내 뜻에 따라 한 것이 아니다”(30,1). 여기서 말하는 “계획”은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은 유다가 이집트에 도움을 청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제 뜻대로 세운 계획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시도는 수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왜 불행한가

 

31,1은 불행한 이유가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듯합니다. “불행하여라,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 군마에 의지하는 자들! 그들은 병거의 수가 많다고 그것을 믿고 기병대가 막강하다고 그것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을 찾지도 않는다.” 군마로 대표되는 인간적인 힘에 의지하는 이들의 불행, 이사야서에서 되풀이되는 주제입니다. 인간적인 힘에 의지하는 이들은 멸망하고 말리라고, 이사야는 처음부터(2장) 인간의 교만을 경고했습니다.

 

크게 본다면, 28,1 이후의 불행 선언들은 모두 인간적인 것에 의지하는 이들을 불행하다고 선언합니다. 사마리아는 경제력을 믿고 사치에 빠져 있으며, 예루살렘은 군사력에 의지하려고 먼저는 아시리아에, 나중에는 이집트에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힘은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이 의지하는 그 힘들은 모두 곧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 아시리아나 이집트는 처음부터 유다가 도움을 청하지 말았어야 할 나라들이었습니다. 아시리아는 시리아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쳐서 유다를 살려 주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다를 종속시켰고, 이집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에 군마를 청하러 가는 것은 금지된 일(신명 17,16)이었고, 예레미야도 이를 반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멸망 직전의 유다는 이집트에 군사 원조를 청할 것이고 결과는 비참하게 끝날 것입니다.

 

 

마지막 불행 선언

 

그러나 아직 하나의 불행 선언이 더 남아 있습니다. 33,1입니다. “불행하여라, 자기는 파괴되지 않았으면서 파괴만 하는 너! 자기는 배신당하지 않았으면서 배신만 하는 너! 네가 파괴를 끝내면 너 자신이 파괴되고 네가 배신을 마치면 너 자신이 배신을 당하리라.”

 

이 불행 선언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파괴자였던 아시리아라고 보기도 하고, 더 늦은 시기를 배경으로 보아 바빌론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유다를 파괴한 이들에게 불행이 선언됩니다. 그들 역시 군사력을 믿었던 이들이고,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교만해졌던 이들입니다(아시리아의 경우 10,5의 불행 선언 참조).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은, 그 심판의 도구가 되었던 이들에 대해서도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힘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 다음에는, 하느님께서 시온에서 임금이 되실 것입니다(33,17-24).

 

이사야서의 귀결은 언제나 구원이고, 그 구원은 하느님의 나라가 서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든 남 왕국 유다든 아시리아든 바빌론이든,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해진 이들은 불행합니다. 그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루카 복음의 불행 선언이 떠오르지요.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모든 사람이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루카 6,24-26). 하느님의 나라가 서기 위해서 그들은 무너져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들의 멸망이 다가왔다고 ‘긴급 신고’로 선언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이는 세력들, 그들은 사실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1월호(통권 488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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