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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8: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는 유혹의 목소리를 거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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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2,390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8)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는 유혹의 목소리를 거슬러

 

 

제아무리 원대한 뜻을 품고 떠난 길이라 해도 어려움이 닥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왜 길을 떠나야만 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길 떠나기 전의 상황을 그리워하며, 차라리 길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하거나,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길의 끝자락에 망연자실한 채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품었던 뜻이니 끝까지 가보리라는 각오를 새로이 다지는 이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길 떠난 이들이 만나게 되는 장애물은 길을 떠난 이유를 되돌아보고, 다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길을 떠난 모세도 엄청난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과연 모세는 이 장애물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였을까요? 열 가지 재앙사화는 장애물 앞에 선 모세의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를 처음 만났을 때 모세는 80세, 아론은 83세였습니다(7,7 참조). 성경 저자가 굳이 이들의 나이를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원숙함을 드러내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젊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선택에는 제한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실패는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을 더 주춤거리게 할 수 있습니다.

 

 

거듭된 실패에도 절망하지 않는 모세

 

파라오와의 첫 대면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파라오는 하느님의 명령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마저 부인합니다. 모세가 전한 하느님의 메시지, 곧 ‘내 백성을 내보내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게 하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더 억압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 강도는 더 세집니다. 결국 그 모든 탓은 모세와 아론에게 돌려집니다. 모세는 이 상황을 주님께 말씀드렸고, 주님은 파라오가 결국에는 당신께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파라오가 마침내 주님을 알아보게 되기까지, 모세와 아론은 긴 좌절의 시간을 견뎌 내야 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도 파라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는 첫 번째 재앙도, 개구리 소동도 파라오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였습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땅의 먼지를 치자 이집트 온 땅에 모기가 들끓었습니다. 파라오의 요술사들은 이것이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임을 알아보았지만, 파라오는 여전히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거듭된 실패는 ‘절망’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는 온상입니다. 절망이 퍼지기 시작하면 어둠으로 뒤덮인 그 마음의 땅에는 ‘새로운 시도’라는 새싹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것 역시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단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절망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거듭된 유혹에도 타협하지 않는 모세

 

이집트 온 땅을 뒤덮은 등에 떼(넷째 재앙) 앞에, 드디어 파라오는 모세와 타협을 시작합니다. “가거라. 그러나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라”(8,21). 그러나 모세는 단호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주 저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그분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8,22-23). 실패를 거듭하였기에 작은 성공에 주저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모세는 파라오의 작지만 놀라운 변화 앞에서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재앙들에서 파라오가 자신의 결정을 여러 차례 번복할 때에도 모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메뚜기 떼가 온 이집트를 공격하는 여덟째 재앙 때 파라오는 다시 한번 타협을 시도합니다. “장정들이나 가서 주님께 예배드려라”(10,11). 아홉째 재앙인 어둠이 이집트를 덮치자 파라오는 조금 더 양보합니다. “너희는 가서 주님께 예배드려라. 다만 너희 양 떼와 소 떼만은 남겨 두어라. 어린것들은 너희와 함께 가도 좋다”(10,24). 그러나 모세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파라오로 대표되는 세상의 힘과 권력 앞에서 만약 모세가 타협하였다면 그는 좀 더 일찍 성공하였을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조금 더 일찍 데려 내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모세가 일의 성공만을 추구하였다면 파라오가 제시하는 타협의 유혹을 쉽사리 물리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파라오와 끊임없이 대화는 시도하지만 절대로 타협하지는 않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주 저희 하느님께 저희가 바칠 희생 제물과 번제물을 내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집짐승들도 저희와 함께 가야 합니다. 한 마리도 남아서는 안 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주 저희 하느님께 바칠 것을 골라야 하는데, 저희가 그곳에 다다를 때까지는 주님께 무엇을 바쳐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10,25-26).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는 유혹의 목소리는 어디든 있습니다. 장애물 앞에서 그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커집니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따르는 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라고 부추길 것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 앞에 머물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타협 없이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까? 세상의 논리와 타협하느라 하느님의 말씀을 반 토막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애초의 부르심을 절반으로 축소하면서 장애물 핑계를 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세의 거울이 우리를 돌려세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8월호(통권 485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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